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기준금리에도 폭증하는 주담대 잔액, 금통위 “정책금융 영향”

지난달 기준금리 동결한 한은, 이제 물가 아닌 가계대출이 문제다 고금리 아랑곳 않고 급증하는 가계대출, 주담대 잔액 증가폭 3년 6개월 만에 최대치 금통위 “정책금융 영향” 언급, 원인은 50년 만기 주담대·특례보금자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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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계대출이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12일 한은이 공개한 ‘8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들은 지난 4월부터 이어지는 가계대출이 증가세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날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실제 올 들어 기준금리가 기존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금통위는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으로 부동산을 지목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와 집값 바닥론, 피벗 기대 등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했다는 지적이다.

3.5% 기준금리, 물가는 안정·가계대출은 폭증

앞서 한은 금통위는 8월 24일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다. 지난 2021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10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3%포인트 인상한 뒤, 지난 2·4·5·7월에 이어 8월까지 동결 수순을 밟은 것이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민간 소비, 수출·수입, 투자 등 모든 부문에서 뒷걸음쳤다는 점, 지난해 6%대까지 뛰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올해 6~7월 두 달 연속 2%대를 기록한 점 등이 동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한은은 물가를 기준금리 결정의 최우선 기준으로 세워왔다. 실제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 5.2%를 기록한 이후 2월 4.8%, 3월 4.2%, 4월 3.7%, 5월 3.3%, 6월 2.7% 등 뚜렷한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 한국을 한바탕 휩쓴 인플레이션이 안정된 가운데, 지난달 금리를 동결한 한은의 걱정거리는 물가가 아닌 가계부채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가계대출을 포함한 우리나라 가계신용은 전 분기 대비 9조5,000억원 증가한 1,862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주담대가 14조1,000억원 늘면서 가계대출이 10조1,000억원 증가했다.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및 가계부채 연착륙을 노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행보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부동산 살아난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주담대

한은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부동산 시장을 지목했다. 최근 들어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하고,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 상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부동산 시장 연착륙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 집값이 내릴 만큼 내렸다는 판단,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기대감 등이 겹치며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올 1월(0원)과 2월(-3,000억원) 주춤하던 주담대는 △3월 2조3,000억원 △4월 2조8,000억원 △5월 4조2,000억원 △6월 6조9,000억원 늘며 증가 폭을 빠르게 키워왔다. 지난 8월에는 증가액이 7조원 선을 뚫으며 2020년 2월(7조8천억원) 이후 3년 6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한은이 이른바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섰던 2021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금통위는 정부의 규제 완화 및 정책금융을 가계대출 증가의 주원인으로 꼽는다. 실제 8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현재 가계대출 증가에 정책금융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특례보금자리론 한도 잔액과 신청분 중 미실행액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수개월 동안 정책금융이 가계대출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책금융’ 위주로 급증한 대출 잔액, 금융 불균형 심화

주담대 잔액 급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50년 만기 주담대’가 지목된다. 5대 시중은행이 취급한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2조8,900여억원에 달한다. 이는 7월 말(8,660억원) 대비 2조원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금융당국의 50년 만기 주담대 대상 가입 나이 제한 발표, 은행권의 상품 공급 종료 발표가 겹친 지난달 마지막 주에는 잔액이 자그마치 1조6,300억원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례보금자리론 역시 가계대출 증가세의 원인으로 꼽힌다. 특례보금자리론은 9억원 이하 주택을 구매할 경우 소득과 무관하게 최대 5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고정금리 상품이다. 지난달 말 기준 특례보금자리론 유효 신청 건수는 14만8,937건이며, 유효 신청 금액은 35조4,107억원에 달한다. 이는 올해 특례보금자리론 목표 공급액(39조6,000억원)의 89.4% 수준이다. 실수요자 사이에서 예산이 모두 소진되기 전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하기 위한 ‘경쟁’ 조짐이 보이는 만큼, 대출 잔액 역시 한층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이 같은 정부의 부동산 경기 띄우기용 정책금융 상품이 가계 대출 급증을 부추겼다는 입장이다.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이 엇나가는 금융 불균형이 발생한 셈이다. 금통위원들은 가계대출 규모와 증가세가 더 가팔라질 경우를 우려하고 있으며,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것이 금통위원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밝히기도 했다.

조만간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피벗에 희망을 걸고 대출을 늘려가는 실수요자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경기 침체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일각에서는 만약 가계부채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증가세를 이어갈 경우, 우리나라 ‘경제 뇌관’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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