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구직문화] ④ 조용한 사직과 조용한 해고

MZ세대들 ‘조용한 사직’ 문화에 업무 열정 사라진 경우 늘어 인사 전문가들 ‘결국 커리어 손해보는 행동’이 될 것이라 지적 경영진들은 ‘조용한 해고’로 대응하는 사례 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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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구직문화 중 또 하나의 특이한 모습은 이른바 ‘조용한 사직’이다. 지난 2022년 7월 17초 분량의 짧은 영상으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을 알린 20대 엔지니어 틱토커(TikToker) 자이들플린(Zaidlepplin)의 메시지는 MZ세대가 주축인 플랫폼인 틱톡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자이들플린은 ‘실제로 일은 그만두는 것은 아니고, 주어진 일 이상의 노동과 열정을 바라는 허슬 문화(Hustle culture)를 그만두는 것이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용한 사직, MZ세대의 성향을 압축한 표현

자이들플린의 발표 후 이어진 여론조사에서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대는 78.9%, 30대 77.1%, 40대 59.2% 그리고 50대는 40.1%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486, 586세대들을 ‘꼰대’라고 비난하는 MZ세대의 게시글들이 인터넷 여론을 뒤덮기도 했다.

인사 전문가들은 문화의 영향도 있지만 사회 조직이 돌아가는 현상에 대한 이해 부족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외국계 증권사에서 영업맨으로 성장한 모 임원은 “받는 연봉의 최소 10배 정도는 매출액 계약을 해줘야 월급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차장 무렵인 30대 중반에서야 깨달았다”며 “매출 때문이 아니라 각종 지원부서, 회사의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 모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거래 상대방이 계약서를 써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받는 만큼 일한다’의 개념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혼선이 생긴다”고 답변했다.

또한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회사의 운영 구조를 더 이해하고 매출액이 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니 계속 승진하게 됐다는 설명을 이어가며 “(MZ세대는) 회사를 이해하려 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이해해달라는 것 같다”는 평을 내놨다. 회사를 이해하지 않으니 업무를 줄 수 없고, 결국 승진이라는 기회도 멀어지게 되는 데다, 업무 역량이 쌓이지 않으니 30대 중반 이후로는 회사에 쓸모없는 인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채용 단계에서 걸러지는 무능력 인재

인사 전문가들은 채용 단계에서 실제 업무 성과에 대한 예측을 위해 각종 배경 지식을 보지만, 무엇보다 업무 열정이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한다. 인사관리론에서도 ‘조직 냉소주의(Organized cynicism)’라는 주제로 열정 없는 인력들로 인한 조직 성장의 장애를 연구하기도 한다.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MZ세대의 업무 열정에 대해 스타트업 투자자인 권도균 대표는 ‘회사는 돈을 받으며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업무를 배우려고 학교에 다니면 비용을 내야 하지만 거꾸로 돈을 받으면서 일을 배울 수 있는 만큼,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많은 책임을 위해서 열정을 쏟지 않으면 반대로 회사에서 퇴출당할 수밖에 없는 경쟁 구조를 인식해야 시장에서 생존 가능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회사가 자신의 등급보다 낮은 곳이라고 주장하는 직원들 대부분은 회사를 키우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직원, 즉 애초에 자신의 등급보다 높은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을 직원들이다”라며 “더 높은 등급의 회사에서 하는 고차원의 업무가 한국 사회에 드물고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강도 업무가 어떤 것인지 사회에 알려져야 무리한 욕심을 내며 몇 년간 취업 재수를 이어가거나 역량에 맞지 않은 복지를 요구하는 등의 태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용한 사직의 끝은 조용한 해고

조용한 사직 중인 소프트웨어 개발자 두 명을 최근 사실상 해고했다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조용한 사직을 하고 있는 게 시킨 업무의 진행 상황만 봐도 바로 보인다”며 “직원들이 급여도 적은데 일해주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만큼이나, 많은 급여와 복지를 다 챙겨주는데 이 정도 업무밖에 못 해주냐는 생각을 기업 오너들도 안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의 계약 관계상 노동자가 불만을 가지는 만큼 고용주도 반대편에서 같은 종류의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어 “온종일 집중해서 결과물을 보여줘야지,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업무 속도가 더 느려졌는데 거꾸로 연봉을 더 올려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더니 업무 속도가 더 느려져, 그 부분을 다른 직원들도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여러 방식을 통해 회사 내부에 알리게 됐다고 밝혔다. 대기업처럼 낮은 기본급에 상당액의 상여금을 지급하는 구조로 역량 발휘에 대한 계속된 압박이 있는 조직은 아니었으나, 일을 못 하는 직원에 대한 내부 관계자들의 불편한 시선이 회사 전체로 확대되자 결국 해당 개발자들이 질병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는 것이다.

이른바 ‘조용한 해고’로 이어지는 업무 평가 방식도 역시 인사조직론의 ‘조직 냉소주의(Organized cynicism)’에서 내놓는 해법이다. 직원의 업무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소수의 경영진과 인사 책임자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 정보를 공유해 활용하게 되면, ‘낙인 효과(Reputation effect)’에 의해 해당 직원은 사내 업무 협조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타 기업 이직 시 평판 조회에서 불편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는 등 다양한 종류의 비금전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시리즈 E 투자를 받은 모 스타트업의 인사 관계자는 “여러 스타트업을 거치며 쌓인 인맥이 있는 경영진이 평판 조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알려질수록 조용한 해고의 압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도 결국 노동법이 무능을 이유로 해고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나가게 되는 직원과는 복잡하게 틀어진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데, 차라리 한국도 해고가 쉬운 나라가 되면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계약 관계를 종료할 수 있지 않을까”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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