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보호’ 여론전 나선 하마스, “이스라엘의 ‘명분 찾기’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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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민간인 학살 보도, 이팔전쟁 부정 여론 '급증'
민간인 학살 부정한 이스라엘, 여론 돌려놓기에 '총력'
'일방적 피해자' 되긴 힘들 듯, "이스라엘의 '선택'에 모든 게 달렸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가자지구 이즈바트 베이트 하눈 지역/사진=MAXAR TECHNOLOGIES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상대로 전쟁 중인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이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자국의 군사작전을 옹호했다. 민간인 학살을 대놓고 홍보한 하마스와 대비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국제사회의 여론을 자신들 편으로 돌리겠단 전략이다. 최근 하마스도 국제 여론을 돌려놓기 위해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만큼, 이스라엘은 앞으로 더욱 현명한 대처를 이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헤르초그 “이스라엘, 민간인 사상자 줄이는 데 총력”

헤르초그 대통령은 31일(현지 시각)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8,000명 이상의 사망자 중 여성과 어린이가 70%에 달한다’는 UN 집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아무도 그들이 대가를 치르길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민간인 사상자를 줄이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쪽의 안전지대는 진정 안전지대”라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남부로 피란하라고 경고해 놓고서 남부를 여전히 폭격하고 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어 “국제법의 규칙에 따라 사람들에게 안전지대로 이동하라고 요청하고 경고했고, 우리는 그들의 이동을 돕고 있다”고 거듭 역설하기도 했다.

병원 근처 폭격에 대해선 “병원 자체를 겨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앞서 지난 29일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알쿠드스 병원 바로 옆을 직접 공습했다며 의료진과 피란민, 환자들이 병원을 떠나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헤르초그 대통령은 “미국이 매일 군사작전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경고하는 만큼 우리는 조심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마스에 대해선 “충격적 잔학 행위를 저지른 끔찍한 적”이라며 하마스의 기반 시설을 파괴해야 한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면서 “가자지구에 더 많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다른 서방 동맹국들과 매일 연락하고 있다”며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무력화된 국제인도법, 전쟁의 ‘잔혹함’

당초 민간인 사살 및 위협은 국제인도법과 국제법에 의해 금지돼 있다. 그 근간은 제네바 협약이다. 1949년 8월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체결된 이 협약은 전시(戰時)에서의 민간인 보호 원칙을 전 세계에 천명했다. 협약의 세부 조약인 ‘전시에 있어서의 민간인의 보호에 관한 제4협약’은 ‘적대행위에 능동적으로 참가하지 않는 자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인종, 피부색, 종교 또는 신앙, 성별, 문벌이나 빈부, 또는 기타 유사한 기준에 근거한 불리한 차별 없이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이들에 대한 모든 종류의 살인, 상해, 학대 및 고문 등을 금지한다. 아울러 전쟁 중 체포된 적국 포로는 인도적으로 대우 받아야 한다는 원칙도 규정한다.

그러나 이팔전쟁에서 제네바 협약의 원칙은 사실상 무색해졌다. 봉쇄된 상태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가자지구에서는 주민들이 기본적인 식량·물·의약품 없이 생사를 오가고 있다. 하마스는 200~250명의 이스라엘 쪽 포로를 억류한 상태에서 “인질들을 살해하겠다”는 위협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팔전쟁의 세계적 집중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연이어 터져 나온 민간인 학살 보도는 이팔전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급증시켰다. 이스라엘이 전반적으로 민간인 학살 의혹을 걷어내고 타국 지원을 호소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을 경우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도 어렵고, 전쟁에서 이긴다 한들 전후 상황을 제대로 처리하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5일 민간인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이 이어지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이집트 사이 유일한 통로인 라파 국경 폐쇄를 잠시 중단하겠다며 유화적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미국도 본격적인 관리에 나섰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으면서 이스라엘을 극도로 어렵게 하고 부담을 가중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국제인도법에 따라 테러리스트와 민간인을 구분해야 할 이스라엘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스라엘 차원의 노력이 촉구된다”고 역설했다.

쏟아지는 민간인 사상자, 국제 여론 ‘악화’

다만 그럼에도 민간인 사상자는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다. 당국에 따르면 지난 3주간의 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서 1,400명 이상, 팔레스타인에서 5,7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특히 이 중 어린이 사망자 수가 상당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한 가자지구 어린이는 총사망자 5,719명 중 2,360명이다. 서인지구의 어린이 사망자 역시 총사망자 96명 중 30명에 달했다. 이스라엘에선 지난달 7일 이후 약 1,400명의 이스라엘인과 외국인이 사망했는데, 이 중 어린이 사망자는 3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제사회가 이팔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군 탱크가 민간인이 탑승한 차량을 공격해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스라엘이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는 반응이 일부 SNS 사이에서 쏟아진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 이스라엘은 하마스 궤멸을 공언하며 가자지구 주변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켜 놨음에도 이렇다 할 행동엔 나서지 못하고 있다. 섣불리 병력을 투입했다간 대규모 피해를 감수해야 할뿐더러 일반 시민 여부를 구분하기 힘든 시가전 특성을 고려할 때 민간인이 하마스로 오인돼 사살되는 참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또한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이 가시화될 경우 이스라엘은 더 이상 국제적으로도 ‘일방적 피해자’를 자처할 수 없게 된다. 이스라엘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하는 장면을 SNS에 올리는 자충수로 고립을 자처한 하마스에 오히려 숨통을 틔워주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들어선 하마스도 ‘민간인 보호’라는 명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31일(현지 시각) 아부 우바이다 하마스 대변인은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 성명을 통해 “우리는 중재자들을 통해 향후 수일 내로 일정한 숫자의 외국인을 석방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하마스는 지난 7일 이스라엘은 기습 공격하면서 240명 이상의 민간인을 납치해 인질로 삼은 바 있다. 이들 인질을 석방함으로써 뒤늦게나마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려놓겠단 취지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사실상의 ‘학살극’을 벌이게 되면 상황을 수습할 수 없게 된다. 가자지구 희생이 늘면서 이미 SNS 등지에선 여론이 팔레스타인 측으로 다소 기우는 모양새가 포착된 바도 있다. 결국 이팔전쟁의 ‘승기’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얼마나 돌려놓느냐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의 보다 ‘현명한’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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