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경쟁부터 협업 중단까지, 격화하는 영풍-고려아연 ‘집안 싸움’

pabii research
고려아연, 영풍에 넘겼던 '서린상사 경영권' 확보에 총력
계열사 지분 투자, 우호 지분 확보 등으로 본격 '결별' 준비
영풍-고려아연 실적 격차 커져, 동업자에서 경쟁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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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그룹(이하 영풍)과 고려아연의 ’75년 동맹’이 막을 내렸다. 고려아연 측이 양사 동맹의 중심축이었던 종속회사 내에서 영풍과의 협업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지분 경쟁을 중심으로 양사의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동맹 결렬의 주요 원인으로 고려아연의 ‘성장’을 지목하고 있다. 자체적인 성장 동력을 충분히 확보한 고려아연이 영풍과의 연을 끊고 미래 성장 기반 마련에 착수했다는 분석이다.

서린상사 중심 ‘협력 관계’ 무너져

영풍그룹의 비철금속을 유통하는 서린상사는 양사의 우호를 상징하는 그룹 핵심 계열사로 꼽힌다. 서린상사 지분 66.7%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 고려아연은 지금껏 영풍의 장씨 일가(지분율 33.3%)에 경영을 일임해 왔다. 하지만 최근 고려아연이 서린상사 주주총회를 개최, 이사회를 재구성해 경영권 회복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75년간 함께 걸어왔던 영풍과의 본격적인 ‘결별’을 시사한 것이다.

고려아연은 서린상사 경영 구조 정리를 시작으로 원료 공동 구매, 인력·정보 교류 프로그램 등 영풍과의 협력처를 모두 없애기로 했다. 차후 서린상사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서린상사와 거래를 끊고 별도 종합상사인 고려상사(가칭)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영풍과의 협력 관계를 끊어낸 뒤 유통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현재 고려아연 최씨 일가(현대자동차, LG화학 등의 우호 지분 포함)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전체 중 33.2%로, 영풍 측의 지분율(약 32%)을 소폭 웃도는 수준이다.

한편 고려아연의 동맹 파기에 대해 영풍 측은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이자 경영권을 앞세운 폭력”이라며 “기존 당사자 간의 합의를 무시하고 진행하는 일방적인 현상 변경의 시도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경영권만을 믿고 일방적으로 현상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영풍 측에 가하는 폭력이자, 사회적으로도 용인받기 어려운 행위라는 지적이다.

고려아연, 함께 걷기엔 너무 커졌다?

산업계에선 양사 분열의 원인으로 고려아연의 ‘급성장’을 지목한다. 영풍 및 3개 상장 회사(코리아써키트, 인터플렉스, 시그네틱스)와 고려아연은 수십 년간 유사한 속도의 성장 전략을 채택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려아연이 본격적인 ‘대기업’ 반열에 오르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고려아연의 지난해 매출액은 9조7,045억원, 영업이익은 6,599억원에 달한다. 반면 영풍은 지난해 고려아연을 비롯한 종속회사로부터 총 1,672억원의 배당 수익을 올렸음에도 불구, 430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 22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도 고려아연이 9조1,998억원, 영풍은 8,897억원 수준이다.

몸집을 불린 고려아연은 영풍 측의 경영 관여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취임 직후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한화·LG·현대자동차 등의 투자를 받아 우호 지분을 확보, 영풍의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이 대표적인 예다. 시장 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고려아연이 영풍과의 연을 끊어내고, 비철금속 분야에서 자체적으로 경쟁을 펼쳐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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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 측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차후 고려아연 계열 제련소를 활용할 수 없게 될 경우, 영풍과 고려아연의 실적 격차는 한층 커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매출 1조5,290억원, 영업이익 175억원을 기록한 자회사 서린상사를 빼앗기고, 고려아연발(發) 배당 수익이 사라질 경우 그룹 차원의 실적 역시 눈에 띄게 악화하게 된다. 고려아연과의 동맹 결렬은 사실상 영풍 측의 시장 입지를 뒤흔드는 ‘폭풍’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어떻게든 끊어내라” 고려아연의 노력

한편 고려아연 측은 이사회 재구성 외에도 영풍과의 ‘단절’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풍과 함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 ‘켐코(chemco)’를 자회사로 편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켐코 이사회는 고려아연에 대한 1,478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이를 통해 고려아연이 보유한 켐코 지분율은 기존 35%에서 64%까지 급증했다. 고려아연과 함께 유상증자에 참여한 원자재 거래 중개사 트라피구라(Trafigura) 역시 켐코 지분 13%를 확보하게 됐다.

켐코는 이차전지 핵심 광물인 황산니켈을 제조‧판매하는 기업으로, 지난해 기준 매출액 3,103억원, 영업이익 225억원, 영업이익률 7.2%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배터리 전구체 제조 기업인 ‘한국전구체’의 지분을 51% 인수하며 이차전지 사업을 확대하기도 했다. 영풍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미래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는 ‘알짜 계열사’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영풍 측과 유사한 지분 비율을 유지하던 고려아연이 등을 돌리며 상황이 급변했다. 고려아연이 외부 투자자와 대규모 켐코 지분을 확보, 영풍의 영향력이 급감한 것이다.

고려아연의 ‘영풍 밀어내기’ 움직임이 본격화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차후 관건은 고려아연 내 지분 경쟁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금껏 고려아연 최씨 일가는 외부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영풍 장씨 일가는 계열사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늘려왔다. 두 기업 사이 지분 차이가 근소해진 현재, 차후 본격적으로 지분 경쟁에 불이 붙으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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