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중립국 외교 시험대 올라가나

정부, 지난해 12월 28일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 환영하는 미국과 심기 불편한 중국, 여전히 신중한 균형이라는 의견도 한국,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변모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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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8일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정부가 2022년 12월 28일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하 인태전략)을 발표했다.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미·중 패권 경쟁이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격화되는 가운데, 주요 경합국인 한국의 전략 방향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뜨거운 상황이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24일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특징 및 향후 과제’를 발간하면서 한국의 인태전략이 실질적 성과를 얻으려면 해외 주요국 인태전략과 미·중 갈등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제외한 국제사회는 환영하는 분위기

대통령실은 한국의 인태전략이 21세기 인도-태평양 시대를 맞아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포괄적 외교 전략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사안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한반도·동북아를 넘어 우리의 외교적 지평을 인태지역과 그 너머로 확대하는 데 목적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각국 정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은 대체로 한국의 인태전략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성명을 통해 국제평화와 안보를 증진하는 한미 공동의 능력 강화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하야시 일본 외무상 또한 1월 13일 진행한 한일 외무장관 전화회담에서 한국 정부의 인태전략 발표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했다고 알려졌다.

반면 중국은 인태전략의 배타성 여부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이 한중 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면서, 작은 울타리를 만드는 전략에 반대한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중국 학자들은 한국의 인태전략으로 인해 한중 양국 간 미래 협력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 국영 언론사 타스 통신은 별다른 논평 없이 한국 인태전략의 중점 추진과제를 소개하는 데 그쳤으며 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은 없는듯하다.

한국의 인태전략 발표 후 전문가들은 대체로 미·중 전략경쟁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분명해졌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국의 인태전략이 미·중 간 ‘신중한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인태전략 옹호 그룹에 기울면서도 대(對)중국에의 관여를 병행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각국 인태전략, “중국은 주요한 협력 국가”

각국 및 지역의 실제 인태전략은 이해관계에 따라 구상, 가이드라인, 관점, 입장 등 상이한 성격을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인태전략이 우리나라 외교정책 역사의 분수령일 만큼 단순한 구상을 넘어 그 목적과 비전, 원칙이 분명한 전략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독일 인태전략의 경우 중국과 관계를 고려하여 ‘전략’이라는 표현 대신 ‘가이드라인(지침)’ 수준으로 발표했는데 이는 국방부 등 부처 간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인도는 총리 연설을 통해 기본 구상을 발표한 바 있으나 공식화된 정책서는 채택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한편 국제사회에서 인태지역의 지역적 범위는 명확하지 않고 단일한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대다수 국가의 인태전략은 동아프리카에서 남태평양에 걸친 인도양과 태평양에 인접한 국가를 해안선에 따라 대략적인 지역 범위로 설정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인태전략 대상 지역은 범위가 명확한 편으로,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북태평양, 동남아·아세안,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인도양 연안 아프리카, 유럽·중남미까지 인태지역의 범위로 설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태전략은 중국 부상을 견제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각국 및 지역의 인태전략에서 기술된 ‘중국 요소’에는 편차가 존재하는 모습이다. 영국·미국·캐나다·체코 등은 중국을 체제 경쟁자·도전 국가 등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한국·호주 등은 중국을 주요 협력 국가 혹은 전략적 파트너십의 대상으로 명확히 하고 있다. 일본·아세안·인도 등은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입장은 밝히고 있지 않다.

저울질 하다간 우리가 시험대 오를 수도

한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나, 전략적 영향력은 아직 부족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인태전략의 목표인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력, 군사력 등 하드파워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우호적인 인식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소프트파워를 제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인태지역 내 국가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 기준을 정립하고 규칙 기반의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중국의 압박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지만 인태전략이 윤석열 정부의 사실상 외교정책 독트린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실제 이행에 달려있으리라 분석된다. 날이 갈수록 중국 굴기는 어려워지고 미국은 우호국들과 결속을 다지면서 중국을 전방위에서 압박하는 추세인 만큼, 윤 정부의 선택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해외 주요국들의 전략 방향을 주시해 인태전략의 핵심 요소인 미·중 전략 경쟁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적절한 외교적 대응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은 그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눈치 보듯 처세술을 펼쳐왔지만, 일각에서는 이제 애매모호한 저울질을 멈추고 우리 정부만의 외교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줄타기 외교’는 현대 외교에선 보편적인 방식이지만, 지금처럼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시기에는 언제든 줄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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