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이 없다” 텅 비어버린 국내 대학원, 빈틈 ‘외국인’으로 메꾼다?

pabii research
국내 대학 유학생 16만 명 시대, 대학원생 중 14.3% '외국인'
한국 대학원서 등 돌리는 내국인들, 해외 떠나거나 포기하거나
열악한 처우·갑질·교육 수준 저하까지, 한국 고등교육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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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학생 부족’ 문제에 시달리는 국내 대학원이 외국인 학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4일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대학원 재적생(33만6,596명) 중 외국인 유학생은 14.3%(4만8,153명)에 달했다. 2010년 5.1%(1만6,291명) 수준이었던 유학생 비중이 3배가량 급증한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 및 국내 인재의 해외 이탈 추세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수년간 이어져 온 정부의 유학생 유치 정책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양상이다.

“유학생 늘리자” 정부의 꾸준한 노력

외국인 유학생 수가 급증한 것은 정부가 정원 확보에 난항을 겪는 국내 대학의 사정을 고려,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던 정책 기조다. 실제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국내 대학(4년제 및 전문대, 대학원) 유학생 수는 2010년 8만3,842명에서 지난해 16만6,892명으로 두 배가량 급증했다(학위 및 비학위과정 포함).

교육부는 차후 2027년까지 학부생을 포함한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상태다. 지난해 발표한 ‘유학생 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통해 △유학생 유치 관문 혁신적 확장 △맞춤형 인재 유치 및 지역 정주 방안 마련 △첨단·신산업 분야 인재 전략적 유치 △글로벌 교육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유학 저변 확대 등 추진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유학생 유치 목표를 달성할 경우 현재 대비 약 2조1,500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추가적인 유학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뭘까. 국내 유학생은 2012년 유학생 유치 정책(Study Korea 2020) 이후 2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선진국과 비교하면 그 수가 적은 편이다. 유학생의 국내 취업·정착 비율 역시 상당히 저조하다. 전북대학교 윤명숙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유학생의 졸업 후 진로 선택 비중은 △본국 귀국 29% △국내 진학 11% △국내 취업 8% 등으로 나타났다. 석·박사급 우수 인재가 우리나라의 경쟁력으로 흡수되는 사례가 극히 적다는 의미다.

내국인 학생 급감, 서울대도 ‘줄줄이 미달’

이 밖에도 정부가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힘쓸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국내 대학원의 참담한 충원 실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3학년도 서울 주요 10개 대학의 일반대학원 충원율은 91.1%로 모두 미달이었다. 이는 2013학년도 100.9% 대비 10%p가량 급감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최상위권 대학으로 손꼽히는 서울대학교마저도 이 같은 ‘학생 가뭄’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2024학년도 서울대학교 독어독문과·노어노문과는 석사 과정 지원자를 한 명도 유치하지 못했다. 중어중문학과, 고고미술사학과(고고학 전공), 철학과(동양철학 전공),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등 여타 인문대학원에는 박사 과정 지원자가 아예 1명도 없었다. 자연대 역시 학과 절반은 정원 미달이었으며, 인문·자연대 대비 입학 수요가 높은 공과대도 석사 과정 중 60%가량이 미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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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nsplash

이공계의 경우 학생의 해외 이탈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3~2022년) 외국 대학으로 떠난 이공계 유학생(석사 이상)은 9만6,062명에 달했다. 이들은 해외 대학이 △시설 투자·인건비를 아끼지 않아 처우가 좋고 △충분한 연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진학 시 국내 대학원 대비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대학원은 이렇다 할 변명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떠나는 유학생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아슬아슬’ 국내 대학원의 실태

인재 유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국내 대학원의 열악한 처우가 지목된다. 한 학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석사 과정 연구원은 월 200만원 전후, 박사과정 연구원은 월 250만원 전후의 월급을 받는다”고 귀뜸했다. 과제 수행 정도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만큼, 사실상 전액을 수령하는 학생은 극소수라는 설명이다. 대다수 선진국 대학이 대규모 장학금, 상한선 없는 임금제 등을 앞세워 고급 인재 유치 경쟁을 펼치는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대학원 내 강압적인 위계질서 문제 역시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1월 숭실대학교 소속의 대학원생 A씨(24)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같은 달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에 참가한 학부생들을 인솔했는데, 그 과정에서 교수로부터 폭언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이 밖에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갑질’ 사례가 수없이 많다고 호소한다. 우수 인재들이 척박한 환경과 억압 속에서 좀처럼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원이 학문 연구의 장에서 ‘가시밭길’로 변모한 가운데, 국내 인재들은 속속 국내 학위 취득을 포기하고 있다. 정부의 해외 유학생 확보 정책이 사실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처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학계 일각에서는 일선 현장의 교육 수준이 꾸준히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유학생 유치는 일시적인 봉합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학생도, 양질의 교육도 없는 현 한국 고등교육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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