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후티 반군 본거지 첫 공격, 중동전쟁 확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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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호크 쐈다” 미·영, 후티 반군 본거지 공습 개시
홍해 선박 공격에 미 유조선 나포까지, 중동 긴장 격화
이-하 전쟁 개입보단 존재감 과시 및 이스라엘 견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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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항공모함에서 전투기가 이륙하는 모습/사진=미국 중부사령부 X 캡처

미국과 영국이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의 본거지에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던 민간 선박을 공격하고 이란이 미국 유조선까지 나포하자 보복 공습에 나선 것이다. 이번 폭격은 지난해 10월 발발한 가자지구 전쟁 이후 미영 연합군이 중동 지역에서 개시한 첫 무력 공습으로, 미국과 이란이 격돌하는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美英, 예멘 후티 반군 근거지 기습 타격

미국과 영국이 12일(현지 시간) 세계 물류의 동맥인 홍해를 공격해 온 친(親)이란 예멘 반군 후티의 군사 시설을 기습 타격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과 영국군이 호주, 바레인, 캐나다, 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아 예멘 내 다수의 후티 표적을 성공적으로 타격했다”고 밝혔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이번 공격에 대해 “필요하고 (후티 공격에) 비례적인 조치”라고 했다.

미 중부사령부에 따르면 미영 연합군은 잠수함과 전투기 등을 동원해 후티 반군의 근거지 16곳, 60개 이상의 목표물을 공격했다. 여기엔 후티의 지휘통제 시설과 군수품 저장소, 방공 레이더 시스템 등이 포함됐다. 중부사령부는 “항행의 자유에 대한 국제사회 약속을 강화하고 홍해에서 상업 선박에 대한 후티의 공격에 맞서는 다국적 공격”이라고 선포했다.

공격에는 전투기와 선박, 잠수함,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등이 동원됐다. 토마호크는 비행속도가 시속 890km로 비교적 느린 편이지만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CNN은 “토마호크를 중심으로 공습해 ‘쑥대밭’을 만든 뒤 지상군을 투입하는 게 미국의 가장 ‘클래식’한 군사작전”이라고 보도했다. 19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 주요 군사시설 파괴로 유명세를 떨친 토마호크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 등에도 항상 등장해 ‘미 군사 개입의 신호탄’으로도 불린다.

기습 공격을 받은 후티는 AFP통신에 “이번 공습으로 최소 5명이 숨졌다. 미국 등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이스라엘 관련 선박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란 역시 “예멘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하마스를 지지하던 러시아도 공습 직후 UN(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홍해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공습 직후 보고서에서 “공습이 한 차례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중동 선임 애널리스트인 윌리엄 어셔도 “후티 반군은 중동에서도 엄청나게 비타협적인 조직”이라며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공습이 전면전으로 확대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란 정부의 태도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영 군사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반발했으나, 구체적인 대응은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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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후티 반군 공식 홈페이지

“석기 시대로 되돌려 주겠다”, 후티의 연이은 도발

미영이 후티 반군의 근거지 공습을 감행한 데는 최근 미 선박이 나포된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번 공습 하루 전인 11일(현지시간) 이란은 걸프 해역(페르시아만)과 이어진 오만만에서 미국 유조선 ‘세인트 니콜라스호’를 나포한 바 있다. 같은 날 후티 반군은 아덴만을 지나던 상선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했다. 후티의 홍해상 선박 공격으로 인해 세계 주요 교역로가 위협을 받는 가운데 에너지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항행 위기가 동시에 발생한 것이다.

후티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상대로 지속적인 공격과 위협 행위를 해왔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돕는다는 명분이다. 최근엔 후티 반군 내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집중 매설된 해저 광케이블을 타깃으로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발언도 흘러나왔다. 지난해 12월 말 후티 반군의 한 지도자가 해저 케이블 절단을 시사하면서 “서구를 석기 시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집중 매설된 해저 케이블이 절단되면 인터넷 장애가 발생하는 등 대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후티 반군이 장악한 바브엘만데브 해협에는 아시아까지 연결된 해저 케이블은 물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해저 케이블도 매설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 10개국은 후티 반군이 홍해 남부에서 상선에 대한 공격을 계속할 경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이후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친이란 민병대를 겨냥한 공격을 단행한 적이 있지만,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미국은 전면적인 전쟁 확대를 우려해 친이란 세력들의 도발에도 군사 개입을 망설여 왔으나, 이란이 세계 물류 대동맥의 통제권을 과시하자 결국 맞불 대응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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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반군의 지도자 압둘말리크 알후티(상단)와 후티 반군 인사들 모습/사진=후티 반군 공식 홈페이지

후티의 진짜 의도는 ‘이스라엘 견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과 함께 이른바 ‘저항의 축’에 속한다. 그간 이란은 지역 내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저항의 축이란 이름을 내걸고 반미·반이스라엘 세력을 결집해 왔다. 후티 반군은 1994년 예멘 사나에서 모하메드 알후티에 의해 창립됐다. 2004년 무장활동을 시작해 예멘 정규군(동부 정권)과 충돌을 빚었으며, 2011년 예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정규군이 분열하자 그중 일부를 흡수해 세력을 확장했다. 2014년에는 수도 사나와 중부 지방을 장악해 자신들이 예멘을 통치하는 공식 정부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후 예멘은 사실상 반으로 갈라져 내전을 겪고 있다. UN에 따르면 지난해 초를 기준으로 예멘 내전으로 사망한 이들은 37만7,000명에 달하며, 400만 명이 집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예멘 내전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리전으로도 불린다. 후티 반군은 같은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의 지원을, 정규군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UN은 예멘의 정식 국가로 정규군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후티 반군 역시 정부 수반과 외무부 등의 장관을 갖췄다는 점에서 사실상 하나의 국가로 볼 수 있다. 이란은 후티 반군을 예멘의 정부로 인정하는 유일한 국가로, 후티 반군은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을 저주하라’ 등의 슬로건을 내걸 정도로 이란과 반미·반이스라엘 성향을 같이 한다.

미국과 사우디는 이란이 후티 반군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한다고 확신하지만 이란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후티 반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행위는 UN의 무기 금수 결의 위반에 해당한다. 북한도 후티의 후원자다. UN 안보리의 2018년 비밀 보고서에 따르면 후티 반군의 지도자와 북한 측 관계자가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만나 기술 이전 사안과 다른 상호 이익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수년간 내전을 겪으며 실전 경험을 쌓은 후티 반군의 전력이 과소평가 돼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예멘 수도 사나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서 후티 반군은 전투기와 드론, 미사일, 보트, 대함 기뢰 등을 선보이며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다만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직접 개입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예멘과 이스라엘은 2,000㎞ 이상 떨어져 있는 만큼 장거리 미사일로도 이스라엘 본토를 압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경제와 인프라가 무너진 후티 반군이 외부와의 전쟁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즉 후티 반군의 이같은 도발은 전쟁에 직접 개입하려는 목적보다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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