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자율주행 등 신기술 기업 품는 ‘벤처기업집적시설’ 사업 효과 증대될 수 있을까

입주 대상 확대된 ‘벤처기업집적시설’, 신기술 기업 입지 선택권 넓힌다 실효성 부족, 일각에서는 벤처기업 지원보다 ‘건설업 부양책’이라는 비판마저 제기돼 우주항공 등 보안 예민한 신기술 벤처기업이 도심지 입주 가능할지도 의문

pabii research

교통·정보통신·금융 등의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심 지역에 벤처기업들이 집단적으로 입주할 수 있는 ‘벤처기업집적시설’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자율주행·차세대 원전·로봇·우주항공 등 신기술 개발·보급 기업을 입주 대상에 포함하는 등 규제가 일부 완화됐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기업집적시설의 입주 대상을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분야 신기술 기업까지 확대하도록 지침을 개정하고 20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벤처기업집적시설의 입주 허용 기업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AI·자율주행차 등 신기술 기업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지난해 12월 2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에 따른 후속 조치다.

벤처기업집적시설이란?

벤처기업집적시설은 도심 지역에 벤처기업들이 집단적으로 입주할 수 있도록 지정한 건축물이다. 교통, 정보, 금융 등 경영 여건이 좋은 도심 건물이 벤처기업집적시설로 지정되며, 벤처기업은 입주 및 영업 활동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벤처기업집적시설에 입주한 기업들은 입주 기업 간의 정보 교류, 협업 등을 통해 동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벤처기업집적시설이 갖춰야 하는 요건은 크게 지정 전과 지정 후로 나뉜다. 우선 전용면적이 600㎡ 이상인 건축물이어야 벤처기업집적시설 지정을 받을 수 있다. 지정받은 건축물은 1년 이내에 △최소 4개 이상의 벤처기업 입주(비수도권은 3개 이상) △건축물 연면적(전용면적)의 70%(비수도권 50%) 이상 벤처기업, 지식기반 또는 정보통신, 신기술 기업 입주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벤처기업집적시설 사업 시행자는 올해 말까지 취득세와 재산세를 50% 감면받을 수 있다. 아울러 6개 부담금 면제, 국공유재산 등에 대한 수의계약·신탁 등 허용, 국토계획법 등 규제법령 적용 제외, 미술 장식 설치 의무 배제 등의 혜택을 받는다.

2023년 1월 기준 전국 벤처기업집적시설 수는 총 111개이며, 총 2,768개 사가 입주해 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중소기업DMC타워,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판교이노밸리(6BL) 등이 대표적인 벤처기업집적시설로 꼽힌다. 벤처기업집적시설의 57%인 63개가 수도권에 위치해 있으며, 경북 12개, 대구 9개, 부산 7개, 대전 6개 순으로 많다.

‘신기술’ 기업 입지 선택권 확대

중기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1년도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의 34.1%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시장에서 신기술 분야 기업의 영향력이 점차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벤처기업집적시설에는 △벤처기업 △지식(기반)산업 △정보통신기업 △창업보육센터 3년 이상 입주 경력 기업만이 입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지침 개정을 통해 인공지능·자율주행·차세대 원전·로봇·우주항공 등 신기술 개발·보급 기업들이 벤처기업집적시설의 입주 대상에 포함되며 이들 기업의 입지 선택권이 확대됐다. 건설 시행자에게는 사업성 강화 및 시행 리스크 완화 효과를 가져와 벤처기업집적시설에 대한 건설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이번 벤처기업집적시설 입주 대상 확대로 4차산업혁명 분야 신기술 기업의 입지난이 완화되고, 기업 간 협업과 활발한 인적 교류로 지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지속적인 규제 개선을 추진하는 한편, 비수도권 집적시설에 대한 정책지원을 강화해 지방 소멸에도 적극적으로 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포스코 체인지업그라운드/사진=체인지업그라운드

벤처기업 아닌 건설업 경기 부양책? 실효성 의문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이 벤처기업 지원책보다 건설업 경기 부양책에 가깝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업 시행자는 취득세, 재산세 50% 한시적 감면 등의 혜택을 받게 되는데, 이 같은 혜택은 올해 말까지만 한시 적용된다. 올해 안에 건물을 확보하고 벤처기업집적시설로 지정되어야 상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벤처기업집적시설 입주 기업에는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 입주기업에 대한 취득세(2배)·등록면허세(3배) 및 재산세(5배) 중과세율 적용 배제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벤처기업 확인을 받은 기업은 이미 동일한 수준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입주 대상에 포함된 신기술 기업이 신규 수혜자가 될 수도 있지만, 이들 기업이 성장해 벤처기업 확인을 받게 되면 결국 입주 혜택은 무의미해진다.

정부는 올해 말이라는 촉박한 시간제한으로 시행자의 마음을 부추기는 한편, 실상 실제로는 실효성이 없는 벤처기업 지원책을 내놓았다. 결국 사업성이 강화되고, 리스크가 감소한 건설 시행자에게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간 셈이다. 이번 대책에 최근 침체한 건설 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벤처기업집적시설의 유용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교통, 정보, 금융 등 경영 여건이 좋은 도심에 스타트업 입지를 마련한다는 취지와는 다르게, 대부분이 교통편이 불편한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벤처기업집적시설 대부분은 이동이 편리한 ‘초역세권’이 아닌 10분 이상 도보 이동을 요구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입주 스타트업에 큰 혜택 중 하나인 ‘유리한 입지’의 매력이 사실상 흐려진 셈이다.

이번 개정으로 포함된 우주항공, 인공지능 등 벤처기업이 도심 한복판에 입주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 첨단 기술을 다루고 연구하는 시설은 안전과 보안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일반적으로 연구소가 도심보다는 교외 지역에 위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신기술 산업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외의 벤처기업 집적 단지

이처럼 다수의 벤처기업이 집적해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하는 형태의 시설은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위스의 CERN은 스위스의 입자물리학 연구 단지로, 연구자의 연구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연구시설과 연구자의 생활 수요를 만족하는 근린시설, 가족을 위한 복지시설, 취미 및 여가 시설, 녹지 등이 조성되어 있다. CERN 내에 위치한 레스토랑1(R1, Restaurant 1)은 공공영역의 중심에 위치한 CERN 연구소 캠퍼스의 핵심 공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플렉스는 구글의 본사 단지로, 모회사 알파벳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독립 업무와 신속한 협업이 가능한 맞춤형 첨단 업무 환경은 물론, 연구, 교육, 여가 등을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구글 플렉스 내 ‘찰리스 카페’는 기업 내 소통의 중심지로, 여러 편의 시설과 강당을 연결하며 모든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다.

사진=Boston redevelopment authority

Boston Innovation District(보스턴 혁신지구)는 생명과학과 하이테크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지구로 보스턴 도심지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신생 기업과 기존 기업의 연계 체계, 정부-기업-대학 간의 상호 협력 등을 통해 2010년 이후 700여 개의 신생기업과 3,0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바 있다. 창업자를 위한 주거 공간 제공, 24시간 유연하게 사용 가능한 혁신 공간을 통해 창의적인 소통이 오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도심 중심에 위치한 만큼 하버드, MIT 등 저명한 대학의 학생들은 주거비 등의 문제로 혁신지구가 아닌 재학 중인 학교 근처에 밀집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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