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장기화에 흔들리는 크린랲, 경영난 심화에 회생절차 신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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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린랲 회생절차 돌입, 경영권 분쟁-경영난 심화가 원인
'폭풍의 눈' 된 주식증여계약서, 1심 승리 차남이 기업 이끌었지만
뒤집힌 판결에 분쟁도 장기 수순, 내부 직원들 "기업 정상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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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크린랲

식품포장용품 제조기업 크린랲이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창업주인 고(故) 전병수 회장과 차남이 장남 전기영씨를 상대로 제기한 경영권 분쟁 소송이 장남의 승리로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차남 전기수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크린랲 법인이 기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다.

식품 포장용품 회사 크린랲, 법정관리 신청

지난 9일 서울회생법원은 회생절차를 신청한 크린랲에 대한 ‘포괄적 금지명령’을 공고했다. 이에 따라 채권자 및 담보권자들은 크린랲의 법원 회생절차 개시 전까지 회사 자산을 강제 집행하거나 가압류하는 행위, 채무자에게 변제를 촉구하는 행위 등이 금지된다. 

이와 관련해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도산전문변호사인 배중섭 변호사(법무법인 율호)는 “포괄적 금지명령은 법인회생의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회사의 재산과 영업활동을 보호하고 법인회생절차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것”이라며 “법원은 회사의 회생 신청 당시 제출된 서류와 법인 대표자에 대한 재판부의 심문 절차를 거쳐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981년 재일교포인 고 전병수 회장이 설립한 크린랲은 비닐장갑, 비닐랩, 지퍼백 등을 생산하면서 독점적인 영향력을 쌓아 나갔다. 지난해 초엔 ‘크린랲 비전 2027 선포식’을 갖고 오는 2027년까지 매출 4,000억원 달성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크린랲이 제시한 전략은 향후 5년간 연평균 17%씩 성장하겠다는 것으로, 영업이익 목표도 오는 2027년까지 지난해 대비 4.2배 늘어난 380억원으로 정했다. 크린랲은 “제품군 강화 및 판매 채널 다양화를 통해 당장 올해 작년보다 11% 증가한 2,015억원 매출을 올리겠다”고 강조했지만, 기업 내부 경영권 분쟁 아래 크린랲의 장밋빛 청사진은 힘을 쓰지 못했다.

경영권 분쟁 리스크 가시화, 1심은 차남 손 들어줬지만

갈등의 시작은 ‘전병수 회장이 소유한 회사 주식 21만 주를 장남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의 주식증여계약서였다. 지난 2006년 작성된 계약서엔 전 회장의 성명과 사인이 기재돼 있었는데, 이를 근거로 장남은 자신이 주식의 소유자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전 회장은 계약서가 위조됐다고 주장했다. 장남이 협박과 폭력을 행사하며 경영권 승계를 이유로 회사 주식 양도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당하자 회사 직원들에게 계약서 위조와 명의개서를 지시했단 것이었다. 전 회장 측은 주식의 소유권은 차남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 2019년 장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1심이 진행되던 지난 2020년 6월 돌연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A씨가 소송수계인으로, 차남은 원고보조참가인으로 재판에 참여했다. 전 회장은 생전에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했는데, 여기엔 당시 진행 중이던 또 다른 소송에서 승소해 취득하게 될 주식 등을 차남에게 유증(유언으로 증여함)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1심 재판에서 장남은 전 회장이 2017년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았고 진료기록 감정 등에 따르면 소송 제기 당시 의사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며 전 회장과 A씨 간 소송대리권 위임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유언공정증서 역시 전 회장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없고, 기명날인이 없어 무효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 재판부는 전 회장의 의사능력에 대한 장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차남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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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서 뒤집힌 판결, 분쟁 장기화에 직원들도 ‘불만’

이에 따라 차남은 그해 9월 공식 회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경영권을 잡고 있지만, 이후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히면서 국면이 바뀌었다. 2심 재판부가 주주 명부에 등재된 사람은 그 회사 주주로 추정되고, 이를 번복하려면 주주권을 부인하는 측에 증명 책임이 있다며 장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결국 재판이 대법원까지 가면서 크린랲은 경영권 분쟁 리스크 아래 악화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분쟁이 장기화하며 기업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렇다 보니 내부 직원들의 볼멘소리도 커지는 분위기다. 실제 크린랲 노동조합은 지난 3월 법원에 회사 정상화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탄원서 작성에는 크린랲 직원 180여 명 중 15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근로자들은 탄원서를 통해 “현 경영진이 하루빨리 회사를 정상으로 되돌려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전 경영진은 미래 먹거리를 위해 투자를 하고 있고 경영에 문제가 없다고 했으나 큰 빚을 떠안은 상황이었다”며 “입사 후 빚이 없는 회사라는 데 자부심을 느껴왔으나 지금은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경영권 분쟁에 경영난까지 겹치면서 경영진의 위기관리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기가 도래했지만, 막상 크린랲 현 경영진들은 이렇다 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내부 직원의 입을 통해 쏟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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