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인플레이션감축법 여파, 해결책 나올까?

현대차그룹, 인플레이션감축법 여파로 美 전기차 판매량 급감 국감서도 ‘핫’했던 IRA, 정부 대응은 ‘미흡’ 정부차원에서 IRA의 불합리함과 공정성을 따져야

pabii research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의 여파가 드러나고 있다. IRA 시행 이후인 지난 9월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대수가 전월 대비 감소한 것이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은 지난 한 달간 전기차 아이오닉5를 1,306대 판매했다고 밝혔다. 8월 판매량 1,517대 대비 14%(211대) 줄었으며, 7월 1,984대 대비 30% 이상 줄었다. 기아 전기차 EV6도 이 기간에 1,440대 판매돼 같은 기간 대비 22%(400대) 감소했다. EV6는 지난 7월 1,716대가 판매됐다.

IRA는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한화 약 1,070만원)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법안이다. 특히 2023년부터 2028년까지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핵심 광물과 양·음극재의 북미산 비율이 낮게는 40%, 많게는 100%까지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편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는 모두 한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기 때문에 세제 혜택에서 제외된다.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 전기차 공장을 건립 예정인 현대차그룹은 2025년에야 완공 예정으로, IRA가 계속 유지될 경우 공장 가동 이후에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이 IRA를 주요 입법 성과를 홍보하면서 미국 소비자들에게 IRA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만큼 국내 자동차 업계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유토이미지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현재 미국에서 중간선거 이후 법 개정을 통해 적용을 유예하거나, 현대차·기아를 IRA 혜택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 이유다. 또 조지아주 지역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IRA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조지아주 정부 관계자는 “IRA의 일부 개정을 통해 법시행을 18~24개월간 유예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이렇게 하면 2025년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에서 전기차가 생산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한국은 올해 상반기에 전기차 배터리 업계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3만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국가”라며 “바이든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문제로 한국의 반발을 샀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감서도 논의된 IRA, 정부 대응은 ‘총체적 난국’

IRA는 이번 우리나라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논의됐다. 5일 진행된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선 IRA 입법 동향 파악에 대한 정부 초기 대응의 적절성이 지적됐다. IRA 개정으로 야기된 국내 자동차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대응책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특히 산자부의 IRA 늑장 대응에 대한 질타가 강하게 쏟아졌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산자부가 보여준 무능, 무지, 무대책의 ‘3무 외교’가 국가경쟁력 및 경제주권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라며 “IRA 보조금 정책으로 인해 연간 10만 대의 전기차 수출이 지장받을 것으로 추산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컨대, 실제 세제 혜택이 1,000만원이라면 아이오닉5가 테슬라 모델 3보다 비싸지는 가격 역전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즉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총 45만4,300달러(한화 약 6억4,3080만원)를 들여 구축한 미국 의회 네트워크를 제대로 활용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회재 민주당 의원은 “미국 의회 네트워크 ‘미의회코리아스터디그룹'(CSGK)에 소속된 미 의원 60인 중 현재까지 한국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의원은 한 명 뿐”이라며 “오직 공화당의 버디 카터 의원만이 IRA 법안이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오랜 동맹국인 한국을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고 말했다.

매년 평균 1억원이 넘는 돈을 들이고도 CSGK 측을 통해 제공받은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과, IRA 이전 해당 법안의 전신 격인 ‘더 나은 재건 법안'(BBB)이 있었음에도 사전 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정부는 인터넷 사이트 단순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던 IRA 주요 내용 및 전기차 보조금 세부 요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정부 차원의 후속 대응도 늦었다. 지난 8월 3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방문했으나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휴가를 떠나 회동이 불발됐고 지난 4일 전화 통화 이후에도 IRA와 관련된 정부 측 설명은 없었다. 또  미 대사관으로부터 IRA 보고서를 전달받고도 미국 측에 의견 표명이나 우려 전달을 즉각적으로 진행하지 않았다. 정부의 이러한 IRA 대응에 대한 평가는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16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IRA’에 서명하고 있다./사진=AP통신

IRA 벗어날 동력 필요

미국 내에선 IRA 규정이 중간선거 이후 유연하게 적용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선 중간선거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법 개정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기후 변화 대응 및 중국 견제라는 IRA의 기본 취지에 양당 모두가 동의하고 있으며 입법 전 미 자동차 업계가 세제 혜택 대상 국가 확대를 건의했으나 당시에도 의회가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IRA를 넘어서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필요한데 미국 내부의 움직임만으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IRA가 상원을 통과할 당시 표가 50 대 50이긴 했으나, 이것이 곧 미국 내 IRA 반대파가 많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화당 측이 IRA를 반대하는 건 세금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 차원에서 완전한 대응을 하기 바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자칫 미국 정부에 밉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유다. 그렇기에 정부와 학계 차원에서 IRA의 불합리함과 공정성을 따져 미국과 FTA를 맺은 모든 국가에 예외를 적용해주도록 유도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IRA는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에 있어 커다란 산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비집고 올라와 우리나라 자동차를 구매해 줄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는 업계와 정부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터다. 물론 현대차의 경우 2025년 미국 내 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나, 그 사이 2~3년 동안 떨어질 브랜드 인지도는 보상받지 못한다. 이번 정부의 IRA에 대한 대응엔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이제는 앞을 봐야 할 때다. 정부여당 차원에서 후속 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피해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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