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가가 공무원과 소통하는 방식 ②공무원은 ‘마케팅’으로 설득해야

공무원 조직, 민간과 다른 문법으로 업무하는 조직, 문법을 존중해줘야 설득돼 민원 사항을 잘 모르는 것은 당연, 그들 사정을 이해하고 설득해야 해외 대학교수, 주요 언론사 등의 외부 매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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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들을 만나다 보면 공공기관과의 대응이 있을 경우 그런 사업을 아예 검토 단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를 물어보면 “공무원들은 ‘설득’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만 버린다”는 대답을 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시간을 아껴 다른 사업에 집중하고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는 편이 더 낫지 않냐는 대답을 이어간다.

최근 모 스타트업을 그만둔 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고 투자금이 더 들어오지 않자, 재직하던 회사에서 정부 프로젝트로 인원을 유지할 매출액을 만들어내겠다는 방침으로 전환한 지 2년째였다고 한다. 더 이상 공무원들의 ‘시간낭비스러운 요구’를 들어주다가는 커리어가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에 적절한 기술력을 갖추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다른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 경영진뿐만 아니라 일선에서 공공조직과 맞닿은 업무를 하는 많은 민간 관계자가 공공 인력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예시들이다.

사진=유토이미지

공무원 조직, 민간의 비난에도 불구, 본인들을 유능한 국가 인재로 인지

아이러니하게도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매우 유능하고 선택받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민간에서 공무원을 무능의 상징으로 바라보고 있으나, 정작 공무원 중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을 통해 공무원이 된 경우뿐만 아니라 7급, 9급 등의 시험도 지원자가 많다 보니 공무원 조직의 자부심은 상당하다. 그럼, 민간에서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눈과 공무원들의 자가 인지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메타인지가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의 영역과 초점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공무원 조직은 민원 처리가 주 업무가 아닌, 매년 계획이 된 정부 사업안을 차례로 시행하고 이행보고서에 성과 사항을 정리할 때 이행률이 얼마나 높으냐에 따라 업무 성과가 결정된다. 민원인의 요청 대응은 본인들의 전문 영역도 아니고 대부분 본인의 업무 평가에 큰 영향을 주기 어렵다.

반면 공적 제한 때문에 민원을 넣게 되는 민간 기관은 많은 경우 해당 사안의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듣는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해당 사안의 전문가가 비전문가에게 빠른 설명을 해주고 바로 이해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시험 점수를 잘 받는 학생도 처음 받아 드는 주제로 단번에 100점을 받을 수는 없다. 이렇게 전문 영역이 아닌 문제를 받아 들게 되면 공무원 조직은 자신이 민원 사안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외부 전문가에 기대려 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주 업무가 아니고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존중하고 맞춰주는 편이 더 이득

설령 해당 안건이 기업의 핵심 이익이나 자율 권한의 범위 안에 있다고 해도 공무원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의 속사정을 이해하고 접근해줘야 그들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공공기관 대응법이지만, 사실 논리는 간단하다.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자는 것이다.

즉 행정부 산하 기관, 국회, 협회 등 이해 관계자들이 어떻게 엮여있고 민원을 보는 그들 각각의 셈법이 어떻게 다른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임장을 제출해야 서류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하는 창구 공무원이 자신들의 위임장 서식을 따르라고 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위임사항은 굳이 위임장이 없어도 된다는 민법 조항을 들어가면서까지 그들에게 문자 메시지 위임으로 인정해달라는 요청을 하면 창구 공무원은 크게 당황할 것이다. 그 창구 공무원은 민법 제3절의 대리 관련 사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제116조의 대리행위의 하자 항목이 발생할 경우 ‘위임장 서류’가 없으면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두려움에 떨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위임장을 그들의 논리에 맞춰주는 것만으로 서류 미비를 트집잡히지 않을 수 있다면 굳이 그들과 다툴 필요가 없다.

민원 사항은 잘 모르는 것이 당연,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설득하는 방식을 바꿔야

좀 더 복잡한 사안으로 사단법인을 설립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행정사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정권 시절 최서원 씨가 간단 서류 1장만으로 사단법인 설립을 익일에 승인받은 사례가 전설처럼 떠돈다. 보통은 담당 공무원이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고 회피하거나 수개월에서 심지어 수년이 걸려도 사단법인을 공식적으로 승인해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행정사사무소 「한강」의 신호영 행정사에 따르면 사단법인 설립 자체가 민원 업무이지 본업이 아닌 데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을 모두 담당 공무원이 져야 하기 때문에 일단 거절하는 것을 원칙으로 접근한다고 생각하고, 사단법인 설립에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통은 주무관청이 되는 것을 모든 공무원이 회피하기 때문에 주무관청 선정에 많은 시간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무사히 주무관청이 선정된다고 해도 본업이 아닌 공무원들이 설립 서류를 꼼꼼하게 봐주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민원인들이 포기하고 만다고 한다. 공무원 조직의 협력을 얻고 싶다면 첫째,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둘째, 정부 타 기관과 협의가 이뤄져 있거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셋째, 공무원이 궁금해할 만한 사안들에 대한 답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학회 설립을 위해 서울시청, 과천과학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등의 수십 개 정부 부처에 6개월의 시간을 허비했던 한 교육 관계자는 결국 해당 학회의 취지가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에서 일찌감치 공감해 활동이 이뤄지고 있고 국내에서 명망 있는 교수진들이 참여하고 있는 데다 학회 활동의 범위가 사단법인 설립 시에 문제 소지가 없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납득시키는 절차를 거쳤다고 했다.

공무원 설득은 또 다른 ‘마케팅 작업’, 그들만의 문법에 맞춰야

정부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수주했던 한 영업 전문가 A씨는 공무원들에게 ‘무엇이 좋다’보다 ‘무엇을 안 하면 문제가 된다’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추천한다.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해 극단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조직인 만큼 문제가 생긴다는 표현을 써야 그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학회 설립 관련해 주무관청 선정부터 고충을 겪었던 교육 관계자는 해외에서 이미 진행 중인 연구 분야이고 국내에서도 국가기간산업으로 밀어주고 있는 만큼, 안 된다고 회피할 경우 단순히 불만 민원에 그치지 않고 언론 보도 등으로 더 큰 분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논지가 통했다고 전했다.

영업 전문가 A씨의 또 다른 조언은 ‘적절한 매체를 활용해 설득하라’다. 같은 논리에서 영미권의 주요 대학들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 국내에서도 몇몇 선도적인 교수들이 연구하고 있는 주제라는 내용, 심지어 노벨상 수상자가 언급했던 내용이라는 사실이 공무원에게는 신뢰 가능한 매체였다고 해석했다. 그 외 주요 언론 매체에 언론사가 보도할 만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공무원 조직을 설득하는 데 유리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오랜 영업 경험상, 광고 기사라는 오해를 사는 한이 있더라도 주요 언론사 기사들만큼 공무원 조직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매체는 흔치 않았다는 경험담도 따라왔다.

끝으로 “영어권에서는 영어로 말을 해야 설득이 되듯 공무원들에게는 그들의 언어로 말을 해줘야 설득이 된다”며 “많은 공무원이 퇴직 후 사기를 당하거나 자영업에서 힘겨워하는 등 민간에 적응을 못 하는데 평생 다른 문법으로 대화를 하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명으로 공무원들의 ‘문법’이 민간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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