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원사업 위한 하림그룹의 ‘선택과 집중’, HMM 내려 놓고 양재 물류단지에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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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 승인
랜드마크 구축 위해 교통 인프라 개선도
HMM 인수 무산된 하림의 ‘전화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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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 조감도/사진=서울시

하림그룹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꼽히던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 사업이 서울시 승인을 통해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서울시와 하림은 6조원(약 45억 달러)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물류와 업무, 연구개발(R&D) 시설 등이 어우러진 랜드마크를 건설해 양재동 일대의 관광명소로 활용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올해 초,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 인수에서 물러난 하림그룹이 주력 사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안정화를 도모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서울시 물류 경기 의존도 70%→34% 전망

서울시는 29일 양재동 일대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 사업에 대한 계획안을 승인·고시했다고 밝혔다. 계획안에 따르면 서초구 양재동 225 일대(8만6,002㎡)에 지하 8층~지상 58층, 8개 동 규모로 들어서는 도시첨단물류단지에는 물류와 R&D, 업무·판매시설 등과 함께 아파트 998가구 및 오피스텔 972실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물류 소화를 위해 필요한 시설의 70%가량을 경기도에 의존해 왔지만, 양재 첨단물류단지가 완공될 경우 34%까지 의존율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시와 하림은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를 친환경 물류단지로 조성할 방침이다. 생산자 1차 포장 후 직배송으로 배송과정에서 발행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단지 내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자원화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배송 쓰레기는 70%, 음식물 쓰레기는 최대 10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외에도 탄소 발생을 줄이는 수소차와 전기차 활용 등을 검토 중이다.

이번 사업 승인은 지난해 말 서울시의 조건부 승인 이후 약 두 달 만에 이뤄진 것으로, 당시 서울시는 하림그룹을 비롯한 공사 주체가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이는 대책을 마련한다는 조건으로 사업 계획 승인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해당 부지가 서울 남쪽 경계에 위치해 시민들의 접근성이 다소 낮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림그룹 등은 신분당선 만남의 광장역(가칭) 역사 신설을 위해 1차분 사업비 500억원을 우선 부담하고, 향후 전문기관 검증에 따라 추가 부담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시가 제시한 조건에는 외부 교통 대책 개선에 대해 사업자 분담 비율을 높이는 내용도 포함됐다. 신양재 나들목(IC)을 새로 만드는 데 투입되는 사업자 분담 비율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초 292억3,000만원으로 추산됐던 신양재 IC 신설 사업자 부담금은 379억6,000만원으로 87억원가량 늘었다.

지역주민을 위한 주택 및 녹지 시설을 갖춰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사업 계획에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R&D 관련 연구·업무시설(2만3,600㎡) 확충, 공공임대주택(45가구) 공급, 서초구 재활용처리장 현대화 등이 포함됐다. 이와 같은 지역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투입되는 금액은 5,607억원(약 4억2,000만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는 향후 서울시의 건축 심의와 서초구의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 등을 거쳐 이르면 2025년 상반기 착공한다. 준공 예정 연도는 2029년이다. 서울시는 “양재 IC 일대는 경부고속도로와 맞닿아 있어 서울 남부로 진입하는 관문임에도 상습적인 교통 정체와 개발 지연으로 장기간 방치돼 있었다”고 진단하며 “대규모 물류단지와 R&D 산업 유치로 새로운 도심기능과 관광명소로 탈바꿈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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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해원연합노동조합(선상노조)의 선상 시위 모습/사진=HMM 해원연합노동조합

‘큰 그림’ 위한 하림의 HMM 인수 포기

시장에서는 올해 초 투자 업계의 가장 큰 화두였던 HMM 인수 무산이 하림그룹에는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하림의 인수 자금 조달 능력이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하림의 HMM 경영권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게 당시 업계의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HMM 노조는 “하림그룹이 HMM을 인수하려면 자기자본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차입하거나 유상증자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회사 팬오션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는 하림 측의 입장과 관련해 “무리하게 인수 자금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팬오션의 유동성 위기가 불가피하고, 이는 결국 모회사 하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같은 시장의 우려에도 인수 의지를 꺾지 않았던 하림그룹의 발목을 잡은 건 다름 아닌 재무적 투자자(FI)의 존재다. 재무적 투자자인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의 지분 의무 보유 기간을 둘러싸고 매각 측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다. 당시 하림그룹은 투자금 회수를 고려해 JKL파트너스를 지분 의무 보유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지만, HMM 측에서는 하림이 보유 현금을 해운업 투자보다 다른 부문에 활용할 것이라는 걸 문제 삼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결국 HMM 인수 컨소시엄은 해체 수순을 밟았지만, 당초 하림그룹이 HMM 인수를 위해 마련한 재원은 고스란히 물류단지 조성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서 ‘하림그룹의 HMM 인수 포기는 더 큰 그림을 위한 결정’이라는 풀이가 나오는 이유다.

‘잘하는 일’ 집중, 시장 점유율 확대·수익성 제고 노린다

하림은 그간 그룹 숙원사업으로 양재 물류단지 개발에 대한 의지를 공공연히 밝혀왔다. 하림에서 생산하는 가정간편식을 당일·신선 배송으로 서울 내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17개에 달하는 국내 육계 업체 중 하림의 시장 점유율은 2022년 기준 19.1%로 집계됐다. 물류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수도권 소비자 직배송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점유율 확대는 물론 수익성까지 제고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2010년대 초반부터 서울 내 물류단지 조성을 추진한 하림은 2016년 4,525억원에 양재동 부지를 매입한 후 용적률 등 각종 건축 규제를 이유로 서울시와 마찰을 빚으며 1,500억원 상당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해당 부지는 이처럼 오랜 시간 개발 사업이 표류하는 동안에도 ‘서울 강남권 최후의 금싸라기 땅’이라는 평가를 놓치지 않았다. 심지어 부동산 시장에서는 “해당 부지를 개발하는 사업자는 서울시의 특혜를 받는 것과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사업비를 훌쩍 상회하는 막대한 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주는 이루는 가운데 하림그룹은 자기자본 2조3,000억원(약 17억2,500만 달러)을 비롯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아파트·오피스텔 분양 수입으로 사업비를 충당할 계획이다. 선택과 집중을 위해 해운 물류 서비스를 포기하고 보다 안전한 길을 택한 하림그룹의 결단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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