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배제하겠단 교육부, 융합인재 육성은 어디로?

교육부 “킬러 문항 배제할 것” vs 교육계 “변별력 떨어져” 킬러 문항 이미 배제돼 가는 추세, “굳이 대통령실까지 나서야 했나” 언제나 실패로 끝났던 ‘사교육과의 전쟁’,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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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교육부

교육부가 ‘공정수능평가 자문위원회’ 운영,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 신설 등을 통해 수능 출제단계부터 문항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수능 시험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이 더 이상 출제되지 않도록 막겠단 취지다.

교육부, ‘킬러 문항 배제’ 나선다

교육부가 26일 ‘사교육 경감 대책’으로 ‘킬러 문항 잡이’에 나서겠다고 전했다. 킬러 문항이란 공교육 과정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을 의미한다.

사교육 비용은 학부모에게 있어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지난해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원으로 집계됐다. 2010~2012년과 2020년을 제외하고 지속적인 증가세를 이뤄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교육부는 이 같은 과도한 사교육으로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모든 힘든 와중에 학원만 이익을 취하는 공정하지 않은 상황을 뿌리 뽑겠다고 힘줘 말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EBS를 활용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EBS 시스템을 개편하고 유료 강화(중학 프리미엄)를 무료로 전환하며 수출별 학습 콘텐츠를 대폭 확대,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교육 환경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공정한 수능평가를 점진적·단계적으로 확실히 실현하고 사교육 수요 원인별 맞춤 대응으로 사교육을 경감해 나가기로 했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출처=교육부

킬러 문항 문제, 대통령실 나설 정도인가?

다만 일각에선 이 같은 교육부의 지침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애초 대통령실이 나설 만큼 킬러 문항 문제가 심각하냐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엔 킬러 문항은 거의 사라지고 준 킬러 문항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수학 일타 강사로 꼽히는 현우진씨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6월 모의고사를 보면) 평가원이 정답률에 신경을 많이 쓴 게 느껴진다”며 “기존에 비해 15번, 22번, 30번 문제의 킬러 문항 난이도가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이번 모의평가 수학영역(수학Ⅱ)에서 학생들이 특히 어려워했다는 22번 문항은 미분을 이용해 삼차함수 그래프를 지나는 직선의 기울기를 구하는 문제였다. 해당 함수가 교과서에 직접적으로 나와 있지 않더라도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을 활용하는 문제라면 이를 교과과정을 벗어난 문제로 단언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쏟아진다. ‘국어영역 지문 소재가 교과과정을 벗어났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국어영역은 학생 독해력 측정 등을 위해 다양한 소재의 지문과 유형을 출제하도록 돼 있어 ‘교육과정 밖이냐 안이냐’를 따지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킬러 문항 배제, 시험 변별력 저하 일으킬 우려 크다

킬러 문항 삭제가 시험의 변별력을 저하시켜 시험의 의의를 사실상 잃게 만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계는 “킬러 문항이 사라지면 시험에서 어떻게 변별력을 줄 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하나도 나와 있는 게 없다”며 “애초 시험이 교과서에서 출제된다 해도 다른 학교 교재 문제가 나와 버리면 낯선 과목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일반적으로 수학에서 킬러 문항의 정답률은 3%가량 나오지만 다른 객관식 과목에선 정답률이 10~20% 정도 나온다”며 “1등급이 4% 이상인데 이후 시험에선 어렵지만 1등급 학생들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것 아니냐. 변별력을 도대체 어떻게 확보하겠단 건지 모르겠다”고 거듭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실제 만점이 1등급(4%) 이상 나와버리면 2등급이 아예 없어지는 대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학생들을 살리겠단 취지에서 시작된 킬러 문항 배제가 오히려 특정 수준 이하의 학생들을 완전히 짓밟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킬러 문항 배제 자체가 큰 의미 없이 끝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앞서 전두환 신군부는 지난 1980년 7월 30일 이른바 ‘7.30 교육개혁 조치’를 내놓으며 과외 전면 금지를 선언한 바 있다. 지나친 과외 열풍을 잠재우기 위함이었다. 해당 조치는 시행 초기엔 실질적인 효과를 거뒀으나, 한편으론 단속을 피해 불법과외가 기승을 부렸다. 학력 저하 우려도 적지 않았다. 결국 과외 금지 조치는 20년 만에 위헌으로 결정되며 정부의 사교육과의 전쟁은 패배로 끝났다. 이후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됐던 심야 교습시간 제한, 박근혜 정부 시절 ‘선행학습 금지법’(공교육정상화법)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공권력이 누르면 단기적으로는 움츠러들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번 적응하면 노하우가 생기고 지속적인 단속도 어려워진다. 무작정 누르기만 한다 해서 해결될 게 아니란 거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지난 21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초과이윤이 있을 땐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나”며 “교육시장에 공급자인 일부 강사들 연 수입이 100억, 200억까지 가는 게 공정한 시장의 시장가격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발언했다. 이어 이 총장은 “강사들은 창의적으로 사업을 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파는 사업가와 다르다”며 “어찌 보면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나 마찬가지인데,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걸 초과이윤을 갖고 파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결국 교육개혁에 대한 제대로 된 비전 없이 학원 강사들만 ‘악마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학원 강사들을 악마화함으로써 정처 없는 정책의 타당성을 억지로 인정받고자 하는 모양새다.

현재 정부가 나아가려는 방향성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에 있어 ‘융합인재 육성’을 특히 강조해 왔다. 그러나 막상 ‘평가’가 시행되는 시험에 있어선 ‘융합형 문제를 내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진정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선 킬러 문항도 분명 필요하다. 교과과정만 붙들고 문제를 만들면 문제는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킬러 문항 없이 1%를 차지할 ‘인재’와 기본적인 개념만 알고 있는 ‘범재’를 어떻게 구분해 낼 것인가? 정부는 교육개혁의 방향성부터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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