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풍조 아래 퇴직 법관·검사 ‘급증’, 인재 부족에 등용문 넓혔지만 “급여부터 올려야”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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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판·검사들, "격무와 박봉이 큰 원인"
인재 충원 나섰지만, 찬반 논란·실효성 논란에 '지지부진'
절대 수 부족에 혐의 벗은 로스쿨, 이젠 현직 판사들도 "증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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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과 검찰이 인원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이들이 늘면서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는 판·검사의 인기가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그나마 유입되거나 잔존해 있던 이들 가운데서도 사표를 내는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법원과 검찰은 인재 보충을 위해 채용 관문을 넓히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미 마음이 돌아선 법조계 인재들을 끌어오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쏟아진다.

퇴직 검사 145명·법관 82명, 변호사로 빠지는 법조인들

10일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동안 퇴직한 검사는 145명에 달했다. 2018년 75명과 비교하면 2배 가깝게 증가한 셈이다. 일은 많은 데 비해 봉급이 적은 현실에 ‘검사’ 타이틀만 달고 변호사 시장으로 나가 버리는 이들이 늘어난 탓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퇴직 러시는 법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 법관은 82명으로, 2019년 53병 대비 크게 늘었다. 퇴직자 수가 늘면서 업무 효율도 수직 낙하 중이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고등법원에서 파기된 1심 판결 비율이 형사 사건 기준 2021년 43.6%에서 지난해 46.4%로 늘었다. 민사 사건의 경우 동기간 29.9%에서 43.9%로 증가 폭이 더 컸다.

이에 두 기관에선 인재 확보를 위한 다각도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법무부와 검찰은 경력 검사 선발제도를 개편했다. 실무기록평가(필기시험)를 폐지하겠단 것이다. 실제 필기시험 폐지의 영향인지 올해 경력 검사 지원자 수가 과거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법원 역시 지원 문턱 낮추기에 돌입했다. 법조일원화 정책 시행을 미루는 게 당면 과제다. 현재 법관 지원 자격은 법조 경력 5년인데, 내년부턴 법조일원화 정책이 시행돼 7년 이상 경력자로 바뀐다. 해당 법이 시행되면 경력 법관 충원이 더 힘들어질 전망인 만큼, 법원행정처는 법조 경력을 현행 5년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기관들의 고육지책에도 법조계 안팎에선 찬반양론이 뜨겁게 맞붙는 모양새다. 검사 필기시험의 경우 폐지 이후 지원자가 늘어나긴 했으나 개중 진정으로 실력 있는 법조인이 어느 정도인지는 판가름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사실상 ‘헛물’만 들이켜게 될 가능성도 있단 것이다. 판사 임용 기준은 반대가 더욱 극심하다. 사법부의 폐쇄성을 없애고 민주적 사법체계를 만들기 위해 30년간 추진돼 온 법조일원화 정책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키려는 술책이라는 주장이 쏟아진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은 “법관 임용 경력 요건 완화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입된 법조일원화라는 법원개혁의 방향을 되돌리는 퇴행”이라며 “판수 수급 문제를 해결하려다 오히려 대형로펌 등이 5년을 기다렸다 후관예우를 위해 예비적 법관을 합법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우려마저 배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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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 들어간 로스쿨 책임론, “담론 양상 바뀌었다”

한편 과거 관련 논란으로 꾸준히 고역을 앓던 ‘로스쿨’은 이제 언급조차 되지 않는 모양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담론과 시각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4년께만 해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나오면 줄곧 로스쿨이 문제의 원인으로 꼽히곤 했다. 법조계의 문턱을 낮추겠다며 등장한 로스쿨이 사실상 변호사 시험 준비기관으로 전락했단 게 대체적인 골자였으며, 여기에 더해 변호사 시험 준비에만 몰두하다 보니 법조인으로서의 역량 자체가 부족한 경향이 짙어졌단 내용이 곁다리로 나오는 정도였다. 로스쿨 도입 당시 연수기관을 못 박지 않아 법조인이 사실상 산화하고 있단 비판도 있었다. 변호사 시험 합격 후에도 법원, 검찰, 로펌의 부름을 받지 못한 이들이 연수기관을 찾지 못해 전국을 떠돌아다니기만 한단 것이다.

그러나 최근엔 문제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 세대까지만 해도 판·검사의 명예에 대한 인식, 일종의 ‘로망’이 있었지만, 이제 그런 건 없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경향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판·검사의 직업적 메리트가 하락, 결국 법조계의 변호사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한 것이다. 현시점에서 로스쿨의 변호사 준비기관화 같은 담론은 크게 의미가 없다. 로스쿨을 가든 사법고시를 통과하든, 어차피 변호사로 인원이 대거 빠지는 건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엔 법조계 안팎에서도 문턱 낮추기보단 급여 인센티브를 더욱 높이는 게 법관 유인에 더 용이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현직 판사들의 의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실제 엄상필·신숙희 대법관 후보자는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법관 증원의 필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장기적으로 재판 지연 문제에 대처하려면 법관 증원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다만 법조계의 소망과는 달리 법관 정원을 늘리는 내용을 담은 판사정원법 개정안은 올해도 자동 폐기 위기에 놓여 있다. 총선이 불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번 3월엔 임시 국회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판사정원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개정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22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법안이 다시 제출될 필요가 있지만, 2022년 12월 발의돼 지지부진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법안이 온전히 통과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적지근한 반응만 보이는 국회에 담론 변화를 이끈 법조계도, 불편이 가중되는 시민들도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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