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상속세에 부작용 ‘속출’, “시대착오적 제도 뜯어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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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상속세에 공제 제도도 '미흡', "사실상 '기업의 무덤'"
가업 승계 이점 무의미한 수준, "정부가 기업 혁신 가로막는 꼴"
영국서도 상속세 '폐지' 수순, "제도 개편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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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네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상속세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대한민국의 가혹한 상속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징벌적 상속제에 따라 무너져 가는 기업 상황이 흡사 국가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는 의견이 팽배해진 탓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위며, 여기에 최대주주 할증까지 더하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뛰어오른다. 해외서도 상속세 개편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또한 ‘부자 감세’라는 단순한 프레임을 과감하게 벗어 던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 실효세율 20% 넘어,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

2022년 우리나라 상속세 실효세율은 사상 처음으로 20%를 넘겼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2년 34만8,519명의 사망자가 남긴 재산은 총 96조506억원이었으며, 이를 물려받은 과세 대상자 1만5,760명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는 19조2,603억원으로 집계됐다. 실효세율이 20.05%에 달해 전체 사망자가 남긴 재산 중 20% 이상을 정부가 상속세 명목으로 거둬가게 된다는 의미다. 이에 상속세 규모는 2018년 2조5,197억원에서 2021년 4조9,131억원으로 급증했다. 2022년 상속세의 경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망에 따른 상속세 12조원을 제외해도 7조2,600억원이 넘는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그런데 여기에 최대주주 할증까지 더하면 60%로 세계 최고 수준까지 치솟는다. 국내에서조차 상속세에 대해 ‘가혹한 징벌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른 반발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재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총 10년간 가업승계 공제 혜택을 총 다섯 차례 확대했다. 지난해에도 가업승계 대상 기업 규모를 연 매출 4,000억원 미만에서 5,000억원 미만으로, 공제 한도를 최대 500억원에서 최대 600억원으로 상향하는 등 상속세 논란 해소를 위한 정책을 이어갔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막상 상담을 받아보면 여러 가지 세부 요건 때문에 제대로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제조업으로 사업을 시작했어도 이후 유통업 계열 비중이 높아지면 주력 사업이 변경된 것으로 판단해 ’10년 이상 영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등 시장 상황과 동떨어진 내용들이 여전히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가업 승계 혜택을 받은 이후 사후관리 요건이 까다롭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특히 신사업 진출이나 M&A를 단행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단 요건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빅드림이다. 문구·사무용품을 제조하는 빅드림은 창업주인 여권연 대표의 아들인 여상훈 연구실장의 주도 아래 지난 2021년 주력 사업을 과학교구로 전환했다. 빅드림의 이 같은 혁신은 매출과 고용이 모두 늘어난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빅드림은 가업상속공제 특례를 받지 못하게 됐다. 현행 제도는 상속인이 가업을 물려받은 뒤 사후 관리 기간(5년) 표준산업 분류상 ‘중분류’ 내에서만 업종을 변경할 수 있어서다. 과거 가업상속공제를 통해 경영권 대물림을 검토했던 빅드림 측은 이 요건 때문에 상속을 포기했다. 기업의 편법 상속을 막기 위한 정부의 규제가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가로막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여 실장은 “앞으로 과학교구를 활용한 교육서비스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이런 사업이 성공하면 승계 혜택을 받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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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한 ‘상속세 유산취득세 방식 긍정적 검토를 위한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김병욱 의원실

부작용 쏟아져도 ‘부자 감세’?, “프레임 놀이 벗어나야”

이처럼 과도한 상속세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구멍 뚫린 제도 등은 역시너지를 일으키며 각종 부작용을 야기했다. 가업 승계를 통해 기업의 지속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단 상속의 가장 큰 장점마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실례로 국내 1위의 밀폐 용기 업체인 락앤락은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경영권을 해외 사모펀드에 넘겼고, 삼성 오너 일가는 최근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 등 보유 주식 2조7,000억원어치를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소위 ‘이득’을 보는 건 상속세를 떼가는 정부 정도인데, 이마저도 장기적으로는 손해다. 세수를 늘리기 위해선 기업 발전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데, 상속세 자체가 이를 가로막는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괜히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상속세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가 왜곡되고 있다”고 언급한 게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상속세율은 2000년 세법 개정 이후 그대로다. 우리 경제 규모 및 소득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과거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OECD 회원국 중 캐나다·호주 등 14개국은 상속세가 없고 상속세 원조국인 영국도 단계적 상속세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상속세를 제외함으로써 해외 인재 유치를 원활히하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까지 도모하겠단 취지다. 국가 운영 방식에 있어 우리나라와 시대 자체가 다른 셈이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세계적 추세에도 뒤처지는 징벌적 상속세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과도한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고 언급한 만큼 신속한 상속세 개편안 마련이 필요하다. 줄곧 상속세 개편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던 야당 내부에서도 상속세 부담 완화를 긍정 검토하는 기류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해 4월엔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을 지낸 김병욱·송기헌·유동수 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상속세 유산취득세 방식 긍정적 검토를 위한 토론회’를 열고 현행 상속세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 필요성을 논의하기도 했다. 기업의 혁신이 나오기 위해선 정치권의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이제는 ‘상속세 개편=부자 감세’라는 단순한 프레임을 벗어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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