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영리 단체는 후원하고 비영리 법인은 후원 못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어도비·줌 등 범용 소프트웨어의 한국 기부 담당 기관, 설립 허가받기 어려운 비영리 법인에는 까다로운 요건 요구, 설립 시 등록만으로 끝나는 비영리 단체에게는 요건 지정 없어 비영리 기관 전문가들, “사실상 무료 서비스하겠다는 조건, 납득 안 돼”

pabii research

최근 사단법인 형식으로 학회를 설립하게 된 연구자 A씨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비영리 기관들을 대상으로 업무용 프로그램인 오피스를 저렴하게 제공해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주무관청에서 받은 허가증, 비영리사업자임을 확인하는 고유번호증, 정관 등의 서류를 국내 담당 기관인 테크숩코리아에 제출했으나, 비영리 단체는 되지만 비영리 법인은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비영리 법인은 기획재정부가 승인한 공익법인, 즉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지정단체로 승인된 경우에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고, 설립 초기라 아직 활동 내역이 없는 비영리 법인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지정기부금단체라는 명칭으로 기획재정부가 승인을 내주던 당시에는 1년 이상의 사업 내역을 증명하는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공익법인에 혜택을 주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일반 비영리 단체들은 후원해주면서 정작 설립하기가 훨씬 더 까다로운 비영리 법인에는 왜 혜택을 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사진=AdobeStock

비영리 단체 vs 비영리 법인

일반적으로 알려진 각종 정치 단체들은 비영리 단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영리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재단법인 설립 시에는 100억원대의 재산 출연과 구성원 100명 이상을 요구하며, 사단법인의 경우엔 최소 1천만원 이상의 재산 출연을 요구한다. A씨의 학회는 사단법인으로 설립하면서 기본재산과 운영자금 합계로 5천만원을 출연했다. 반면 비영리 단체의 경우 재산 출연 요건이 없는 데다 주무관청의 허가가 까다롭지 않아 비교적 설립이 자유로운 편이다.

비영리 단체는 설립이 쉬운 탓에 동아리 모임, 반상회 등에서도 설립이 가능하며, 정치권에서는 거액 후원자를 위한 정치 집단화되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가 설립됐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심지어는 해당 지역 주민과 관련 없는 시민단체에서 주민들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주민 조례 제정·개폐 청구제도를 악용해 조례를 뜯어고치는 날치기가 있기도 했다.

즉 비영리 단체는 비영리 법인에 비해 감시·감독이 덜한 데다, 금전적인 이익 추구가 가시화되어 있지 않을 뿐 실제로는 특정 목적을 위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조직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편이다.

출처=테크숩코리아 웹페이지

비영리 단체에는 지원, 비영리 법인에는 지원 불가

비영리 기관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줌 등등의 주요 범용 소프트웨어를 무료에 가까운 저비용으로 지원하고 있는 테크숩코리아에 따르면, 비영리 단체는 지원이 가능하나, 비영리 법인의 경우에는 공익법인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주요 학문 연구자들의 모임인 학회, 업계 관계자들의 협력을 도모하는 협회 등등이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경우에도 법인이 되기 전인 단순 비영리 단체일 경우에는 지원이 되지만, 정작 오랜 시간 노력 끝에 주무관청을 설득해 법인화될 경우에는 되려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A씨는 “반상회, 동아리, 동호회, 시민단체, 심지어 정치권 관계자들과 모종의 관계에 있는 수많은 기타 단체들은 지원하면서 정작 신생 학회는 목록에 빠져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가 속한 학회의 경우, 매년 4차례 있는 공익법인 신청(구 지정기부금단체 신청)을 통해 공익법인으로 기획재정부에 승인을 받아야 위의 지원 프로그램에 신청할 자격이 생기게 된다. 과거 지정기부금단체의 경우에는 1년 이상 활동 기록을 제출할 것을 명시하고 있어 논란이 됐으나, 2021년부터 국세청으로 추천 기관이 변경되면서 규정상에 1년 이상 활동 기록이 사라졌다.

그러나 사단법인과 지정기부금단체 신청을 10년째 지원하고 있는 행정사 B씨에 따르면, 변경 이후에도 여전히 활동 기록이 짧다는 이유로 반려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으로 1년 이상의 적극적인 활동 기록이 필수라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비영리 법인에게는 어렵게, 비영리 민간단체에게는 쉽게

행정사 B씨는 테크숩코리아의 사정을 놓고 “기부에 세제 혜택이 있는지 여부가 관건인 것으로 보인다”며 “비영리 법인은 기부를 받고 세액 면제가 되기 위해서 공익법인(구 지정기부금단체) 신청이 필수인 반면, 비영리 민간단체의 경우 기부금대상민간단체로 지정을 받으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테크숩코리아의 규정에는 비영리 민간단체의 경우 기부금대상민간단체로 지정을 받았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혜택 대상이 되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다.

B씨에 따르면 과거에는 법인과 단체가 기부금 활용에 대해 정부 기관의 지정을 받는 데 차이가 있었으나, 2021년부터 국세청이 추천 부서로 통일되면서 공익법인 및 기부금대상민간단체로 지정받는 데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비영리 법인으로 설립된 경우에는 이미 설립을 위해 오랜 기간 정부 관청과 씨름을 한 상황에서 또다시 국세청, 기획재정부 등에서 사업 활동 및 기부금 관리 등에 대한 검증을 거쳐야 테크숩코리아에서 제공하는 비영리 기관 대상 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비영리 단체로 설립된 경우에는 정부 관청에 단순 등록 절차만 거치면 비영리 기관 대상 서비스의 혜택을 모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들은 B씨는 “기부금 세제 혜택이 문제가 아니라면 사실상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365를 무료로 쓸 수 있는 매우 쉬운 방법으로 보인다”며 “비영리 민간단체 설립이 얼마나 쉬운지 아는 관계자라면 누구나 다 이런 방법을 택하려고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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