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좌초된 연금개혁, 미래세대 부담 줄인다더니 “다음 국회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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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소득대체율 ‘43% vs 45%’ 합의 결렬
결승선 눈앞서 멈춘 연금개혁, 해외 출장도 취소
연금개혁 쟁정화 막고 여야 대타협 이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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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개혁과 관련한 국회 협상이 여야 갈등 끝에 결국 좌초됐다. 이로써 21대 국회도 2007년 이후 17년간 표류한 연금개혁을 매듭짓지 못하게 됐다. 이에 따라 공은 오는 30일 열리는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됐고, 사실상 제로베이스에서 재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연금개혁 22대 국회로 떠넘긴 국회특위

7일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에서 결론을 내자고 합의하고 의견 접근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소득대체율 2%포인트 차이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입법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21대 국회가 끝나는 29일까지 아직 3주가량 남았지만 일찌감치 ‘합의 불가’를 선언한 셈이다.

8일부터 5박 7일 일정으로 예정돼 있던 특위의 영국·스웨덴 출장 일정도 취소됐다. 해당 출장은 특위 위원들이 두 나라의 연금개혁 과정을 살펴보고 최종 합의를 시도하기 위해 추진됐지만 ‘외유성 출장’ 논란에 직면했다. 주 위원장은 “결론을 못 내고 오면 출장 동기까지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출장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여야 간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과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참석했다.

김 의원은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2%포인트 차이가 17년 동안 못 했던 연금개혁을 파탄시킬 만큼 중요한 차이냐”며 “막판에 합의하려 하는데 구조 개혁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할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구조 개혁 논의 없이 모수 개혁(보험료율·소득대체율만 조정)만 하자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17년간 (개혁을) 안 해서 모수 개혁만으로는 필요한 연금개혁을 못 한다”며 “구조 개혁이 선행되는 게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말했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인 주 위원장은 2%포인트의 소득대체율 차이에 대해 “45%로 하면 현재 연금 고갈 시기(2055년) 대비 8년 연장되는데, 43%로 하면 9년 더 연장된다”며 “또 연금개혁은 70년 뒤 재정을 보고 하는 건데, 2090년을 기준으로 하면 이 2%포인트가 상당한 차이를 가져온다”고 반박했다. 이어 국민의힘 측은 “애초에 합의 의지가 없었다”는 민주당 측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연금특위 위원들은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소득대체율을 각자 한 발씩 양보해 44%로 합의하자”는 제안도 했지만 이는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차례 개혁 이후 제자리걸음

국민연금은 1988년 전두환 정권 때 처음 도입됐다. 1973년 국민복지연금법을 제정했으나 중동 전쟁과 오일 파동으로 미뤄졌다가 1988년부터 시행한 것이다. 그 뒤 총 2차례의 개혁이 이뤄졌으나 줄곧 제자리걸음이다. 첫 번째 개혁은 김대중 정부 당시 단행됐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종전 70%에서 60%로 낮추고, 연금 수급 시기를 기존 60세에서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는 소득대체율을 40%까지 내렸다. 보험료율은 소득에서 내는 보험료의 비율, 소득대체율은 연금 가입 기간의 평균 소득에 대하여 받는 비율을 말한다.

연금제도 개혁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내는 돈에 비해 받는 돈이 너무 많은 데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되는 탓에 수령자는 늘어나는 데 비해 출산율 저하로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920조원의 적립금은 2055년경에 모두 소진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공론화위원회는 연금개혁 최종안으로 현행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를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바꾸자는 ‘소득보장론’과 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로 하자는 ‘재정안정론’ 중에서 전자를 택했다. 시민대표단 설문조사에서 처음에는 재정안정론이 우세했으나, 나중에는 소득보장론 지지자가 더 많았다.

두 개의 안을 싸고 여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당초 보험료율 15%, 소득대체율 50%를 제시했지만 “기업 부담이 높아 수용하기 어렵다”는 여당 측 의견을 수용해 최종 수정안을 내놨다고 한다. 그러나 여당 측이 소득대체율 43%를 고수했고 협상 막판엔 구조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며 스웨덴식 연금 모델 등 다른 개혁안을 제시해 초점을 흐렸다는 게 야당 측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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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대타협 이뤄 개혁 골든타임 사수해야

정부와 국회의 책임 떠넘기기로 인해 연금개혁의 불씨가 꺼지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연금개혁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한 과제로 ‘정치적 대타협’을 꼽는다. 각국의 성공 사례를 봐도 연금개혁은 개혁 방향에 대한 정치 진영 간 간극이 적을 때 가능했다.

실제 2007년 개혁이 성공했던 것도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보수·진보정당 연대’로 이견을 좁혔졌기 때문이었다. 2003년 10월 정부는 당시 60%였던 소득대체율을 50%로 삭감하자는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한나라당(현 국민의힘)과 민주노동당(현 정의당) 모두 “사각지대가 넓어진다”며 반발했다. 이후 두 당은 정부안에 맞서 기초연금 도입이란 단일안을 냈고, 2006년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를 수용하면서 지금의 제도를 만들었다.

정치권이 외면할 수 없게 국민의 관심을 유도하는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미래세대인 청년층의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청년들이 연금개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대학생이나 대기업 직장인 등 특정 계층의 참여만을 독려하는 구조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이 한발씩 물러서 합의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주요국의 개혁 과정을 보면 정치·사회적 타협이 막힐 경우 전문가 그룹이 이를 해소할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영국은 2007~2014년 정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수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금위원회’를 꾸려 위원회가 객관적인 안을 내도록 유도했다. 이후 영국 정부는 위원회 안을 대부분 수용했고, 대국민 토론회 등 설득 작업을 벌이며 개혁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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