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부터 은행에 ‘확정일자 확인’ 권한 부여, 전세 사기 방지한다

우리은행 710여 개 지점에서 시범사업 실시 확정일자 확인 후 대출 실행하도록 강력 처벌과 제도의 보완으로 전세 사기 피해자 없도록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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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토교통부

정부가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해 시중 은행에 대출 시 담보로 잡히는 주택의 확정일자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18일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우리은행, 한국부동산원은 확정일자 정보 연계 시범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서면으로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에 따라 이달 30일부터 전국 우리은행 710여 개 지점은 주택담보대출 신청인(임대인)의 정보제공 동의를 받아, 대출 심사 과정에서 확정일자 정보를 확인한다. 또한 이 과정에 앞서서 우리은행은 국토부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RTMS)과 은행의 전용망을 연계해 확정일자 정보 확인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한다.

권혁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그동안 대항력 익일 발생으로 인한 문제 해소를 위해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를 개정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라며 “이번 시범사업을 계기로 임차인의 보증금 피해가 근절되고 주택 임대차 계약 신고제도가 조속히 정착되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빌라왕’ 사태, 불안에 떠는 세입자들

국토부는 지난해 9월 28일부터 11월까지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상담사례 687건 중 피해자가 다수이거나 공모가 의심되는 건을 1차로 선별해 전세 사기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수사 의뢰한 106건 중에는 최근 주택 1,000여 채를 보유한 채 사망해 다수의 임차인에게 손해를 끼친 일명 ‘빌라왕’과 관련된 사례도 16건에 달했다. 이외에도 수사 의뢰하는 106건은 대체로 빌라왕 사례와 유사한 무자본, 갭투자에 해당하는 유형이 다수였다. 106건의 전세 사기 의심 거래에 연루된 법인은 10개, 혐의자는 42명이었으며, 그중 임대인이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인중개사(6명), 임대인 겸 공인중개사(4명), 모집책(4명), 건축주(3명) 등 이었다. 혐의자 연령대는 40대(42.9%), 50대(23.8%), 30대(19.0%) 순이었다. 거래지역별로는 서울이 52.8%로 가장 많았고, 인천(34.9%), 경기(11.3%)가 그 뒤를 이었다. 피해액은 171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슈였던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에 대해 경찰은 건축주, 분양업체, 명의대여자, 공인중개사 등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한다. 이들은 자기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세입자에게 집값보다 비싼 전세보증금을 받아 수백, 수천 채의 빌라를 사들였다. 빌라를 확보하는 영업책, 명목상의 집주인인 빌라왕, 대신 계약을 진행하는 대리인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고 수익을 나눠 가졌다. 피해자들은 전세 만기가 돼서야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국토부는 부동산소비자 보호기능 강화를 위해 기존 부동산거래분석기획단을 ‘부동산소비자보호기획단’으로 개편한다. 그동안 기획단은 주택시장 안정과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을 위해 부동산 계약 단계에 초점을 맞춰 투기, 탈세 등을 조사·적발해 왔다. 앞으로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전세 사기, 집값 담합 등 시장 교란 행위로 인한 피해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명칭을 변경하고 부동산 거래 전 단계에 대해 모니터링과 단속을 강화한다.

매물 단계에서는 허위 매물, 집값 담합을 모니터링하고, 등기 단계에서는 부동산 거래 신고 후 미등기된 사례를 조사해 허위거래를 단속한다. 임대차 단계에서는 전세 사기 등 위법행위를 단속할 예정이다. 또 기존에 추진 중인 외국인 부동산 투기와 이상 고·저가 아파트 직거래에 대한 기획조사와 함께 소비자 피해가 많이 발생하는 기획부동산, 불법 전매에 대한 조사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은행에 확정일자 확인 권한 부여

이번 업무협약 체결은 전세 사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 9월 국토부 등 관계부처가 발표한 전세 사기 피해 방지방안의 후속 조치다. 현재는 저당권 설정 등의 등기는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반면, 임차인의 대항력은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전입신고)을 마친 다음 날 발생한다. 이에 따라 임대인이 임차인의 전입신고 당일에 저당권을 설정하고 대출받을 경우 임차인의 보증금이 후순위로 밀리는 문제점이 있었다. 주택담보대출에 따른 저당권 설정 등기는 즉시 효력이 발생하지만, 세입자는 확정일자를 받아도 법적 효력이 익일 0시부터 발생한다. 일부 임대인들은 이 같은 제도상의 허점을 악용해 전세 계약을 맺은 직후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기도 했다. 이럴 경우 은행 대출이 임차인보다 앞선 선순위채권이 되기에 임차인의 재산인 전세보증금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다.

국토부는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심사 과정에서 담보 대상 주택에 부여된 확정일자가 있는지와 보증금 규모를 확인하고 대출이 실행되도록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은행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안심하고 전세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장치가 생기는 것이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전세 피해에 대한 불안으로 지금처럼 세입자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은행 입장에서도 대출로 빌려준 돈을 잃을 위험이 줄어드니 반가운 제도다. 단,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하는 불편함은 감소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 사기 차단해낼 좋은 아이디어

전세 사기 피해 소식이 늘어나자, 세입자들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전세 사기 위험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부동산 계약 후에는 반드시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 확정일자를 받는 것은 대항력을 갖추는 셈이라 임대인의 사정에 따라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후순위로 담보를 설정한 이들에 앞서 보증금을 챙길 수 있다. 국회가 국세징수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올해부턴 임차인이 보증금을 받지 못한 상태로 집이 경·공매로 넘어갔을 때, 임차인이 세금에 앞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세금 우선 변제 원칙에 따라 경·공매 낙찰금에서 세금을 뺀 나머지 금액에만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또 이번 법 개정으로,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 없이도 그의 세금 체납액을 살펴볼 수 있게 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피해자 10명 중 7명이 20, 30대로, 종잣돈이 적고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은 청년·신혼부부 등 사회 초년생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경제력이 부족해,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신축 빌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보니 쉽게 사기의 대상이 된다. 계약 전에 꼼꼼히 확인해도, ‘빌라왕’ 사건처럼 분양대행업체나 공인중개사 등이 사기에 가담할 경우 사기임을 알아채기가 힘들다.

지금과 같이 계속해서 전세 기피 현상이 이어진다면, 전세 계약 제도 등이 사라질 위험도 생긴다. 국민들의 주거 부담 비용이 절감되는 한국만의 장점이 있는 제도인데, 사라지게 된다면 서민 부담만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번에 시행될 은행이 확정일자를 확인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잡힌다면, 전세 사기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로 보인다. 전세 사기의 대부분이 제도적 허점을 노렸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완책이 절실하다. 강력한 처벌과 제도의 보완으로 더 이상 전세 사기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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