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차원에서 보행자 안전 강화한다, 스쿨존 사망사고 등 ‘도로 위 비극’ 막을 수 있을까

정부, 보행안전법 개정 이후 ‘제1차 국가보행안전 및 편의증진 기본계획’ 수립 보행환경 개선하고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OECD 평균치까지 줄인다 국가 차원의 목표 마련, 차후 지자체-정부 간 시차 조율 및 상호보완적 역할 분담 필요해

pabii research


9일 대전에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을 침범한 음주운전 차량에 의해 초등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60대 남성 A씨는 9일 오후 2시 21분께 만취 상태로 어린이보호구역 내 좌회전 금지구역에서 갑작스레 좌회전했고, 그대로 인도로 돌진해 길을 걷던 9∼12세 어린이 4명을 덮쳤다. 이 사고로 인해 9살 B양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끝내 목숨을 잃었다.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명칭과는 모순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세계 최초 보행 입법인 한국의 보행안전법, 8년여 만에 전면 개정

스쿨존 안전 문제는 이미 몇 해전부터 사회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2021년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는 523건에 달했다. 하지만 아직도 노인 보호구역, 장애인 보호구역 등 어린이 보호구역 외 교통약자 보호구역은 지정 위치가 모호하고 인지도가 낮아 제도 실효성이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보행안전을 국가 과제로써 집중적으로 관리하고자 제정된 「보행안전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수많은 보행자가 사고의 위험 속에 있는 셈이다.

보행안전법은 국민의 보행권을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보행환경 개선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임을 표명한 세계 최초(2012년 2월 22일 제정)의 보행 입법이다. 그러나 보행안전법 제정 이후 2020년 개정 이전까지도 우리나라의 교통사고율 및 사망자 수는 법 제정 당시와 다를 바 없이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었고, 보행안전법은 지방자치단체의 보행안전 기본계획 수립 의무만을 명시할 뿐, 국가 차원의 보행안전 기본계획 수립 의무는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이에 법이 제정된 지 8년여 만인 2020년 개정안이 통과되며 ‘국가의 기본계획 수립 의무’ 및 ‘보행안전편의증진위원회’ 규정이 신설됐다. 지방계획만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목표 수립 및 체계적인 정책 수행이 어렵고, 이행 현황과 성과 파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법률 개정 이후 2022년 8월, 2026년까지 국내 보행안전 수준을 OECD 평균 이상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를 담은 ‘제1차 국가보행안전 및 편의증진 기본계획(이하 국가보행안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국가보행안전 기본계획(2022년~2026년)은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이하 보행안전법)에 근거한 최초의 중앙 법정계획이다.

국가보행안전 기본계획, 보행자 중심 정책 추진해 보행환경 개선한다

제1차 국가보행안전 기본계획은 5대 추진전략과 2대 목표를 담고 있다. 먼저 정부가 제시한 5대 추진전략은 △사고 데이터에 기반한 보행자 안전 위해 요소 제거 △보행약자 맞춤형 제도 정비 및 인프라 확충 △보행 활성화를 위한 보행자 중심 도시공간 조성 △보행 중심 정책 추진 기반 강화 △보행안전 문화 활성화 및 보행자 중심 인식 정착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20개의 추진 과제도 함께 제시됐다.

추진 과제는 안전시설 확충, 교통 체계 정비, 단속 강화 등 전통적인 교통안전 정책은 물론 보행자 안전 지수, 보행환경 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 법정 의무 포함 사항도 포괄하고 있다. 최근 관련 사고가 급증하며 문제로 떠오른 ‘개인형 이동수단(Personal Mobility: PM)’ 통합 법률 마련 등 변화된 교통 환경을 반영한 정책 사항도 담겼다.

한편 2대 목표는 2026년까지 ‘보행자 교통안전’과 ‘보행환경 개선’ 분야에서 각각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정량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보행자 교통안전’ 분야의 목표는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 1.1명(2019년 OECD 평균)을 달성해 OECD 10위권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는 5년 동안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약 44%(연평균 11%) 감축해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보행환경 개선’ 분야의 주요 정량 목표는 ‘어린이 및 노인 보호구역 3,000개소 및 보행자 교통사고 위험도로 1,000개소 시설·환경 정비’와 ‘보행자 우선 도로 300개소 및 보행환경개선지구 50개소 신규 지정·조성’ 등이다.

계획 수립 이후 과제, 지자체 노력과 국민 인식 개선도 중요해

기본계획 수립을 계기로 차후 보행안전 개선 분야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뚜렷하게 분담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보행안전 기본계획의 정량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특히 보행환경 개선 분야의 경우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수행 사업을 통해 달성해야 하는 정량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향후 중앙정부는 재정적 지원, 보행안전 개선 사업 수행에 걸림돌이 되는 법률·제도 정비 등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노력을 통해 상호보완적 역할 분담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국가 차원의 전략과 목표가 수립된 만큼, 그동안 어긋난 정책 시차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도 있다. 보행안전법 개정 이전에는 국가계획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기본계획이 먼저 수립되어왔다. 이로 인해 현재 국가계획과 지방자치단체계획의 정책 시차가 일치하지 않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별 정책에도 목표 및 시기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국가 차원의 뚜렷한 목표가 수립된 만큼 기본계획과 지자체 계획 수립 시기의 조정을 통해 실효성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 정량적 목표 달성이 아닌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미국에선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 삼거리, 사거리 등 거리 곳곳에서 붉은색 ‘STOP’ 표지판을 볼 수 있다. STOP 사인을 확인한 차량은 무조건 일단정지해야 하며, 만약 정지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납부해야 한다. 이처럼 미국은 강력한 규제를 통해 교통안전에 대한 국민 의식 수준을 제고했으며, 그 결과 국민 대부분이 자진해서 교통안전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은 횡단보도에서 ‘일단정지’해야 하며, 또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 유무와 관계없이 일단 멈춰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됐다. 안전을 위한 규제는 운전자의 일시적인 불편을 동반할 순 있지만 국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후에도 꾸준히 중앙정부 차원에서 교통안전에 대한 국민 의식을 환기하고, 보행자 중심 교통질서를 정립해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교통안전 의식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개선되어왔지만, 현재 우리나라 보행환경이 안전하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보행자 안전 관련 지표는 곧 ‘국민 안전’에 대한 척도다. 국가보행안전 기본계획 수립을 기반으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추진되어 우리나라가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