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시장 둔화·기업 실적 위기, 목전에 놓인 미국 경기 침체

pabii research
美 10월 구인 건수 2년 7개월 만에 최저치, 경제 성장 둔화 속도 빨라졌다
올해도 지속됐던 금리 인상 기조, 정책 시차로 내년 하반기까지 영향 미쳐
美 기업 내년 실적 위기 가시화, 경기 침체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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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의 구인 건수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미국 노동시장이 냉각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기 성장 둔화가 점점 빨라지는 가운데, 시장에선 내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및 긴축 기조가 종료될 것이란 예측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다만 연준은 아직 금리 인하를 논하기에 시기가 이르다며 확답을 피하는 모양새다.

美 고용시장 얼어붙

5일(현지 시각) 미국 노동부에서 발표한 10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10월 구인 건수는 전월보다 61만7,000건 감소한 870만3,000건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21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이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망했던 940만 건을 크게 밑돈다. 감소세가 뚜렷한 업종은 보건의료·사회복지 부문으로 총 23만6,000건이 줄었고, 금융·보험 부문 16만8건, 여가·접객업 부문 13만6,000건이 뒤를 이었다.

큰 폭으로 감소한 구인 건수는 미국 노동시장 수요 측면의 강세가 약화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연준의 금리 인상이 종료되고 긴축 기조가 풀릴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그간 연준은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노동시장의 냉각을 기다려왔다. 미국 고용시장 내 공급과 수요가 크게 불일치한 탓에 임금 상승 및 인플레이션이 강화됐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국제경제 분석·평가 기관 하이프리퀀시이코노믹스(High Frequency Economics)의 루벨라 파루키 수석 경제학자는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보다 0.5%P 하락한 3.2%를 기록했다”며 “노동시장이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는 지금 상황이 바로 연준이 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은 이번 지표로 현재 금리가 정점에 이르렀음을 확인했을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에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연준의 다음 조치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믿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널드 러스킨 트렌드매크로 최고투자책임자(CIO)도 “고용시장 둔화세가 본격화되며 물가도 디플레이션 전환을 시작했다. 연준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라며 “내년 1분기에 금리 인하 발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정책 시차 간과하는 연준? “이대로라면 내년 하반기 심각해져”

하지만 연준은 금리 인하 시점을 예측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면서 시장에 형성된 내년 금리 인상 종료 및 상반기 인하 관측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시장 내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치솟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일(현지 시각)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몇 달간 나타난 낮은 인플레이션 지표는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우리가 충분히 긴축적인 기조를 달성했는지 결론 내리기엔 아직 이르며, 금리 인하 시점을 짐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통화정책에는 경제적 여건에 따라 시차가 존재하는 만큼, 아직 긴축정책의 전체 효과는 느껴지지 않는다”며 “앞으로 새로 나오는 경제 데이터와 그것이 경기 및 물가 전망에 가지는 의미, 그리고 여러 위험 등을 균형 있게 고려해 다가오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결정을 내리겠다”고 전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연준이 금리 인상을 선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로 정책 시차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통화 정책이 시장에 파급효과를 미치기까지는 약 1년에서 2년 정도의 정책 시차가 발생한다. 실제로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지난달 22일(현지 시각)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연준의 금리 인상 및 긴축 기조는 약 1년 6개월이 지난 2023년 3분기가 돼서야 본격적인 인플레이션 하락세가 관측되며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리처드 크럼프 뉴욕 연은 금융 리서치 자문위원은 “연준의 정책 효과로 인해 2024~2025년에는 CPI가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이는 지금보다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더 긴축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만일 연준에서 긴축 기조를 유지한다면 내년 하반기 심각한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리콘밸리
미국 실리콘밸리 전경/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불경기 감지했나, 허리띠 졸라매는 美 기업들

한편 시장에선 미국 내 구인 건수가 줄어들고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는 것이 경기 침체의 전조 증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기업 관계자들은 이미 미국의 경기 침체가 도래하고 있단 평가도 내놨다. 미국 씨티그룹의 제인 프레이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급격한 경기 하강이 임박했다고 보지는 않지만, 경기 침체는 다가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도 “인플레이션율이 더 오를 수 있고 경기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달 14일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스탠다드앤푸어스(S&P) 글로벌 관계자는 “지난 10월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약 8개월 만에 최저치인 50을 기록했고, 글로벌 제조업은 5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며 “인플레이션이 완화됐다지만 여전히 물가는 높은 데다 고금리와 소비자 수요 감소로 인해 기업 실적 위기는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S&P 글로벌 레이팅스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기업의 수익 성장세는 거의 멈춤 수준이며, 이자와 세금, 감가상각, 상각 전 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9월 미국 구인·구직 플랫폼 하이어드(Hired)가 공개한 ‘2023 테크 기업 연봉 실태’에 따르면 올해 미국 IT 기업 종사자 평균 연봉은 15만6,000달러(약 2억400만원)로 지난해 16만1,000달러(약 2억1,000만원)보다 약 3.1% 줄어들었다. 한때 천정부지로 치솟던 IT 업계 연봉이 경기 침체 여파로 크게 꺾인 것이다.

이처럼 미국 내 경기 침체가 현실화될 수 있단 불안이 치솟자 글로벌 기업들은 비용 통제를 위해 마케팅 비용 감축에 나섰다. 고객 유치를 위해 제공하던 이른바 ‘공짜 혜택’들을 줄이고 비용 통제에 돌입한 셈이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화장품 유통 체인인 ‘세포라’는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에게 매년 생일 선물을 증정하는 마케팅을 펼쳐왔지만 올해 6월부터는 최소 25달러 이상 구매해야 선물을 신청할 수 있도록 바꿨다. 도넛 체인점 ‘던킨’도 작년 가을 생일 무료 음료 쿠폰을 없앴으며, 버거 업체 ‘레드로빈’ 역시 올해부터 생일에 공짜 버거를 받으려면 추가로 다른 상품을 4.99달러 이상 구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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