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엉키는 국제 정세 속 ‘표류’하는 한국, 이란 ‘자금 세탁’에 긴장감 고조

pabii research
이란 자금 세탁 '들통', 미국-이란 관계 다시금 '악화일로'
새우 꼴 못 면하는 한국, 불안정한 국제 정세에 '눈치'만
타오르는 도화선에 '우왕좌왕', 한국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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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영국 대형 은행 2곳을 이용해 미국의 제재망을 회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이란 양국 사이의 악감정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두 국가의 신경전으로 인해 애꿎은 한국만 피해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특히 이란은 앞서서도 한국에 보복성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한 바 있는 만큼 앞으로의 추세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FT “PCC, 영국 은행 활용해 자금 세탁”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 시각) “이란 석유화학상업회사(PCC)의 영국 페이퍼컴퍼니가 로이드, 산탄데르UK 등 2개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자금 세탁에 활용했다”고 보도했다. PCC는 이란 정보안보부(MOIS)가 주도한 제재 회피 작전에서 핵심 축으로 활동한 이란의 국영기업이다. PCC와 영국 자회사 PCC UK는 지난 2018년 11월부터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바 있다. 그러나 PCC는 미국의 제재 움직임을 비웃듯 수면 아래서 활동을 계속했다. 최근 영국군이 미군과 함께 예멘의 친이란 세력인 후티 반군을 겨냥한 공습 작전에 참여한 뒤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PCC는 러시아 정보기관과 협력해 친이란 민병대에 자금을 전달하거나 이란 혁명수비대의 특수 정예군인 쿠드스군을 위해 수억 달러를 모금하는 등 이란 정부의 제재 회피 작전에 적극 참여해 왔다. 사실상 미국의 제재가 큰 효용이 없었던 셈이다.

FT가 분석한 문서에 따르면 PCC는 미국의 제재가 시작된 이후 영국 기업들을 이용해 중국에 있는 이란의 또 다른 위장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받아왔으며, 이 과정에서 신탁 계약과 차명 이사 등을 통해 기업의 실제 소유주를 은닉했다. 해당 기업 중 한 곳인 피스코 UK는 산탄데르UK에서 사업용 계좌를 개설한 뒤 자금 세탁용으로 활용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영국 기업 등록부상 피스코UK는 압돌라-시아우아시 파히미라는 영국 국적자가 소유한 회사지만, 이란의 야당 웹사이트 위키이란이 유출한 내부 문서에 따르면 피스코UK는 사실상 PCC가 지배주주로 있는 기업이다. 압돌라-시아우아시 파히미는 PCC를 대신해 신탁 소유권을 갖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실제로 파히미는 이란 테헤란에 있는 회사 관계자들과 연락할 때 PCC 이메일 주소를 사용했으며, 2021년 4월부터 2022년 2월까지 PCC UK의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영국의 아리아 어소시에이츠라는 기업 역시 PCC의 위장 회사로 로이드 은행 계좌를 자금 세탁에 활용했다.

견원지간 미국-이란, 다시 한번 ‘충돌’

이란의 자금 세탁 활동이 명확해짐에 따라 미국 내 이란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당초 양국 관계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다시 풀어지는 모양새를 보인 바 있다. 지난해 8월 미국이 한국 금융기관에 묶인 이란 자금의 동결을 해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이란 외교부는 “미국에 의해 몇 년간 불법적으로 한국에 동결돼 있던 수십억 달러 이란이슬람공화국 자산의 동결 해제 절차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전면에 이란에 수감된 이중 국적자 5명을 해방하겠단 목적이 있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협상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단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했다. 다만 이번 자금 세탁 건으로 인해 사실상 관계도가 원복된 셈이 됐다.

일각에선 이란 입장에서 미국의 자금 동결 해제가 마뜩잖을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시 자금 동결 해제의 선결 조건이 ‘해당 자금을 식량과 의약품 구매 등 인도주의적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자금 동결 해제에 대한 극렬한 반발이 일었던 점도 무시하기 힘든 부분이다. 당시 미국 공화당은 양국 간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미 정부를 강력히 비난한 바 있다. 톰 코튼 상원의원은 “용기 없는 유화정책은 이란의 이슬람 지도자들이 인질을 더 많이 붙잡아 두도록 부추길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비슷한 상황은 앞서서도 있었다. 지난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란 핵 합의 당시 미국인 수감자의 석방을 약속받고 이란에 현금 4억 달러(약 5,287억원)을 돌려줬다가 공화당의 반발을 직면해야만 했다. 양국이 걸어온 길이 다른 만큼 두 국가 사이 외교적 균열이 다시금 발생한 건 결국 순리대로란 반응도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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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dobe Stock

새우 등 터지는 한국, 외교 역량 집중해야 할 때지만

문제는 이들 싸움에 애꿎은 한국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이란의 동결 자금이 해제된 지난 9월만 하더라도 한국은 ‘새우’ 꼴을 채 벗어나지 못했다. 이란이 갑작스레 소송을 걸겠다 윽박지른 탓이다. 당시 동결 해제된 계좌는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국내 원화 계좌였는데, 이란 측은 자금이 묶여 있던 기간 동안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피해를 입었단 이유로 한국을 상대로 소송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파르진 이란 중앙은행 총재 또한 “이란 자금에 대한 접근 제한과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피해에 대해 한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란 사이 타오르는 도화선을 지켜봐야만 하는 한국의 입장은 난처하기만 할 뿐이다.

미국의 이란 제재가 강화됨에 따라 이란으로의 수출길과 수입길 모두 다시금 꽉 막힐 수 있단 불안감도 높다. 이란은 이미 한 차례 한국을 대상으로 보복적 수출 제한을 강행한 바 있다. 지난 2021년 이란은 당시까지 한국에 묶여 있던 동결 자금을 문제 삼으며 한국산 가전제품에 대한 대대적인 수입 금지령을 내렸다. 이란 정부가 내건 표면적 이유는 ‘이란산 제품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수입 금지 대상으로 지목된 기업 2곳이 미국 제재 복원 당시 이란 사업을 접은 기업임을 고려하면 목적은 명확했다.

이란에 있어 한국은 눈엣가시나 다름없다. 의회 의원의 입에서 “한국은 신뢰할 만한 거래 상대가 아니다. 현재 불법으로 보유하고 있는 자산에 대한 3년간의 이자도 받아내야 한다”는 언급까지 나온 데다 실제 소송 진행까지 시사한 만큼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좋지 못한 상황이다. 복잡해진 국제관계 아래 다양한 셈법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나, 정작 한국의 외교적 역량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셈법을 계산하기에도 벅찬 모양새다. 불안정한 외다리 위 평행감각마저 잃은 한국은 위태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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