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부담에 ‘대잇기’ 실패하는 중소기업, 일부 오너들은 세금 피해 해외로

높은 상속세율·까다로운 세액공제 요건으로 불발되는 가업승계, 소멸하는 기업들 일부 소유주는 ‘세금 폭탄’ 피해 싱가포르 등 해외로, 국내 자본·시장 경쟁력 유출 가업승계는 장기간 키워온 기업 경쟁력 지키는 것, 부담 경감할 제도적 기반 마련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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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기업학회가 지난달 27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전환기, 중소기업 혁신성장을 위한 기업승계 정책 방향’을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열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가족기업학회

기업 상속세율을 인하할 경우 신규 투자, 경영지표 등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으며, 승계가 불발될 경우 차후 국가적 손실 규모가 약 240조원 규모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기업 승계와 관련한 제도 개선 방안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수년 안에 3만1,000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사)가족기업학회는 지난달 27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전환기 중소기업 혁신성장을 위한 기업승계 정책 방향’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학술대회에서는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 김희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주제 발표 및 패널 토론을 통해 중소기업 승계 활성화를 위한 의견이 적극적으로 개진됐다.

가업 승계, 벤처시장 활성화에 중대한 영향

김희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승계 불발 시 소멸하게 될 총사업체 수가 3만1,052개에 달한다고 봤다. 폐업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은 약 238조293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위원은 “중소기업 승계 문제를 제2의 창업으로 바라보는 획기적인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며, 지원 목적에 입각해 고용·경영 안정성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 마련과 지원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파이터치연구원 라정주 원장은 “가업상속세율을 인하하면 고용과 신규 투자,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증가해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 구성원의 편익을 나타내는 사회 후생도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둘째로 높고, OECD 평균치(26.6%)의 2배 수준이다. 상속세율이 높으면 통상적으로 기업은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라 원장은 대표적인 상속세율 인하 성공 사례로 그리스와 독일을 꼽았다. 그리스는 상속세율을 20%에서 1.2%로 인하한 후 가족기업의 투자가 4.2% 증가했으며, 독일은 가업 상속세율을 9.5%에서 0%로 인하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73% 늘었다. 상속세율이 낮으면 기업이 ‘더 물려주기 위해’ 투자를 늘리게 되고 이를 통해 일자리, 생산, 매출과 영업이익이 연쇄적으로 늘어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윤병섭 가족기업학회장은 ”가업승계는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 아닌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만, (우리나라 사회에) 가업승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은 만큼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사회적 인식 전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족기업학회는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가족기업 성공과 실패에 대한 실증연구와 사례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상속 부담 경감하는 ‘가업상속공제’ 제도

기업승계는 기업주가 주식이나 재산을 승계자에게 무상 이전하는 것으로, 승계 시 상속세 및 증여세법 또는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상속세, 증여세 납세 의무가 발생한다. 정부는 높은 상속세율로 인한 기업의 세금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사업주가 사망한 이후 상속인과 그 가족의 안정적인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다. 공제한도액은 기업영위기간이 10년 이상인 경우 200억원, 20년 이상은 300억원, 30년 이상은 500억원이다. 개인사업자, 법인 모두 적용 가능하며, 요건은 △가업 △피상속인 △상속인 등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먼저 상속되는 기업은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이어야 하며, 건설업의 경우 종합과 전문건설업종 관계없이 평균 매출액이 1,000억원 이하, 자산총액이 5,000억원 미만인 기업이어야 한다. 피상속인의 경우 피상속인을 포함한 최대주주 지분의 50% 이상(상장 법인은 30%)을 10년 이상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기업을 경영한 기간의 50% 이상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대표이사 등 직을 승계한 날부터 상속개시일까지 계속 재직한 경우 10년 이상 △상속개시일부터 소급해 5년 이상 재직하고 있어야 한다. 상속인의 경우 18세 이상으로 상속개시일 전 2년 이상 기업에 종사해야 한다. 또한 상속세 신고 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해야 하며, 신고 기한부터 2년 이내에 대표이사로 취임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뒤 상속자는 7년간 일정 요건을 지켜야 한다. 특히 △해당 기업 자산의 20% (상속개시일로부터 5년 이내는 10%) 이상을 처분하는 경우 △상속인이 대표이사로 재직하지 않거나 주된 업종을 변경하는 경우 △1년 이상 휴업하거나 폐업하는 경우 △상속인의 주식을 처분하는 경우 △정규직 근로자 수가 평균에 미달하는 경우 등에 해당되면 상속세를 다시 계산해 납부해야 한다. 이에 업계에서는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까다로운 사전 및 사후 요건으로 인해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상속 앞둔 중견기업들은 세금 부담 없는 해외로

가업상속공제는 요건이 까다로운 만큼 공제 혜택도 큰 제도다. 10년 이상 가업을 영위하고, 일정 상속공제 요건을 갖췄다면 기본적으로 200억원까지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업력이 50년 이상인 국내 중소기업은 단 0.3%에 불과하다. 까다로운 사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도 다수거니와, 설령 요건을 충족했다고 해도 사후관리 기간 중 언제든 닥쳐올 수 있는 ‘상속세 폭탄’에 부담을 느껴 상속보다는 기업 처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중견기업 소유주들은 상속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싱가포르 등 해외에 법인을 만들어 이민을 신청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엔 상속세와 증여세, 배당세 등이 없으며, 소득세도 최대 22%로 한국의 절반(42%) 수준이다. 특히 법인세의 경우 17% 단일세율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소유주들 사이에서 싱가포르가 외국인의 사업 등록 및 운영이 용이하고, 세금 걱정 없이 가업을 이어갈 수 있는 국가로 주목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진=pexels

기업의 해외 이전을 선택한 소유주들은 싱가포르에 이민 신청을 한 뒤 현지에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투자회사를 통해 자신이 보유한 한국 회사의 지분 전량을 매집한다. 이들은 ‘외국인 투자자’기 때문에 기존 국내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10~15% 안팎의 배당세만 납부하면 된다. 한국에 있었다면 배당수익의 최대 46.4%를 배당세로 납부해야 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큰 세금 부담 없이 수익의 90%를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상속·증여세도 없어 언제라도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각종 세금 부담이 국내 시장을 지탱하는 중견기업을 해외로 몰아내고 있는 셈이다.

기업의 경영 능력과 시장 영향력은 단기간에 축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장기간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노하우를 쌓아온 국내 중견기업 대다수는 ‘상속 부담’으로 인해 미래를 그리지 못한 채 소멸해 가고 있다. 세금 부담을 피해 해외로 거처를 옮기는 기업들로 인해 시장 경쟁력 유출도 점차 가속되는 추세다.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는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 아닌 이전 세대가 일군 성장 기반에 현세대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다. 차후 국내 벤처시장의 궁극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가업 승계 부담을 줄이고, 자금 및 경쟁력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제도·법률 기반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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