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트럼프 2.0’에 대응해 세계 무역을 수호하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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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미국 대선, 바이든 vs 트럼프 리턴 매치 전망
트럼프, 당선 시 全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 부과 선언
트럼프 '집권 2기'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한 우려 높아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올해는 4월 한국 총선을 비롯해 미국, 러시아, 인도 등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칠 선거가 몰려 있어 ‘슈퍼 선거의 해’로 꼽힌다. 전 세계 76개국에서 전국 규모의 선거가 진행되며 세계 인구의 절반 수준인 42억 명의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한다. 그중에서도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선거는 오는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로,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 매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이 더 이상 패권국으로서의 의무와 비용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기조는 ‘보편적 관세 10%’ 공약으로 더욱 극명해지고 있다.

Republican presidential candidate and former U.S. President Trump hosts a South Carolina Republican presidential primary election night party in Columbia
사진=East Asia Forum

10%의 ‘보편적 관세’ 적용 시 보복 관세 등 확산 우려

지난해 1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재집권에 성공하면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수입품에는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트럼프가 제안한 ‘보편적 관세’는 미국 대공황 초기인 1930년 제정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연상케 한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2만여 품목의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한 법안으로 당시 미국의 조치에 자극을 받은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까지 경쟁적으로 수입관세를 높이면서 세계 공황이 확대됐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보편적 관세’가 실현될 경우 각국 정부가 보복 관세와 규제를 강화하는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서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매우 근접한 수준의 충격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뒤 세계 주요국은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체제를 시작했다. GATT는 미국을 포함한 23개국이 참여해 조인한 국제 무역협정으로 관세장벽과 수·출입 제한 등 보호무역주의를 개선하고 자유무역을 증진시키기 위해 발족했다. 이후 1994년 제8차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GATT의 회원국들은 무역 자유화를 확대하고 국제 무역규범을 관장하는 국제기구의 출범에 합의했고 이듬해 세계무역기구(WTO)가 창설됐다. 지난 30년간 WTO가 주도하는 ‘규칙 기반 무역체제’가 구동되면서 모든 국가가 편협한 이기심에 따라 행동해 모두에게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피할 수 있었다. 그동안에는 규칙 기반 무역체제가 강조해 온 무역 자유화의 가치가 거의 실현된 것처럼 보였지만 최근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국제 무역의 규칙들로 인해 WTO의 시스템이 위협받고 있다.

국제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따르면 국제 무역에서 보복과 앙갚음은 약탈적인 조치로 이어지고 이로 인한 피해를 가중시킨다. 하지만 실제 국가 간 교역에서 악자가 되면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와 국가주의의 본능에 따라 움직여왔다. 지난 2019년 미·중 간 무역전쟁은 무역 보복의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트럼프는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25% 인상했고, 이에 중국은 미국산 제품에 5~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맞불을 놨다. 중국 정부는 미국산 원재료와 중간재 가격이 인상되면 생산비용이 증가하는 등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보복 관세를 감행한 것이다.

‘트럼프 2.0’의 보호무역주의, 국제 질서의 격변 예고

트럼프는 집권 1기 당시, 취임 첫날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TPP)’을 탈퇴한 것을 제외하고는 글로벌 무역전쟁을 야기하고 국제기구의 시스템을 훼손하는 공작을 시행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집권 2기에는 보편적 관세 10% 인상을 포함해 무역정책과 관련해 내놓은 공약을 바로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높다. 집권 1기 시절 백악관과 행정부에서 트럼프의 극단적 조치에 대응해 세계 무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버텼던 인사들이 집권 2기에는 중용되지 못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통상 질서의 일대 격변을 예고한 ‘트럼프 2.0’의 정책들은 취임 첫날부터 국제 무역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는 세계 무역 시스템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쇠퇴하게 된 원인이자 결과이며 현상 그 자체다. 지난 2019년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일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WTO의 분쟁해결 제도가 개도국 지위에 있던 중국에 유리하다며 상소기구 자체를 무력화시켰다. WTO 상소기구는 재판관 역할을 하는 7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는데 당시 미국이 위원 선임을 거부하면서 상소위원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이후 WTO의 분쟁해결 기제가 마비됐지만 트럼프에 이어 집권한 바이든 행정부도 이를 되돌리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의 경우, 트럼프 집권 당시 이미 WTO가 규정 위반 판정을 내렸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국가 안보를 이유로 현재까지 해당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WTO의 잘못된 해석과 결정을 강력히 거부한다”며 “해당 판정은 WTO의 개혁 필요성만을 확인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USTR은 지난해 말 WTO의 전자상거래 협상과 다자간 디지털 무역 규범을 위한 협상, 그리고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내 다자간 협상에서도 철수했다.

미국의 불공정과 독단에 맞서려면 집단행동 불가피

이러한 트럼프의 극단적인 정책기조는 세계 무역뿐만 아니라 미국 내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세계화와 혁신의 과정에서 미국은 점점 더 부유해졌지만 미국인의 상당수는 수십 년간 그 이익을 누리지 못했다.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이러한 미국인들의 불만을 더 부추기거나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오는 11월에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미국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함으로써 WTO의 협상이나 주요국의 합의과정에서 공정한 경쟁과 자유무역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스포일러 역할을 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의 정책이 더 무례하고 극단적일 뿐이다. 문제는 미국의 불공정하고 독단적인 횡포에 국제 사회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규칙에 기반한 무역 시스템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집단행동이 불가피하다. 전략적으로 볼 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모방하거나 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하기보다는 미국을 고립시키는 것이 세계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WTO가 추구하는 원칙과 가치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다자가 합의하는 기준과 원칙, 프레임워크가 마련되지 못할 경우 양자 간 혹은 지역 간 체결하는 자유무역협정(FTA)만으로는 국제 무역의 개방과 안정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국제 무역에서 법치주의가 붕괴된다면 무역정책의 무기화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은 특정 권력에 의한 강압적 통치와 폐쇄적인 시장으로의 후퇴뿐이다. 그런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제 무역의 원칙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WTO 각료회의에서 디지털경제 등 현안 진전 기대

26일부터 3일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결리는 ‘제13차 WTO 각료회의(MC13)’는 이러한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2년 열린 제12차 각료회의(MC12)가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MC13에 대해서도 조심스럽지만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MC13에서는 전자상거래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전자상거래 협정’과 개도국 내 외국인직접투자 촉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투자원활화 협정’에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전자상거래 협정은 협정문의 내용을 두고 이견이 있을 수 있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협정문이 채택되기 위해서는 164개 회원국이 모든 조항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국의 이권에 따라 더 많은 나라의 동의와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치가 전개되고 이 과정에서 전자상거래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면 이는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디지털경제는 실물경제의 2.5배에 달하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최근 실물상품과 서비스 거래는 디지털경제의 흐름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의 최적화와 기술 혁신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인공지능(AI)의 확산을 고려하기 전의 이야기다. AI의 관점에서 국경과 규제의 경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이버 공간에서 AI의 발전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이 가진 잠재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부정적인 파급효과와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국가 간 협력체계가 필요하다.

MC13가 세계 무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필요한 모멘텀을 제공할 수는 있다. 또한 다자간 협력은 고착화된 보호무역주의 정서에 맞서 미국 내부에 자유무역주의를 옹호하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과거에도 효과가 있었고 지금도 유효하다. 이번 MC13는 트럼프 2.0에 대비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이 자리에서 각국은 세계 무역의 원칙을 바로 잡고 자유무역주의를 수호하는 기제와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의 리더십 변화가 절실하다. 역사적으로 무역과 기술 발전으로부터 도태되는 패자는 항상 존재해 왔지만 국제 사회의 흐름을 외면하거나 망각하는 행위는 결코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2000년대 들어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지적 대응이 이어졌고 최근에는 과거 글로벌 스탠다드를 주도해 온 주요국에서 반세계화의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 2019년 트럼프 집권 1기의 무역전쟁과 2020년 영국의 브렉시트 등이 그 예로 꼽힌다. 반면 동아시아는 대체적으로 이같은 변화와 리스크를 잘 피해 왔다. 하지만 이제 세계 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국제 질서의 모범적인 수용자로 WTO의 출범과 함께 규칙 기반 무역 시스템에 빠르게 합류해 부국이 된 만큼, 이제는 시스템 메이커이자 국제사회의 리더로 발돋움해야 할 때다.

원문의 저자는 호주국립대학교(ANU)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 산하 동아시아포럼(EAF) 편집위원회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rump, the WTO and defending global trade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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