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사모펀드 운용 업계 드라이파우더 ‘4조 달러’ 육박, “전체 운용자산 3분의 1에 달해”

pabii research
뉴욕증시 시가총액 1위인 ‘애플’ 사고도 1조 달러 남는 규모
그만큼 투자처 마땅치 않은 시장 환경이라는 의미
국내 사모펀드 상황도 마찬가지, 올해 6월까지 약 11조원 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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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사모펀드 운용 업계의 미소진자금(드라이파우더) 총액이 5,000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의 드라이파우더는 지난 3분기 역대 최대치로 늘어났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탓에 투자 시장이 침체에 빠진 영향이다.

지속된 고금리 속 시장 침체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드러이파우더’

12일(현지 시간)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록이 발표한 ‘2024 사모 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사모펀드 운용 업계의 드라이파우더 총액이 4조 달러(약 5,28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사모펀드 업계 전체 운용자산(AUM)인 13조 달러(약 1경6,900조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4조 달러는 뉴욕증시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을 사들이고도 1조 달러(약 1,300조원)가량이 남을 만큼 큰 금액이다. 또 버크셔해서웨이나 테슬라를 인수할 경우에도 금액이 상당 부분 남으며, 영국 런던증시의 경우엔 모든 상장사를 살 수 있는 규모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하나의 그림에서 오리를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토끼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며 “이와 동일하게 사모펀드 업계의 4조 달러 드라이파우더에 관한 차트에서도 서로 다른 해석이 도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리와 토끼를 동시에 보게 되는 착각처럼 사모펀드 업계의 드라이파우더를 둘러싼 두 가지 해석 모두 동시에 사실로 드러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FT의 이러한 비유는 향후 드라이파우더의 투자처를 당장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드라이파우더가 조만간 인수합병(M&A) 등 자본시장 활동을 촉진하고 상승세를 주도할 주요 유동성 공급원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론 애초에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 드라이파우더가 쌓인 만큼 향후에도 관련 자금 집행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집행되지 않은 투자금, ‘드라이파우더’

드라이파우더(Dry Powder)는 ‘건조된 화약’이라는 뜻으로, 실제 전투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확보해 놓는 실탄을 의미하는 데서 유래했다. 19세기까지 병사들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화약을 건조한 상태로 유지하는 일이었다.

현대에 와서 드라이파우더는 벤처캐피탈(VC)이나 펀드 운용사가 모은 투자금 중 아직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당장이라도 투자에 사용할 수 있는 ‘가용 자금’을 뜻하게 됐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사모펀드들이 투자하지 못하고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M&A 자금을 뜻하는 은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금융시장 내 드라이파우더 금액이 커졌다는 건 그만큼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시장 환경이라는 의미다.

드라이파우더를 대규모로 쌓아둔 곳은 사모펀드 업계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 워런 버핏의 투자 전문 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도 지난 9월 말 기준 드라이파우더가 1천570억 달러(약 204조원)나 쌓였다. 이는 전년 대비 500억 달러(약 65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고치다.

스티브 한케 존스홉킨스 교수는 워런 버핏이 향후 미국 경제가 둔화하면 저가 매수를 하기 위해 드라이파우더를 쌓아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케 교수는 지난달 20일 비즈니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미 연준의 통화 공급이 1933년 이후 가장 빠르게 줄면서 버핏은 경제가 둔화할 것이란 점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면서 “과거 어려움에 빠진 금융기관들에 투자해 큰돈을 벌어봤던 버핏은 향후 고금리 압박에 미국 경제가 무너질 경우 드라이파우더를 사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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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모펀드 드라이파우더도 지난해 역대 최고치, 다만 내년부터 적극 소진될 전망

국내 투자시장에 쌓인 드라이파우더도 만만치 않다.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5월 말까지 국내 10대 사모펀드의 드라이파우더 총액은 약 11조원에 육박했다. 약 12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말 총액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글로벌 시장과 마찬가지로 지속된 고금리 기조 속 투자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드라이파우더가 쌓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유동성이 넘쳤던 2021년까지만 해도 M&A 호황이 겹치면서 펀드 결성과 자금 집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지난해부터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면서 투자처를 찾기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내년 들어 드라이파우더 규모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통상 6~10년 만기로 만들어지는 벤처펀드는 펀드 결성 이후 적어도 3~5년 사이에는 투자를 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결성된 펀드가 대부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내년과 이듬해까지 투자금 집행이 완료돼야 한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기업가치(밸류에이션) 거품이 빠지면서 소위 ‘알짜 매물’이 나타나고 있는 점도 드라이파우더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국내 IB 업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높은 이자율과 자금시장 경색으로 사모펀드들의 투자활동이 다소 둔화됐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들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투자하거나, 회생절차 또는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는 기업 등이 늘면서 드라이파우더를 소진해야 하는 사모펀드들의 공격적인 투자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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