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 규제 강화하고 나선 EU, 우리나라는 아직도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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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워싱·강제 노동 제동 건 EU, ESG 규제 강화에 박차
공급망 속 숨은 그린워싱·강제 노동, '가짜 ESG' 잡아라
ESG 규제 부족한 한국, 글로벌 시장 생존하려면 손질 필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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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그린워싱(greenwashing, 위장환경주의)·강제 노동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에코 디자인 규정 개정안'(ESPR)을 최종 승인했다. ESG 경영이 글로벌 기업의 ‘주요 경쟁력’으로 급부상한 가운데, 세계 각국의 그린워싱 규제에도 속도가 붙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국내 산업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지지부진한 그린워싱 규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EU의 광범위 ‘ESG 규제’ 폭탄

ESPR 지침에 따르면, EU는 차후 명확한 증거 없이 ‘환경친화적’, ‘환경 중립적’, ‘에코(eco)’ 등 일반적인 친환경 표시를 금지할 예정이다. 제품 라벨의 명확성·신뢰성을 제고하고 그린워싱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린워싱은 기업이 겉으로만 친환경 이미지를 홍보하면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ESG 경영의 ‘긍정적인 이미지’만을 취하는 가짜 친환경 기업·상품을 일컫는 용어인 셈이다.

EU는 차후 공식 인증 제도에 근거한 지속 가능성 표시 라벨만을 인정할 예정이다. 아울러 라벨의 제품 보증 정보 가시성을 높이는 한편, 보증 기간이 확장된 제품을 우대하는 방식의 통일된 제품 라벨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개정안을 기점으로 ESG 경영의 주요 논제 중 하나인 ‘강제 노동’ 규제 역시 강화된다. 강제 노동 제품 수입을 차단해 유럽 역외 국가 기업까지 ESG 경영을 의무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해당 정책이 사실상 신장 위구르 소수민족 인권을 탄압하는 중국 기업을 조준하고 있다고 본다.

ESPR에는 기업의 유해 물질 사용을 제한하는 정책도 포함됐다. 단 EU가 제시한 유해물질의 정의가 매우 광범위한 만큼, 업계의 논의 및 갈등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EU에 등록된 약 2만3,000개 화학물질 중 1만2,000개에 달하는 물질이 우려물질(SOC)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유럽화학산업협회(CEFIC)는 올해 1분기 ESPR 본격 시행 이전 SOC 정의를 신속히 확정할 것을 EU집행위원회와 EU공동연구센터에 촉구하고 나섰다. SOC 범위가 개선되지 않은 채로 ESPR이 시행될 경우, 향후 배터리, 섬유, 철강, 타이어 등 수많은 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글로벌 시장 덮친 그린워싱

EU가 그린워싱·강제 노동을 특히 견제하고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이 같은 ‘가짜 ESG’가 청렴한 듯 보이는 글로벌 유통망 곳곳에서 족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8월, 미국의 유통 업체인 월마트(Walmart)와 센트릭 브랜즈(Centric Brands)는 강제 노동 의혹으로 캄보디아 공급망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캄보디아 프놈펜 교정센터(CC2) 수감자들이 생산한 의류 등 섬유 제품이 두 기업에 유통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월마트는 “모든 종류의 강제노동은 혐오스러운 일”이라며 수감자들의 강제 노동을 ‘착취’라고 묘사했다.

인도의 경우 ‘플라스틱 중립(plastic neutral)’과 관련한 그린워싱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일회용 플라스틱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로, 매일 2만6,000톤 이상의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수의 인도 기업이 플라스틱 중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중립이란 기업에서 생성된 플라스틱과 동일한 양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회수, 재활용·용도 변경 등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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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인도의 소비재 회사 다부르(Dabur)는 자사가 생산한 플라스틱을 100% 재활용해 인도 최초의 플라스틱 중립 회사로 등극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힌두스탄 레버(Hindustan Lever), P&G, 암웨이 인디아(Amway India) 등 수많은 인도 소비재 대기업들도 잇따라 플라스틱 중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시장은 이 같은 주장이 플라스틱 중립에 대한 검증·인증이 없는 인도의 허점을 악용한 그린워싱이라고 보고 있다. 애초 인도 정책 문서에는 ‘플라스틱 중립’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조차 없다는 지적이다.

그린워싱에 관대한 대한민국, 관련 법률 정체 상태

세계 각국이 그린워싱과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비교적 관련 문제에 관대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산업계 곳곳에서 그린워싱 사례가 꾸준히 적발되고 있지만 사실상 규제는 ‘솜방망이’ 수준이기 때문이다. 최근 3년간(2020~2022년) 그린워싱으로 적발된 국내 사례 4,940건 중 당국의 시정명령을 받은 경우는 9건(0.2%)에 그친다. 이외 4,931건(99.8%)은 사실상 강제력이 없는 행정지도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그린워싱 규제의 가장 큰 장애물은 허술한 제도다. 현행법은 광고 규제의 대상을 제품(제조물)에만 한정하고 있다. 그린워싱을 비롯한 기업 이미지 광고는 제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지난 8월에는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업의 사업 활동에 대한 그린워싱 홍보를 규제하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환경기술산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개정안은 환경 광고 규제의 대상을 기업의 서비스 제공 과정 홍보·사업 홍보로 확대,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환경성 제재 대상을 생산자·판매자·서비스 제공자 등 사업자까지 확대하고, 화석연료 기업의 녹색기업 지정을 제한하는 내용도 담겼다. 녹색기업은 △오염물질의 현저한 감소 △자원과 에너지 절감 △제품의 환경성 개선 △녹색경영체제의 구축 등을 통해 환경개선에 크게 이바지하는 기업·기관에 주어지는 일종의 인증이다.

문제는 해당 법안이 발의 이후 좀처럼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 및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 강화에 힘을 싣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차후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그린워싱을 비롯한 ESG 분야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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