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 ‘중국몽’ 강조하던 中, 개도국 부채 증가로 ‘제 허리’ 꺾었다

중국발 ‘빚더미 공포’ 확산, 美 “일대일로는 부채의 올가미” 악성대출 증가에 中마저 ‘위기’, 일대일로의 ‘역설’ 구제금융 벌이곤 있지만, 중국 ‘버블’ 이대로 꺼지나

pabii research
중국 일대일로 사업으로 건설 중인 인도네시아 반둥-자카르타 고속철도의 모습/사진=중국 일대일로망 홈페이지 캡처

중국발 ‘빚더미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다. 중국 일대일로 건설 사업 과정에서 개발도상국들에 내 준 빚 중 회수가 어려운 악성대출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악성대출 급증은 중국 은행의 재정 악화 등 중국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부실 대출 등으로 인한 국내 경제 위기가 여전한 상황에서 중국이 악성대출 타파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일대일로 건설 사업, 中 세계 영향력 확대에 영향

일대일로 구상이 본격화된 지도 어언 10년이 흘렀다. 일대일로 구상은 지난해 말 기준 150여 개 국가에서 2조 달러(약 2,680조원)대 사업이 진행되는 중국 주도의 글로벌 프로젝트로 성장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건설 사업에 대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인류 공동 발전에 기여하는 국제 공공사업과 협력의 새 모델을 구축한 격”이라고 자평한다. “중국몽을 실현하는 게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도움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일대일로 구상의 핵심 키워드는 인프라 건설이고, 그 대상은 대체로 개도국이다. 중국은 자본·기술이 부족한 아프리카·동남아시아·남미 등 개발도상국에 항구·댐·도로·다리·철도·가스관 등을 건설해 준다. 민간 대출 혹은 차관 형태로 상대국에 돈을 빌려주고 인력·기술을 갖춘 중국 기업이 직접 현지에 진출해 건설에 참여하는 형식이다. 개발도상국은 이 사업에 참여해 다양한 인프라를 확보하는 등 과실을 얻을 수 있다. 일대일로 관련 공식 홈페이지인 중국 ‘일대일로망’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이번 달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중국 수력국제공정공사가 건설한 변전소가 완성돼 인도됐고,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중국철도자원그룹과 중국전력건설그룹이 참여한 수력발전소가 완공됐다. 지난달에는 우즈베키스탄에 하루 7,500t의 시멘트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완성됐다.

일대일로 건설 사업으로 인해 중국의 세계 영향력은 확대됐다. 이는 여론조사 결과로도 나타나는데,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치코비츠 가족 재단’이 아프리카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중국은 영향력 부문에서 77%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로 조사됐다. 2위는 67%의 미국이었다. 이치코비츠 재단은 “다른 나라들이 아프리카 개발에 거의 참여하지 않을 때 중국은 꾸준히 참여했고, 결국 정상에 올랐다”고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지난 7월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설문 조사에서도 미국·서유럽·한국 등에선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70~80%에 달했지만 나이지리아(15%)·케냐(23%)·인도네시아(25%)·멕시코(33%) 등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한 국가들에선 부정적 인식이 크게 낮았다.

사진=Adobe Stock

개도국 부채 급증, 친중 국가 피해 커

다만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대일로의 그림자는 매우 짙게 드리웠다. 개도국에 대한 지원이 높은 이자가 붙는 ‘대출’ 형식으로 이뤄지는 탓에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상환하지 못해 파산하거나 빚에 쪼들리는 나라들이 생겨난 것이다. 보스턴대학교 글로벌 개발정책센터(GDPC)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일대일로에 참가한 개도국에 최소 3,310억 달러(약 442조원) 이상을 대출해 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기간 세계은행의 대출보다 더 많은 규모로, 특히 아프리카 지역 국가에만 총 910억 달러(약 122조원)의 대출이 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미국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전 세계 인프라 투자를 위해 지원한 대출 중 2020년부터 지난 3월까지 3년간 상각 및 재조정된 채무는 785억 달러(약 105조원)에 달한다. 2017~2019년 3년간 상각 및 재조정 채무와 비교하면 4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대출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일대일로 건설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대일로 건설 사업은 중국이 놓은 ‘부채의 올가미'”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는 중국의 자금을 지원받은 개도국 상당수가 불어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 지난 5월 잠비아·스리랑카를 포함해 경제 위기에 빠진 12개국의 채무 상황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들 국가의 외채 50% 이상이 중국에서 조달됐다. 이들은 정부 세수의 3분의 1 이상을 중국에 대한 부채 상환에 쓰고 있었다. 일대일로 명목으로 중국이 지급하는 대출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 금리의 약 2배인 연 5% 금리가 적용된다. 바이든 미 대통령의 언급처럼, 일대일로 사업이 말 그대로 ‘부채의 올가미’가 된 모양새다.

결국 일대일로 사업의 가장 큰 피해국은 역설적이게도 대표적인 친중 국가인 파키스탄과 스리랑카가 됐다. 파키스탄은 일대일로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인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국 내 인프라 건설 자금의 80%를 중국에서 조달했는데, 이 사업은 대출이자도 매우 높은 편이어서 파키스탄의 상환 부담이 커지게 됐다. 스리랑카는 남부 함반토타 항구를 2010년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건설했는데, 정작 함반토타항의 이용률이 낮아 적자만 쌓였다. 이에 스리랑카는 지난 2016년 지분의 80%를 중국 국유회사에 매각하고 99년간의 항구 운영권을 넘겼다. 시 주석이 ‘중국몽’을 강조하며 공세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중국과 케냐가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건설 중인 콘자 변전소 건설 현장을 한 노동자가 점검하고 있다/사진=중국 일대일로망 홈페이지 캡처

빚에 허덕이는 개도국, 中 재정 부담도 덩달아 증가

문제는 개도국들이 빚더미에 허덕일수록 중국의 재정적 부담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프라 건설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개도국들이 늘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이를 상환할 여력을 잃어버린 탓이다. 미국 글로벌개발센터(CGD)에 따르면 일대일로 건설 사업에 참여한 개도국(152개국)의 약 15%인 23개국이 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현재까지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 14개국 가운데 9개국(가나·레바논·벨라루스·수리남·스리랑카·아르헨티나·에콰도르·우크라이나·잠비아)이 일대일로 건설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새 개도국과 중국의 재무 부담이 급증하면서, 일각에선 “일대일로 건설 사업의 동력이 사실상 꺼져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황이 악화되자 중국은 빚더미에 오른 개도국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해주는 ‘큰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모양새다.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학 에이드데이터(AidData) 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은 2019~2021년에 총 1,040억 달러(약 135조원)의 구제금융을 벌였다. 개도국 부채 탕감을 통해 재부흥을 이뤄내겠단 전략이지만, 이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다수 표출된다. 내부 상황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중국이 당장 외부 요소에서 큰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다. 실제 중국은 여전히 부동산 부실 대출 등으로 인한 국내 경제 위기를 타파하지 못한 상태다. 일대일로 건설 사업마저 국내 시장 개척에서 한계에 다다른 중국 내 기업을 외국에 진출하도록 돕기 위한 사업이란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내부 한계 극복을 위한 사업이 외연 확장의 한계를 촉발한 상황에서 중국이 할 수 있는 건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버블’처럼 번진 중국의 영향력이 드디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