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안보 핵심으로 떠오른 반도체, 미국·일본 ‘웃고’ 한국은 ‘발 동동’

pabii research
美·日 반도체 관련주들, 자국 증시 오름세 이끌어
공장 증설 미미-관련주 부진, 韓 반도체는 ‘침울’
“중장기적 글로벌 경쟁력 향상 대책 필요”
반도체만국_파이낸_20240123

최근 3년간 전 세계 반도체 공장 신·증설이 미국과 일본 등 주요 동맹국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간 이들 국가의 반도체 관련주들도 일제히 강세를 나타내며 증시 전반의 호황을 견인하는 가운데 전통적 반도체 강국으로 불렸던 한국만 유독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반도체 중심축 미국으로 서서히 이동

23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1월 17일까지 글로벌 반도체 공장 착공 건수는 총 71건으로 앞선 3년(2019년~2021년, 57건)과 비교해 24.5% 늘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8건에서 18건으로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했고, 이어 유럽·중동(6건→12건), 일본(3건→8건) 등 순을 보였다. 한국은 2건에서 4건으로 소폭 증가에 그쳤고, 중국(25건→13건)과 대만(12건→9건)은 감소세를 그렸다.

일본 니혼잔게이자이 등 다수의 매체는 반도체 산업이 미국과 중국의 경제안보 경쟁 핵심 분야로 지목되면서 중심축이 미국으로 서서히 옮겨간 데 따른 결과로 분석했다. 니혼잔게이자이는 18일 보도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반도체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하며 “대만 총통 선거를 전후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서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장 건설이 늘어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기술 활성화로 인한 반도체 관련주 급등 현상도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 집중됐다. 지난 19일 메타 플랫폼스가 AI 경쟁력 확대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최대 180억 달러(약 24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라는 발표가 나온 후 미국 뉴욕 증시에서는 반도체 설계 및 장비주들이 대거 오름세를 보였고, 그 결과 이날 S&P500지수는 전일 대비 1.23% 오른 4,839.81로 역사적 최고점을 경신했다.

일본 증시도 반도체주의 상승세에 힘입어 새로운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같은 날 니케이225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62% 오른 3만6,546.95에 장을 마쳤다. 이는 34년 만의 최고 기록이자, 1989년 거품경제가 무너지기 직전 기록된 최고점 3만9,000을 불과 6%가량 남겨둔 수치다. 반도체 세척장치 제조업체 스크린홀딩스가 전 거래일 대비 5.03% 급등하며 증시의 상승세를 주도했고, 반도체 웨이퍼 및 기판 검사업체 레이져테크(4.77%), 반도체 제조 장비사 도쿄일렉트론(1.66%) 등도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한국 반도체 관련주들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주 주가가 D램 업황 부진으로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것을 비롯해 이차전지 대형주들의 급락으로 코스피가 휘청인 데 따른 여파다. 22일 장 마감 기준 코스피지수는 2,472.74로 2021년 6월 기록한 최고점인 3,302.84 대비 약 25% 빠져 있는 상태며, 삼성전자 주가는 75,100원으로 2021년 1월 기록한 96,800원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尹 “주요국과 협력 강화하겠지만, 투자는 기업 영역”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네덜란드와 미국, 일본 등 주요국과의 반도체 협력 강화에 나서는 등 시장 회복의 의지를 보였다. 반도체가 산업과 기술은 물론 안보 측면에서도 전략자산으로 부각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일 대안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앞두고 “정부와 기업, 학계가 함께하는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룰 체계적인 제도적 틀을 마련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는 기업의 영역으로 남겨뒀다. 윤 대통령은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이 수천억 달러를 투자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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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exels

이는 반도체를 국가 경제의 동력으로 선언하며 정부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단행되는 일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일본은 최근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이 중국 산업 성장을 막기 위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재편에 들어간 틈을 타 재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일본은 한국, 대만과 함께 미국 주도 반도체 협의체 ‘칩4’에 참여한 후 동맹국과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를 연이어 유치했다. 여기에 정부 지원 투자도 대폭 확대했다. 2021년 이후 일본 정부의 반도체 기업 투자는 총 2조 엔(약 18조원)에 달한다.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히며 반도체 생산 시설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자, 미국 마이크론과 대만 TSMC 등이 일본 내 제조 시설 설치를 결정했다.

AI·차량용 반도체 기술력 강화 시급

전문가들은 이같은 한국 반도체의 부진은 기술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이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고 풀이한다. 메모리반도체, 설계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는 안정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최근 2~3년 사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AI 및 차량용 반도체 부문에서는 미국과 일본 등에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반도체 산업 전문가 100명으로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한국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은 평균 71점에 그쳤다. 미국의 산업 경쟁력(100점)을 기준으로 보면 30% 가까이 뒤처진 셈이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과제로는 기업의 생산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과감한 세제지원이 꼽힌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들의 정부가 자국 반도체 경쟁력 향상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반도체 소자, 설계, 소재, 부품, 장비 등 전 분야에 걸쳐 중장기적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할 대책 마련을 서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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