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대학의 자율과 경쟁 강조한 일본, 연구성과 저하 초래했다

pabii research
대학의 연구역량 제고 위해 우수 대학에 대학기금 지원
자체 예산 확보해 혁신연구 수행하는 서구 대학 벤치마킹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연구 환경 악화로 논문 생산성 하락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9월 일본 문부과학성(MEXT)은 도호쿠대학을 ‘국제연구우수대학(UIRE)’으로 선정하고 10조 엔(약 100조원) 규모의 대학기금(University Fund, UF)을 지원한 바 있다. 대학기금은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Japan Science and Technology Agency, JST)가 주관하는 연구수월성 이니셔티브로 정부 재정과 차입금을 재원으로 설립한 투자펀드다. UIRE 프로그램에 배정된 보조금도 대학기금의 수익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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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ast Asia Froum

2004년 국립대학 법인화 등 대학의 자율권 확대 추진

통상 하버드대학, 옥스퍼드대학 등 세계적인 대학들은 자교에 맞는 비전을 수립하고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한다. 반면 일본의 대학들은 정부 보조금과 중앙집권적인 관리체계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경영방식에서 벗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국내 대학들에게 미국이나 유럽 명문대학의 경영방식을 도입하도록 요구해 왔다. 지난 2004년에는 신공공관리론의 맥락에서 모든 국립대학을 법인화하기도 했다. ‘신공공관리론’은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작은 정부를 통해 효율성을 구현하기 위해 개발된 이론으로 이는 대학에 자율을 부여해 더 나은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는 달리 국립대학 법인화는 신공공관리론이 강조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학의 현실과 이론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문부과학성은 대학에 대한 통제와 규제를 강화하면서 정부 승인 없이 정원이나 학과 구성을 변경할 수 없도록 했다. 이와 함께 대형 국립대학에 심의의결기구인 이사회를 설치해 대학의 경영을 감독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존의 경영진에 이사회가 새롭게 추가되면서 대학의 거버넌스는 더욱 세부화되고 복잡해졌다. 정책적인 모순도 발생했다. 2004년 법인화 조치 직후 일본 정부는 대학 총장의 권한을 강화해 왔는데 대학에 이사회를 설치하면서 총장의 권한을 오히려 축소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학 정책의 주요 기조가 상반되면서 현장의 혼란이 가중됐음에도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아직 어떠한 설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수한 연구대학 육성을 위해 추진해 온 UIRE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는 유사한 대학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성찰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20년간 일본 정부는 다양한 대학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연구 성과는 지속 하락한 만큼 UIRE도 같은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대학기금의 재정도 문제다. 대학기금은 자금 중 일부를 대출로 조달했기 때문에 이자와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당초 대학기금의 예상 수익률은 연 4.38%로 UIRE의 수익률은 연 3%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 2022 회계연도 대학기금의 수익률은 -2.2%에 불과했다. 일본의 공적연금기금인 공적연금투자펀드(Government Pension Investment Fund, GPIF)의 최근 22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3.59%로 대학기금의 예상 수익률보다 낮았다.

마지막 쟁점은 대학기금이 실제 대학의 발전에 기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은 2019~2021년 피인용 횟수 상위 10% 논문 수에서 세계 12위를 차지했다. 20년전인 1999~2001년 세계 4위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순위가 크게 하락했다. 일본의 연구 실적이 하락하는 배경으로는 연구비 감소가 꼽힌다. 지난 20년간 일본 국립대학의 보조금이 삭감되면서 연구비가 대폭 줄었고 정규직 연구원의 수도 감소했다. 반면 교육이나 행정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은 증가했다. 박사학위 취득자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실제 전체 인구 대비 박사학위 취득자 비율을 보면 일본은 영국과 독일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연구비 경쟁 심화·소수 대학 쏠림 등 부정적 결과 낳아

당초 일본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이 연구성과를 향상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대학들이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 프로젝트를 유치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주에 실패할 경우엔 이러한 노력을 낭비라고 생각하게 됐고 이는 연구 성과 증진에 대한 동기를 약화시켰다. 연구자들이 위험과 도전은 회피하고 연구비 경쟁에서 이기는 데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되면서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는 수행할 수 없게 됐다.

과도한 경쟁이 야기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에 대한 실증적인 근거들도 있다. 일례로 스웨덴은 지난 2000년 이후 경쟁을 통해 선정되는 공모과제의 비중을 늘렸지만 논문 생산성은 오히려 감소했다. 공모과제의 비중이 확대하는 과정에서 대학들은 탈락, 미승인 등으로 인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지 못했고 이는 젊은 연구자들의 고용 불안을 초래했다. 대학의 연구 성과와 관련한 데이터들을 분석한 결과, 논문 생산성은 기본지원금의 비중과 종합적인 ‘출판 후 평가(post-publication evaluation)’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경쟁 공모를 통해 배정되는 대학기금의 비중이 커지고 대학 경영진의 통제와 관리가 강화될수록 연구 성과가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대학기금을 지원받는 대학이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몇몇 대학들이 논문 게재 건수를 늘린다고 해도 일본 대학 전체의 연구 실적이 향상되지는 않았다.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NISTEP)의 분석에 따르면 논문 생산성 측면에서 일본의 상위권 대학은 독일 대학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피인용 횟수 상위권 논문을 기준으로 하면 독일의 대학이 일본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대학들은 특화된 강점을 살려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자교만의 강점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기금이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일관성있는 정책을 통해 대학의 연구 성과 향상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손실의 발생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나아가 전사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소수의 대학이 아닌 전국의 대학에 투자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원문의 저자는 다나카 히데아키(Hideaki Tanaka) 메이지대학(Meiji University) 정책대학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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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히데아키/사진=Meiji University

영어 원문 기사는 Japan’s University Fund is ill-equipped to stem decline in research performance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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