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글로벌 허브로?” 윤 대통령에 전략보고서 전한 AMCHAM, 한국 발목 잡는 건 누더기 규제·시장 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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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통령실에 기업 유치 전략보고서 전달
탈중국에 기회 잡은 한국, 문제는 각종 규제 및 낮은 노동생산성
당면과제는 '규제 해소', "객관적 데이터 기반으로 규제 분석 시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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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글로벌 기업들의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한국으로 유치하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전달했다. 미국 기업의 요구사항을 한국 정부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암참이 ‘기업 유치 전략 보고서’를 작성해 한국 대통령에 제안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탈중국 가속화에 따라 한국이 글로벌 허브가 될 기회에 놓였으나 각종 규제가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보고서 내용의 골자다.

“글로벌 탈중국 가속, 한국이 ‘허브’ 될 수도”

18일 업계에 따르면 암참은 ‘한국의 글로벌 기업 아태지역 거점 유치전략 보고서’를 작성해 윤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암참은 보고서에서 한국이 글로벌 기업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요인으로 △주 52시간 근무제 △비정기 세무조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과도한 규제를 언급했다. 보고서는 “싱가포르는 정규 근로시간(주 44시간) 외에 한 달에 72시간까지 초과 근무를 허용하지만, 한국은 1주일 단위로 근무시간을 규제하는 탓에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선 “CEO들이 한국행을 하지 않는 대표적 이유”라고 강조했다.

최근 5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했거나 생산기지를 옮긴 미국 기업은 상당한 수준이다.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유수의 기업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할 정도다.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내수시장을 보고 진출했지만 중국 정부의 자국 우선주의에 미·중 갈등이 겹치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됐다는 게 암참의 설명이다. 암참이 처음으로 글로벌 기업 유치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 현상이 가속하는 와중 한국이 아시아의 비즈니스 허브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단 것이다.

실제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을 떠나는 과정에서 한국과 싱가포르, 일본 등을 대안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장 가까운 데다 전력·정보기술(IT) 등 산업 인프라가 뛰어나 차이나 엑소더스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보고서는 “아시아 본부가 들어서면 공장 등 추가 투자를 그 지역에 집행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한국은 낮은 생활비, IT 인프라, 한류 문화, 교육 여건 등이 매력적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규제가 발목 잡는 한국, 시장 경직도 ‘고질병’

그러나 상술했듯 각종 규제가 한국의 발목을 잡는다고 암참은 지적한다. 암참은 특히 CEO에 대한 형사책임 리스크를 첫손에 꼽았다. 암참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한국은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과 비교해 훨씬 무거운 징역형 또는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다”며 “고의로 범죄행위가 가담한 경우에 한해 책임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 IT 기업 진출의 발목을 잡는 디지털 규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클라우드와 관련한 규제 정도를 보여주는 ‘글로벌 클라우드 데코시스템 지수’에서 한국은 7.7점으로 중국(6.5점)에 이어 ‘밑에서 2위’였다. 홍콩(8.6점), 일본(8.7점), 싱가포르(8.8점)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보고서는 “한국에선 자체 데이터센터를 보유하지 않으면 정부가 주도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에 뛰어들기 힘들다”며 “데이터센터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입찰이 가능한 싱가포르 등과 비교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각종 규제를 넘어선 ‘산’이 하나 더 한국을 가로막고 있단 점이다. 바로 노동시장 경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근로자 100인 이상인 외투 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본사가 위치한 국가에 비해 한국의 노동시장이 경직적인지’ 여부를 묻는 설문에 응답 기업의 29%는 ‘다소 그렇다’, 7.5%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전체의 36.5%가량이 한국의 경직된 노동시장을 인식하고 있단 의미다. 각종 규제가 체화한 한국은 해고가 까다롭고 노동 비용이 높은 탓에 경직도가 상당 수준 높아졌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2019년 기준 141개국 중 97위로 바닥권이었다. 당장 제도적인 ‘해방’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체화한 경직성이 바로 풀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시장 경직에 따른 낮은 노동생산성도 발목을 잡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집계한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2021년 기준 시간당 42.9달러였는데, 이는 미국 74.8달러, 독일 68.3달러, 프랑스 66.7달러, 영국 59.1달러, 일본 47.3달러 등 다른 주요국(G5)에 비하면 상당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한국은 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문할 만큼 해마다 낮은 노동생산성을 나타내고 있다.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는 데다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해 기업들이 이렇다 할 방어권을 갖지 못하는 것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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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해소 시급한데, “현실은 암흑 속”

결국 전문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규제 해소를 이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암흑 속이다. 애초 규제책 자체가 그때그때 ‘언 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만들어진 누더기 정책인 탓이다. 사고가 나면 면밀한 분석 없이 여론에 떠밀려 당위론적으로 규제가 양산된 경우도 수없이 많았다. 입법 실적이 과열된 국회가 총선을 의식해 여론이 응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한 결과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만들어진 규제의 산도 신산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통상 새로운 산업에 대해선 오히려 규제를 빨리 만들어 주는 게 규제 완화의 효과를 줄 때가 있다. 예컨대 배달 로봇의 승강기 탑승을 위한 규제를 만들면 배달 로봇의 승강기 탑승을 본격적으로 허용한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이런 부분에서 다소 뒤처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국 특유의 포지티브 방식 규제책이 언제나 한 박자 늦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법체계와도 관련이 깊다. 한국은 사고가 나도 소비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고, 보험업 규제로 인해 사업자가 사고를 대비해 보상 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다. 이렇다 보니 한국은 사업 시작 단계에서부터 깐깐한 시각을 갖는 경향이 짙다. 반면 미국은 자유롭게 사업하되 사고가 나면 소비자에 막대한 금액을 징벌적으로 배상하도록 하고, 사업자 대상 보험업도 성행한다. 미국과 한국이 기술의 속도전에서 근원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이 같이 산적한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누더기 규제 각각의 편익을 다시 한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규제를 했을 때 드는 비용과 그로 인한 편익을 살펴보고, 효과가 없다 판단될 시 즉각 해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규제 영향 분석’이란 이름으로 비슷한 과정이 시행되고는 있지만, 최근엔 만들어지는 규제가 워낙 많다 보니 해당 절차는 사실상 요식 행위로 전락한 상황이다. 분석할 때 비용은 과소 계산하고 편익은 감정에 호소하는 경향이 짙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규제에 따른 리스크를 객관적인 방식으로 측정하고 리스크의 수용 범위를 설정한 뒤 적절한 비용 범주를 데이터화함으로써 ‘위험 측정 규제(Risk-based-Regulation)’를 시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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