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없는 언론과 정의를 빙자한 위선, 故 이선균이 보여준 ‘변하지 않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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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배우 숨진 채 발견, 극단적 선택 가능성 높아
알량한 정의감에 중독된 사람들, "책임 없는 쾌락 끊어내야"
증거 없이 '단독 보도' 일삼은 언론들, "칼만 안 들었지 언론이 죽인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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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선균의 생전 모습/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이 서울 중구의 한 공원 인근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사고 현장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단언할 순 없지만,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문화계는 충격적이란 입장이다. 대중들도 뜨겁게 끓어올랐다. 지드래곤이 마약 투약 혐의를 벗은 직후 이 같은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면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채 성급한 단독 보도를 일삼는 언론과 관련 정보를 시시때때로 흘리는 수사기관에 대한 성토가 부쩍 늘었다.

배우 이선균 사망, 수사기관과 언론의 ‘원죄’

앞서 이 배우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향정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경찰은 지난 10월 28일, 1월 4일, 12월 23일 세 차례에 걸쳐 이 배우를 소환 조사했지만, 경찰 조사에서 이 배우는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다. 유흥업소 실장 A씨가 건넨 약물을 수면제로 알고 투약했을 뿐, 마약을 할 의도는 일절 없었단 것이다. 26일 오후엔 변호인을 통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의뢰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 배우는 자신의 마약 투약 혐의와 관련한 증거가 A씨의 진술뿐이라며 누구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거짓말 탐지기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간 이 배우는 간이 시약 검사에 이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밀감정에서까지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언론은 연일 리포트를 내놓으며 이 배우를 저격하고 나섰다. 이에 대한 법조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경찰 측에선 무리하지 않은 수사라고 하지만, 무리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음에도 지나치게 빨리 보도된 건 명백한 비판점”이라고 지적했다. 연일 보도를 내놓은 언론에 대해서도 비판을 쏟아냈다. 관계자는 “언론 보도 역시 너무 빨리 됐다”며 “보통의 경우 증거 수집 단계에서 언론 보도가 이뤄지는데, 이선균과 지드래곤의 경우 피의자 조사 전에 언론 보도가 미리 이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경찰의 수사 진행 방향성이 ‘이선균이 마약을 했을 것’이라는 단정적인 관점에서 이뤄진 건 사실”이라며 “이 배우가 공인이라 하더라도 피의 사실에 대한 공표는 무분별하게 행해지면 안 되는데, 확인되지도 않은 혐의가 실시간으로 언론 유튜브 등으로 이슈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배우는 공인이다 보니 불합리한 수사에 대해 마음대로 주장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극단적 선택은 이 배우의 억울함과 심리적 부담감, 수치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결과물”이라고 일갈했다. 이선영 MBC 아나운서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KBS를 직접 저격하기도 했다. 이 아나운서는 “KBS의 단독 보도를 짚고 싶다. 고인의 행동을 개별적으로 비난할 순 있겠지만, 그 보도가 어떤 사람의 인생을 난도하는 것 외에 어떤 보도 가치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며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쓰인 칼이 이 배우를 넘어 선량한 피해자인 그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찔러 생채기를 내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마녀사냥, ‘방구석 위선’에 매몰된 사람들

이 배우의 심적 고통을 더욱 악화한 건 결국 인터넷 누리꾼들이란 반응도 많다. 실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영상 및 댓글 등지에선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진 상황이 아님에도 이 배우에 대한 각종 입에 담기 힘든 비난이 적지 않았다. 당시 지드래곤에 대한 마약 수사가 함께 이뤄지면서 여론이 더욱 달아오른 탓도 있었다지만, 결국 ‘아니면 말고’ 식의 인터넷 마녀사냥을 일삼은 건 누리꾼들임에 틀림없다. 악성 댓글에 고통을 호소하다 결국 꽃다운 목숨을 잃은 영혼은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도 호기심이나 알량한 정의감을 자극하는 정보가 게재되면 누리꾼들은 하염없이 ‘넌 나빠’라며 소리치기 바쁘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하는 언론과 ‘방구석 위선’에 매몰된 누리꾼들이 이뤄낸 합작품은, 비극을 넘어 고어하기까지 하다.

이 같은 비극은 비단 유명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반인에게조차 아니면 말고 식의 마녀사냥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7년에도 ‘240번 버스’ 논란이 일며 허위 선동에 휘둘리는 인터넷 여론의 맨얼굴을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사건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한 누리꾼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240번 서울 시내버스에서 아이만 내리자 엄마가 문을 열어달라고 수차례 호소했는데도 버스 기사가 이를 외면한 채 버스를 운행했다”는 글을 작성했다. 이에 버스 기사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해당 버스 기사를 해고하라’는 청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실상이 밝혀지면서 여론은 급반전됐다. 서울시 조사 결과 버스 기사는 아이가 내린 정류장에서 16초간 정차했다 출발했고, 엄마가 뒤늦게 하차를 요구했을 때는 이미 3차로에 진입한 상태였던 것이다. 3차로에 진입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하차하게 되면 오히려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진다. 버스 기사는 오히려 제대로 된 판단을 했던 것이다.

‘채선당 임산부 폭행 사건’, ‘된장 국물녀 사건’ 등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2년 음식점 채선당에서 종업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임산부의 허위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을 때도 누리꾼들은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소위 욕만 하기 바빴다. 이로 인해 프랜차이즈는 치명적인 이미지 하락을 입었고, 해당 종업원은 온갖 인신공격을 받으며 곤욕을 치러야 했으나, 이후 CCTV 확인 결과 배를 걷어차였다는 임산부의 ‘주장’은 거짓이었음이 밝혀지며 사건은 180도 뒤집혔다. 같은 해 자신의 아이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는 한 누리꾼은 “한 여성이 국물을 들고 서 있다가 자신의 아이와 충돌해 얼굴에 뜨거운 국물을 쏟고 달아났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고, 이에 누리꾼들은 가해자의 신상 파악에 나서는 등 맹비난을 쏟아냈지만 이 역시 허위로 판명됐다. CCTV를 통해 피해 어린이가 뛰어오다 충돌한 장면과 부딪힌 여성이 주방에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책임성 결여 문제 심화, 법적 처벌 요구도 ‘급증’

흔히 ‘책을 아예 안 읽은 사람보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더 무섭다’고들 한다. 유죄 추정의 원칙을 내세우며 수사관을 자처하는 무책임한 불특정 다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음에도 누리꾼들의 태도는 한결같다. “우리는 수사기관도 아닌데 어쩌라고”, “아니면 말아라”는 식이다. 알량한 정의감에 중독된 이들의 레퍼토리다.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정의감을 채우고 이후 억울함이 밝혀지면 익명성에 기대 대중들 사이로 녹아 들어 또다시 선량한 시민으로 둔갑하는 이들은 언제나 법망을 뛰어넘는다. 가짜뉴스 확산, 허위 사실 유포, 근거 없는 비난을 일삼는 악성 누리꾼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강력히 요구되는 이유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이들 악성 누리꾼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여론이 늘었다. 익명성을 앞세운 ‘책임 없는 쾌락’에 법적인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언론에 대한 성토도 부쩍 늘었다. 특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적절히 걸러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관계를 검증하고 판단하기는커녕 외려 잘못된 정보 및 인식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속보 경쟁에 치우친 언론이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일단 보도하고 보면서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이 배우 사건의 경우 지드래곤 마약 투약 사건과 더불어 지나치게 이른 시일에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는 점에서 비판점이 더욱 크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지만, 정작 펜을 쥔 이들의 책임은 ‘언론의 자유’라는 햇빛 아래 묻혀 가는 모양새다. ‘칼만 안 들었지 언론이 살인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셈이다. 국민의 알 권리가 국민의 권리기보다 언론의 ‘무기’가 된 세상, 이 배우의 죽음이 보여준 건 ‘변하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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