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축소, 국가R&D사업 상대평가·맞춤형 심층평가 도입해 효율 분배한다?

pabii research
과기부, 내년부터 R&D 사업 상대평가 및 맞춤형 심층평가 도입
R&D 예산 축소 반발에 합리적인 평가 기준 제시하겠다는 답변으로 봐야
전문가들, 현장 공무원들의 전문가 판단 능력 부족 탓에 실행 어려울 것 예상

정부가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한 부처별 자체 평가에 상대평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부처가 자율적으로 성과 부진 사업을 자체 조정하고, 우수사업을 확대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어 심층평가가 필요한 사업은 R&D 특성에 따라 맞춤형 평가도 실시한다.

지난달 3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 성과평가 실시계획(안)’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5년마다 수립되는 성과평가 기본계획에 따라 진행된 세부 실시 계획으로, 내년부터 R&D 예산이 대규모 축소되는 만큼 평가 방식 변경에 대해 관계자들의 관심이 증폭된 상태였다.

상대평가, 맞춤형 심층평가로 R&D 예산 축소 반발에 대응한다?

내년도 국가연구개발 성과평가 실시계획 주요 내용으로는 ▲사업평가 내 상대평가 도입 ▲평가위원 전문성·책임성 강화 ▲과제평가 표준 지침 개정안 설명회 등이 있다. 우선 소관 부처가 수행하는 사업 자체평가에 상대평가를 도입한다.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부처가 성과 부진 사업을 조정하고 우수 사업을 확대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정부는 R&D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자체평가에서 ‘미흡’ 등급 비율을 20% 이상으로 의무화하도록 했다.

또 전략계획서 점검 항목을 성과 목표, 지표 등 실제 평가에 중점적으로 활용되는 점검 항목 중심으로 효율화한다. 특정 평가에는 실패 가능성이 큰 전략적·도전적 R&D에 대한 맞춤형 평가 트랙과 성과 부진 사업 등에는 사업 재검토 트랙을 도입한다. 기관평가 평가위원 전문성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는 상위평가 항목에 ‘자체평가위원 전문성 제고 활동 충실성’을 포함한다. 충실성 평가 항목으로는 평가위원 후보단 확대, 전담 평가위원제 운영 등이 있다.

실적 허위 기재 등 평가 부적절 행위 기관에 대해서는 평가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며 기관 평가에 대한 평가 책임성을 강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11개 기관에 대한 기관운영평가와 8개 기관에 대한 연구사업평가를 진행한다. 아울러 그간 연구현장에서 제기된 제도 개선 필요 사항을 반영해 연말에 과제평가 표준지침을 개정할 예정이다. 변경된 개정 사항에 대한 현장 이해도 제고를 위해 전문기관 대상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며 성과평가정보시스템(PEIS)을 통해 전주기 평가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할 계획이다.

전문가 패널 선정 작업부터 제대로 진행돼야

다만 업계에서는 전문가 참여를 확대한다고 해도 결국 같은 종류의 인력을 더 늘려봐야 정책 변경에서 기대하는 ‘효율적인 예산 배분’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삼성역 일대 한 스타트업 대표 A씨는 “전문가라고 불러오는 분들이 대부분 발표자인 자신보다 훨씬 업무 경험이나 이해가 부족한 상태인 데다, 전문성도 없으면서 ‘교수’라는 직위를 갖고 있다는 이유, 심사 평가 위원이라는 이유로 갑질을 일삼는 행태를 여러 차례 겪었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 모 대학교수 B씨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B씨는 “연구에 바빠 보통은 전문가 패널 참여 요청을 받아도 거절하고 넘어갔지만, 딱 한 차례 마지못해 패널로 참여했다가 다른 전문가들의 질문 수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해당 사안은 대출 상품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관련 서비스를 정부가 제공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해 주는 프로젝트였는데, 당시 전문가 패널로 참여한 모 대학교수가 “대출 상품 비교나 대출이나 뭐가 달라?”, “저신용자 대출 자체가 나쁜 거야”라며 업계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지극히 낮은 발언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이어 B씨는 “이후 동료 교수들과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매우 자주 볼 수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국가 R&D 프로젝트의 평가위원들 수준을 알게 돼 답답했다”는 감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게다가 해당 사안에 대한 답변을 요청받은 금융감독원의 담당자는 이미 발표자였던 스타트업 대표에게 사과했던 사안이라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상투적인 답변만을 내놨을 뿐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공무원들이 실제로 전문가를 구분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데다, 단순히 대학교수 등의 외부 인력을 패널로 앉히는 데만 주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프로젝트 심사가 돌아가고 있는 만큼, 단순히 전문가 패널의 숫자를 더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책 방향은 옳지만 실행은 만만치 않아

정부 프로젝트의 심사 패널로 참가한 경험을 여러 차례 갖고 있는 연극영화계의 C씨도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말단 공무원이 현장 전문가의 옥석 가리기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업계에서 아무도 전문가라고 인정하지 않는 인력이 모 지방 대학교의 교수라는 이유로 패널로 요청받았던 사례를 들면서, 해당 패널이 황당한 질문을 연이어 늘어놓자 발표자가 거꾸로 당황하는 통에 발표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경험담도 내놨다. 당시 C씨는 해당 패널에게 업계 선배 입장에서 질책한 후, 담당 공무원에게 전문가 옥석 가리기가 잘못됐다고 지적했으나, 이후 본인이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발표를 하던 중 해당 지방대 교수가 또다시 패널로 나와 훼방을 놨던 사례로 있었다고 씁쓸해했다.

전문가들은 그간 정부 프로젝트가 방만하게 운영되고, 비용만 소비했을 뿐 실제로 프로젝트 결과물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이 ‘R&D 카르텔’이라는 강한 표현이 나온 이유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를 표현했으나, 현장 공무원 인력이 전문가 옥석 가리기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점, 국내에 실제 전문가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실행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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