‘임금 체불’에 울상짓는 외국인 노동자, 정부는 “외국 인력 확대하겠다” 큰소리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불 문제 심각, 최근 5년 평균 체불액 1,200억원 달해 벌금이 체불액 10분의 1에 그친다? 고용주들 ‘돈 없으니 배 째라’ 버티기 해외 인력 확대하겠다는 정부, 임금 체불 문제 해결하긴커녕 ‘복지 축소’

pabii research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 체불’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체불 임금을 지급하는 대신 ‘벌금 납부’를 택하는 고용주가 증가하는 가운데, 다수의 외국인 근로자는 임금 지급을 기약 없이 기다리다 비자가 만료돼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해외 인력 도입 규모를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임금 체불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결 방안은 아직 전무하며, 설상가상으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를 폐쇄하는 등 복지 정책마저도 뒷걸음질 치는 양상이다.

영세 사업장 위주로 임금 체불 심화

13일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부로부터 받은 ‘5년간 사업장 규모별 외국인 근로자 임금체불 현황’에 따르면, 최근 4년 7개월간(2019년~2023년 7월) 국내 외국인 근로자 임금 체불 금액은 5,670억원에 달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9년 1,216억8,200만원 △2020년 1,287억7,100만원 △2021년 1,183억5,100만원 △2022년 1,223억2,400만원 △2023년(7월 기준) 761억3,700만원 등이다. 2021년을 제외하면 매년 체불액이 1,200억원을 웃돈 것이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5인 미만 사업장의 체불 건수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전체 체불 접수 1만6,075건 중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접수된 건수는 8,317건(51.7%)에 달했으며, 5~29인 사업장에서는 6,429건(39.9%)이 접수됐다. 3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임금 체불 중 9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 셈이다. 올해 7월까지 접수된 6,862건 중 3,598건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영세 사업장의 체불 실태는 임금 체불 금액에서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5인 미만 사업장의 임금 체불 금액은 540억원으로 전체 체불 금액 1,223억2,400만원 중 44%에 달했으며, 5~29인 사업장이 546억원(44.6%)으로 뒤를 이었다. 올해(~7월) 역시 5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체불액의 43%, 5~29인 사업장이 47% 비중을 차지했다.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영세 소기업이 외국 인력을 고용한 뒤 한계에 봉착, 임금을 체불하는 악순환이 매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벌금 내고 말지”, 외국인 노동자 고통 모른 체하는 고용주들

임금 체불 사건이 발생하면 근로감독관은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시정지시를 한다. 시정지시를 통해 사건이 해결되면 지도해결이 되지만, 시정에 불응하는 경우는 검찰에 송치되며 사법처리를 하게 된다. 이때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을 체불한 고용주 대부분은 “돈이 없으니 줄 수 없다”며 버티다가 사법처리 단계를 밟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불 사건의 사법처리 비율은 전체 사법처리 비율보다 높은 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가 줄어든 2021년 이후에도 2.2%p가량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법정 다툼을 거리끼지 않는 이유는 벌금이 임금 체불액의 1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체불 임금을 납부하느니 벌금을 내는 것이 차라리 ‘남는 장사’라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피해를 보전받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임금체불 보증보험 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이마저도 보상 한도가 최대 400만원에 그쳐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unsplash

한편 밀린 임금을 받으려던 외국인 노동자의 합법적인 비자가 민사소송 과정에서 만료되는 경우도 많다. 이주노동자들은 E-9(비전문외국인력) 비자를 받아야 국내에서 일할 수 있는데, 소송 과정에서 E-9 비자가 만료되면 보통 국내 근로가 불가능한 G-1(기타체류자격) 비자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G-1 비자로는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마련할 수 없다. 이들이 국내에서 법정 공방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결국 몰래 일을 하는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임금 체불 문제가 발생할 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조차 어렵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이 외국인노동자 54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고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42.9%에 달하는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임금 체불이 발생해도 사업주에 항의 후 지급까지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16.5%는 고용센터, 소송 등의 제도 이용이 꺼려진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등록 체류 상황 자체를 역신고당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부조리를 견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원 축소’ 시작한 정부, 외국 인력은 확대하겠다?

외국인 근로자가 비자 유무에 상관없이 임금 체불 문제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정부는 해결책을 내놓기는커녕 ‘외국인 근로자 확대’를 외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기업의 E-9 비자 고용 한도를 두 배 늘리고, 내년에는 역대 최대 수준인 12만 명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이에 업계에서는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외국 인력 확대를 주창하면서 정작 관련 지원은 줄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고용노동부는 내년 전국 9곳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예산 삭감 및 폐쇄 사실을 통보했다. 지역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임금체불 해결 △생활 상담 △한국어 교육 △법률 교육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지원센터가 폐쇄되면 외국인 근로자의 권리 주장은 한층 더 어려워진다. 해외 인력 처우가 갈수록 악화하는 우리나라에 과연 정부가 꿈꾸는 대규모 인력이 유입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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