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 빠진 대한민국, 상생·삶의 질 위해 ‘개방형 복지민주주의’ 추진해야

좌파가 집권한 남미와 우파 득세한 유럽, 공통점은 ‘삶의 질 저하’ 대한 불만 거시경제지표 악화로 혼란 발생한 남미·유럽, 민주주의 실현 위해 경제 기반 다져야 한국, 경제발전에 기초한 ‘삶의 질’ 안전망 보편 제공·사회 통합 위해 ‘개방형 복지민주주의’ 필요

pabii research

남미와 유럽에서 유권자들이 삶의 방식 변화에 따른 삶의 질 저하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 결과 남미에서는 부패 정부의 무책임한 복지 혜택 축소, 위기 대처 무능력에 대한 실망으로 좌파가 집권하고, 유럽에서는 이민·난민 유입과 유럽연합 재정 부담 등의 대안으로 우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에 ‘포스트 코로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경제발전에 기초한 삶의 질 안전망의 보편적 제공과 상생의 사회 통합 정책으로 삶의 방식이 다양하게 공존할 수 있는 ‘개방형 복지민주주의’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경기연구원은 ‘삶의 질이 바꾼 민주주의; 남미 진보와 유럽 보수의 약진’ 보고서를 발간, 이같이 제언했다.

진보화 이뤄지는 남미, 좌파 인사 줄줄이 당선

남미의 경우 전반적인 진보화가 이뤄지고 있다. 콜롬비아에서는 좌파 무장 단체활동을 했던 페트로(Petro) 대통령이 당선됐다. 콜롬비아에서는 1990년대에 좌익 무장 게릴라가 국토의 30% 이상을 장악하며 좌우 대립이 발생했고, 좌익 게릴라의 사후 처리에 대한 논란을 중심으로 정당의 분파 및 대립이 본격화했다. 하지만 좌익 게릴라에 대한 온건 정책을 주장한 산토스의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이와 같은 지지는 대통령 당선으로 귀결됐다.

하지만 평화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좌익 게릴라와 관련한 정치적 혼란과 논쟁은 지속됐다. 이에 콜롬비아 최초 좌파 대통령인 페트로가 등장했다. 페트로는 평화 협정으로 제도권 정당이 된 좌파 게릴라 단체 M-19 소속원 출신으로, 하원의원과 보고타 시장을 역임한 뒤 2022년 세 번째 대통령 도전 끝에 당선됐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여론 및 국민의 기대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페트로가 창당한 ‘인간적인 콜롬비아’(Colombia Humana)당은 중앙정치기반의 정당 조직이 아닌 사회운동 및 풀뿌리 시민사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진=경기연구원

칠레에서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개혁 시위를 이끌었던 학생운동 경력의 보리치(Boric)가 최연소 대통령 당선의 기록을 세웠다. 독재자 피노체트의 후예인 우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보리치 대통령은 기존 제도권 좌우 정당 연합의 소속이 아닌, 사회운동을 통해서 정치에 입문한 인물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칠레는 다문화 국가임을 선언했으며, 성평등의 원칙에 근거해 24명 내각 구성원 중 14명을 여성으로 구성하는 상징적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페루의 카스티요(Castillo) 정부는 개혁을 원하는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페루는 2016년 쿠친스키(Kuczynski) 대통령 당선 이후 대통령이 4번 교체되고, 전⋅현직 대통령 및 야당 의원들이 줄줄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는 등 극심한 정국 불안정을 겪었다. 혼란스러운 국가 상황에 불만을 품은 국민이 늘었고, 결국 2021년 6월 결선투표에서 급진좌파 성향의 자유페루당 페드로 카스티요가 보수우파 성향의 국민권력당 후지모리를 0.25% 득표율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브라질은 룰라(Lula)가 12년 만에 재집권 및 브라질 사상 최초로 3선에 성공했다. 보우소나르(Bolsonaro)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에 실패, 브라질에 누적 사망자 세계 2위(68만6,000명)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겼다. 이에 더해 망언에 가까운 정치적 발언으로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남성 및 백인우월주의를 공공연히 내세우는가 하면, 원주민 비하, 여성 기자 모욕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에 국민들 사이에서 전임 대통령 룰라에 대한 향수가 일었다. 룰라 대통령 임기 (2003~2010) 당시 브라질은 원자재 가격 상승 및 중국의 급성장에 편승해 연평균 4.1%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빈곤층 지원 프로그램인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빈곤 퇴치를 위한 굶주림 없는 사회(Fome Zero) 등의 복지정책 확대로 성장과 복지를 모두 달성했다. 결국 룰라는 뇌물수수 혐의로 580일의 수감 끝에 무죄 선고를 받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 12년 만의 재집권과 브라질 역사상 최초로 3선에 성공했다.

우파가 집권하는 유럽

독일은 2017년 이후 원내 진출 정당 6개의 다당제로 정당 제도가 고착화됐으며, 점차 대안당과 같은 극우 정당이 부상하는 추세다. 스웨덴의 경우 이민·난민에 대한 스웨덴 예외주의에 위협을 느낀 유권자들이 난민 반대를 주요 정강 정책으로 하는 스웨덴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우파 연합이 집권하게 됐다. 프랑스는 2017년 마크롱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적 경향을 유지해왔다. 이후 마크롱(Macron)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터져 나왔고, 제무르(Eric Zemmour)의 재정복당(Reconquête) 등 극우파가 약진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당(PS)과 공화당 연합(LR-MoDem)의 좌파 정당은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사진=경기연구원

이탈리아의 경우, 극심한 대립과 군소 정당의 난립으로 지속적인 정치적 불안을 겪어왔다. 결국 국민들은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로 정치 참여를 포기했고, 투표 참가율은 눈에 띄게 급감했다. 투표율은 1983년 90% 미만, 2013년 80% 미만을 지나 2022년 총선에서는 63.8%까지 줄었다. 이에 이탈리아에서는 우파 포퓰리즘이 강화되며 ‘이탈리아의 형제들’과 같은 국가주의 급진 우파가 득세하고 있다. 한동안 혈연적 민족주의가 아닌 주권(sovereignty) 중심적 민족주의 급진 우파(radical right)의 강화 경향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거시경제지표 악화·삶의 질 저하, 정치적 혼란 부른다

유럽과 남미 국민들은 현직 집권당의 정책 실패로 삶의 질이 저하됐다고 판단했다. 유럽 유권자는 삶의 질 저하의 원인을 이민⋅난민 유입, 범죄 증가⋅사회 혼란, 테러 위협 등에 두고 우파 정권에 지지를 보냈다. 남미 유권자의 경우 삶의 질의 저하를 가져온 원인으로 부패한 우파 정부, 무책임한 복지 축소, 무능한 정부 등을 지목하며 삶의 방식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선진 민주국가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정치적 변화의 원인은 결국 거시경제지표의 악화다. 삶의 질 악화에 따른 불만이 불신⋅혐오와 결합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면, 정치는 혼란에 빠지고 민주주의는 퇴보하게 된다. 건강한 민주주의도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이론을 우리나라의 현 경제 상황에 대입해보면 ‘개방형 복지민주주의’의 필요성이 극대화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가 2022년 하반기 8.4까지 뛰며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9.0)에 근접해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기회복의 지연, 사회 안전망의 약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불어 한국 경제의 핵심인 제조업·농축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유럽에 나타난 혐오·차별이 우리 사회에 등장하는 것을 방지하는 사회통합정책이 필요하다.

이성우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으로 발전하려면 한국 정부는 경제발전에 기초한 ‘삶의 질’에 대한 안전망의 보편적 제공과 상생의 사회 통합 정책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개방형 복지민주주의’의 선진 국가로 발전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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