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중국에, 기술력은 일본에 밀린다? 입지 잃은 한국 배터리 시장

pabii research
LFP 앞세워 질주하는 중국 배터리 시장, 글로벌 영향력 확장
선도지능 등 소재·부품·장비 기업 고속 성장, 국내 시장까지 진출
"중국은 싸고, 일본은 기술력 있는데" 입지 모호해진 한국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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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배터리 소재·부품·장비 업계의 국내 시장 침투에 속도가 붙고 있다. 양극재 전구체, 분리막 등 소재 부문에 국한되던 중국 기업의 영향력이 장비와 부품 부문까지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가격이 저렴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중심으로 경쟁력 확보에 성공한 가운데, 보다 ‘저렴한 배터리’를 제작하고자 하는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 수요가 중국 기업으로 집중되는 양상이다.

덩치 키워가는 중국 소재·부품·장비

중국 배터리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 내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현시점 중국 배터리 장비 업체의 선두 주자는 전극·조립·화성 등 배터리 제조 장비 전반을 취급하는 선도지능(우시리드인텔리전트)이다. 지난 2022년 기준 선도지능의 매출은 자그마치 139억3,235만 위안(약 2조5,723억원)에 육박했다. 국내 주요 배터리 장비 업체인 피엔티(4,178억원), 원익피앤(2,888억원) 등의 동일 기간 매출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선도지능은 △CATL △비야디(BYD) 등 자국 업체를 넘어 세계 각국의 배터리 기업에 장비를 납품하고 있다. 스웨덴 노스볼트, 프랑스 ACC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며 유럽 시장에 진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 역시 선도지능의 고객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시장의 수요를 확인한 선도지능은 지난해 경기도 안양에 한국 법인을 설립, 본격적인 한국 시장 공략에 착수한 상태다.

배터리 활성화 장비 업체인 항커커지 역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회사 측이 최근 발표한 실적 전망치에 따르면, 항커커지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7.1~87.5% 증가한 8억2,000만~9억2,000만 위안 사이일 것으로 전망된다.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항커커지는 지난 2022~2023년 사이 SK온 헝가리·미국 배터리 공장 등에 제품을 공급, 국내 공급망 진입에 성공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전구체(CNGR, GEM) △양극재(샨샨, 롱바이) △음극재(BTR, 즈천과기, 샨샨) △전해액(캡켐, 궈타이화룽) △분리막(상하이에너지, 시니어) 등 국내 소재·부품·장비 분야 전반에 중국 기업의 손길이 닿고 있다. 국내 배터리 생태계 전반의 중국 의존도가 점차 상승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실제 우리나라의 중국산 배터리 소재 의존도는 품목에 따라 최대 99%까지 치솟은 상태다.

한국, 동아시아 ‘배터리 3파전’ 패배 위기

중국 기업의 국내 배터리 시장 침투에 속도가 붙은 가운데, 업계에서는 한국이 동아시아 ‘배터리 3파전’에서 승기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LFP를 필두로 한 저가 배터리 부문에서는 중국이, 기술력을 앞세운 첨단 배터리 부문에서는 일본이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국내 배터리 소재·부품·장비 기업에는 중국과 가격 경쟁을 벌일 만한 ‘여유’가 없다. 중국이 거대 내수 시장과 광물 자원, 저렴한 인건비 등을 앞세워 시장을 석권할 경우, 국내 기업은 무력하게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자체적인 소재·부품·장비 기술을 갖춘 일본 역시 거대한 위협으로 평가된다. 현시점 한국 배터리 시장의 강점은 패키징(배터리 제조 공정에서 배터리를 밀봉하는 후공정) 분야에 국한돼 있다. 생산을 위한 능력은 갖추고 있지만, 산업을 떠받치는 ‘기반’이 비교적 부실하다는 의미다. 반면 일본은 자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반도체·배터리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차후 일본이 소재·부품·장비부터 완성품 생산까지 이어지는 자체 배터리 생태계를 구축할 경우, 우리나라 배터리 업계는 경쟁력을 잃고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배터리 소재·부품·장비 자립화율은 30% 수준에 불과하며, 2030년 자립화율 목표치도 50%에 그친다. 주요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이 강점을 살린 성장 전략으로 빠르게 덩치를 불려가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국내 배터리 시장의 미래 성장을 위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현재의 시장 상태에 안주할 경우 우리나라 배터리 시장 전반이 중국·일본 중심의 시장 질서에 무력하게 예속되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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