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R&D 예산 삭감 반발하는 11개 대학 총학생회 공동성명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

pabii research
11개 주요 대학 총학생회, R&D 예산 삭감 반발 공동 성명 발표
전문가들, 대학가 연구 풍토 개선되기 전엔 R&D 예산 아니라 대학지원금 역할밖에 못 해
연구 수준 격상시키려는 교수, 연구원, 학생들 노력 동반돼야 개혁 가능하다는 지적도

지난 30일 11개 대학 총학생회가 내년도 R&D(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반발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부에 관련 계획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협의체 구성 대학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이화여대와 KAIST(한국과학기술원) 등의 5대 과학기술특성화대학교, 그리고 한국에너지공과대다.

협의체는 ‘공부할 수 있는 나라, 연구하고 싶은 나라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통해 정부의 예산 삭감 정책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정책으로, 결국 공대생들이 해외로 떠나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 부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다. 특히 구조와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단발적인 예산 삭감이라는 졸속 정책이 문제를 키웠다며, 실체조차 확인되지 못한 R&D 카르텔 척결, 예산 비효율 집행 해결을 대학생들에게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high angle view of a man
사진=Pexels

현실 감각 떨어진 정부? 연구 감각이 없는 학계?

학생들은 “이번 정책 결정으로 인해 국가 주도 R&D에 대한 믿음과 미래를 향한 꿈이 꺾인 수많은 인재들이 연구와 학문을 향한 꿈을 접거나 해외로 떠날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며 “연구자라는 미래의 꿈을 향해 불타던 수많은 학생들의 열정 또한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학기술과 학문적 경쟁력은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자 국가 미래를 책임지는 가장 큰 기둥 중 하나”라며 “이번 정부의 R&D 예산 졸속 삭감은 ‘미래 준비’라는 정부의 핵심 과제에 모순되며 미래세대 진로에 대한 삭감이자 동시에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삭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국내로 귀국했다 한국의 연구 풍토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해외대학원 출신 연구자들은 이번 결정을 대체로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한국 대학 및 연구소들에서 이뤄지는 연구의 대부분이 실질적으로 연구 역량을 갖춘 인력들이 학문적인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조잡하게 설계된 연구인 경우가 압도적인 대다수인 데다, 심지어는 제대로 된 학문 훈련을 받은 경우가 드물어 이를 지적하면 되레 학계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외 대학교수 A씨는 국내 귀국을 위해 안식년 중 1년간 한국 대학을 경험하고는 결국 해외로 U턴을 결정했다. 한국 대학에서 이뤄지는 각종 논문 발표들이 충격적일 정도로 수준이 낮았던 탓에 연구 동료를 아예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학부 3학년 수준의 통계학에서 배우는 ‘편향성’, ‘일치성’ 등의 기초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인력이 교수 직위를 꿰차고 있고, 정부 지원금을 대규모로 타낼 수 있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대학원생을 거느리며 학교 내의 권력자로 행세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고 답했다.

연구 실력 담보되기 전에는 지원금 끊어야

A씨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11년 KAIST 총장을 역임했던 서남표 총장은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로 돌아간 후 만난 한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으로 귀국할 거냐?’며 냉소적인 질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 귀국할 생각이 있다고 하면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한국을 버렸다고 대답하는 학생들에게는 반갑게 인사를 한 적이 있다는 유학생들의 제보도 상당하다.

2013년 서남표 총장을 MIT 인근에서 만나 서명을 받았다고 밝힌 벤처 기업가 B씨는 “당시 함께 있던 연구 동료가 백인계 브라질인이었는데, 총장님이 한국 귀국 생각이 있냐는 질문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시면서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인력인지 확인한 후에 서명과 함께 연구 잘하라며 응원해 주신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의 연구 풍토, 학계 분위기를 감안하면 한국 귀국을 목표로하는 한국인 연구 인력에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카이스트 총장을 하시면서 효율적인 장학금 배정 정책으로 자살 학생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국정감사를 받으셨던 것에 대해 여전히 한국의 교육 문화가 후진적이라고 맹비난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다시 해외로 U턴했거나, 한국의 학계를 떠난 상당수의 연구 인력들이 공통적으로 꺼내는 표현이 “한국에서 연구하기 가장 어려운 이유는 연구를 이해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동료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원에서 제대로 교육하고 학생을 키워보려고 해도 다들 쉬운 내용이나 빨리 졸업시켜 주는 교수들을 찾아가지, 제대로 연구하려고 교수를 찾는 경우는 희귀하다는 것이다.

단순 지원금 문제 아냐, 대학 전반적인 연구 풍토부터 뜯어고쳐야

A씨는 이렇게 단순히 연구 지원금을 끊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대학들에 만연한 ‘대충 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사고방식이 깨져야 연구계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예산 배정이 연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공무원들의 졸속 행정으로 이뤄지고 있는 데다, 평가 기준이라는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논문으로 인정 받기도 어려운 논문들을 실어주는 국내형 SCI저널(K-SCI)의 논문도 포함하고 있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교수들이나 학생들이나, 제대로 연구를 하기 위한 지식을 공부하기보다는 연구 역량 없이 단순한 결과물만 찾아 논문을 찍어내기 바쁜 상황이 됐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B씨는 국내 대학교수들이나 박사 과정 학생들이 낸 논문 중에 글로벌 시장에서 속칭 ‘A저널(학문 분야별로 뛰어난 논문만 모아놓은 고급 저널)’에 투고라도 가능한 수준의 논문은 1년에 분과학문별로 10건 이상 나오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 역량을 갖춘 교수들이 모인 국내 초명문대의 일부 전공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대학, 전공 교수들이 ‘정부 지원금 헌터(Hunter, 정부 지원금 받는 데만 초점 맞춘 프로젝트를 만드는 인력)’들”이라는 혹평도 내놨다.

B씨는 또 “자라나는 학생들은 한국에서만 공부했기 때문에 이런 연구 풍토를 당연시하고 있을 수 있고, 때문에 ‘어른세대’들의 논란에 자기들만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 교수 세대가 연구 풍토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대학생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해 줘야 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쨌건 제대로 연구 풍토를 만들고, 살아남을 수 있는 소수의 알짜 인재들에게만 지원금이 지급돼야 한국의 연구에도 미래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연구 지원금 타내는 데만 혈안이 된 교수들의 연구실 말고, 제대로 연구하고 힘들더라도 가치 있는 논문을 써내는 교수들과 함께하기를 바란다”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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