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알 권리와 정치적 책임 강화 위해 ‘무기명투표’ 재검토 해야

한국, 해임건의안이나 인사에 관한 안건은 무기명투표 미국, 대통령 탄액 소추안, 탄액안 등도 모두 기명 찬반투표 영국·일본, 무기명투표는 의장·부의장 선거 등에만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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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 표결제도는 국회가 어떤 방식으로 최종 의사를 결정하는지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알리는 수단인 만큼, 입법자의 정치적 책임성과 의사(議事)의 민주성을 균형 있게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입법처)는 24일 「해외 주요국 의회의 본회의 표결제도-미국·영국·일본 의회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외국입법·정책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국회와 미국 연방의회, 영국 하원 및 일본 양원(兩院)에서 시행되고 있는 본회의 표결제도를 의결정족수와 표결 방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를 비교・분석해 시사점을 도출했다.

전체 재적의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본회의는 회기 중에 개의한다. 위원회가 심사를 마친 안건은 본회의에 상정되며, 본회의에서는 해당 안건을 표결함으로써 입법부의 최종 의사를 결정하게 된다. 다만 우리나라 국회는 ‘위원회 중심주의’에 따라 위원회가 안건의 가부(可否)를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만큼, 본회의 표결은 입법과정에 관한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게 다뤄지는 측면이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회 본회의에서 ‘무기명투표’가 논란이 된 바 있다. 국회는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을 표결할 때나 ‘대통령으로부터 환부된 법률안’을 재의할 때 무기명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

본회의 표결제도는 개별 의원의 찬성 또는 반대 의사표시를 회의록에 게재·공개하는지를 기준으로 ‘기록표결’과 ‘비기록표결’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 일반 의결정족수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및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2023년 5월 기준 국회 재적 의원은 300명이므로, 일반 의결정족수를 요하는 안건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려면 최소 151명이 출석한 가운데 그 과반수(76명 이상)가 찬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만약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더라도 무효표 또는 기권표가 있어 찬성표가 출석의원의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면 그 안건은 부결된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서 일반적 표결 방법은 ‘전자투표에 의한 기록표결’이다. 다만 중요한 안건으로서 의장의 제의 또는 의원의 동의(動議)로 본회의 의결이 있거나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기명투표, 호명투표 또는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 주로 국회의원 선거제도나 사정기관 또는 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등에 관한 쟁점 안건을 처리할 때 표결 방법을 어떻게 변경할지를 본회의 의결로 결정하며, 제16대 국회 이후로는 각 요구가 모두 부결되면서 ‘전자투표에 의한 기록표결’을 실시해 왔다. 한편 국회법은 국회에서 실시하는 각종 선거를 비롯해 헌법개정안, 탄핵소추안, 해임건의안, 인사에 관한 안건 등 일부 ‘특정 안건’에 대해서는 ‘무기명투표’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 연방의회

미국 연방의회를 구성하는 연방상원과 연방하원의 일반 의결정족수는 각각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및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만약 의결정족수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원과 하원에서는 경위장이 결석의원을 강제로 구인함으로써 출석하게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로는 각 원에서 특정 정당의 의석수 비율이 60%를 초과한 사례가 없다는 점과 안정적 양당 체제가 오랜 기간 확립돼 온 정치 환경 등을 고려할 때 국가・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안건을 가결하려면 높은 수준의 정당 간 의사 합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인식이 가중 과반의 특별 의결정족수 설정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연방의회의 본회의 표결 방법에는 육성표결, 기립표결, 찬반투표 및 전자기록표결이 있다. 연방하원에서는 「의사규칙」을 엄격히 적용한 입법 절차에 따라 다수결 원리로 최종 의사를 결정하고 있어 개별 의원의 의사표시를 회의록에 기록하는 ‘기록표결’이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특히 연방하원이 전자투표장치를 도입한 이후로는 전자기록표결을 주로 시행하고 있다.

반면 연방상원에는 충분한 토론과 숙의를 거쳐 만장일치를 지향해 온 관행으로 인해 특별히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 한 찬반투표가 실시되는 경우는 드물며, 찬반투표를 실시하게 되더라도 전자투표 대신 의원 성명을 호명해 찬반 여부를 답하게 하는 전통적 방식의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육성표결과 기립표결은 개별 의원의 찬성 또는 반대 의사표시를 회의록에 기록하지 않는 표결 방법으로 의장이 안건의 표결을 선포하면 제일 먼저 육성표결이 시행된다. 안건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찬성(Aye)”을 외치고, 이어 반대하는 의원들 역시 일제히 “반대 (No)”를 외치면, 의장이 그 목소리의 크기를 비교해 안건의 가결 여부를 판단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연방의회에는 무기명투표 제도가 없다. 연방하원이 의장을 선출할 때 처음 50여 년간은 무기명투표로 표결했으나 1839년부터는 개별 의원이 의장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의 성명을 구두로 호명하는 방식으로 의장을 선출해 오고 있다. 이 밖에도 대통령 탄핵소추안(연방하원)이나 탄핵안(연방상원) 등도 모두 기명의 찬반투표 방식으로 표결하고 있다.

영국 하원

영국 하원의 입법과정은 ‘본회의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본회의에서 이뤄지는 독회와 토론을 통해 법률안의 가부가 결정된다. 따라서 본회의는 소수만 출석한 경우라도 안건을 심의할 수 있으며, 하원은 의원의 특별한 요청이 있지 않은 한 정족수를 매번 계산하지 않고 있다. 하원의 의원정수는 650명이므로, 이 중 약 6.1%만이 출석한 경우라도 분열표결로 최종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셈이다.

본회의 표결 방법에는 육성표결, 분열표결 또는 무기명투표가 있다. 영국 하원은 ‘현대화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부터 전자투표장치 도입 여부를 논의했으나, 다수의 지지를 얻는 대안을 찾지 못해 아직 전자투표장치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육성표결은 기본적으로 미국 연방의회의 육성표결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첫 번째 육성표결에서 의장이 표결 결과를 확신하지 못하거나 의원이 이의를 제기하면 동일 안건에 대해 한 차례 더 육성표결을 시행할 수 있다.

영국 하원은 2001년 이후부터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할 때에만 무기명투표로 진행한다. 총선 후 하원 임기가 새로 시작할 때 전임 의장이 재선되면 하원에서는 그를 다시 의장에 선출할 지를 우선 논의하지만, 전임 의장이 사의를 표명하거나 재신임에 실패하면 하원은 무기명투표로 새 의장을 선출하는 절차에 들어간다. 다만 총리와 내각을 계속 신임할지를 묻는 ‘내각 불신임안’에 대해서는 기명의 분열표결이 실시되고 있어 무기명투표는 의장・부의장 선출의 경우에만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양원

일본 국회는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의 양원으로 구성되며, 각 원의 일반 의결정족수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출석 및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일본 양원에서는 이의유무표결・기립표결・기명투표・무기명투표를 실시한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에서는 의회 다수당 지도부로 구성된 내각이 입법을 주도하는데, 내각이 제출한 법률안(각법)은 의회 다수당 중심의 과반 지지를 받아 대부분 법률로 확정되므로 기록표결이 아닌 이의유무표결이나 기립표결이 주로 실시되고 있다.

각 원의 의장은 표결에 부친 안건에 대한 이의 유무를 물어 이의가 제기되지 않으면 가결을 선포할 수 있다. 다만 이의가 제기되면 의장은 곧바로 기립표결을 실시한다. 기립표결은 의장이 안건에 찬성하는 의원들과 반대하는 의원들을 순서대로 각각 일어서게 하여 ‘더 많은 의원이 기립한 것으로 보이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미국의 기립표결은 찬성의원과 반대의원의 총수를 집계해 공표하지만, 일본 양원의 기립표결은 총수를 집계하지 않는다.

일본 양원의 특기할 만한 점은 기명투표에서 무효표가 발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별 의원은 흰색과 청색 카드를 1장씩 배부받게 되는데 흰색은 찬성을, 청색은 반대를 의미하며, 의원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카드 중 하나를 투표함에 넣음으로써 표결에 임한다. 중의원에서는 의장이 투표 시간을 제한할 수도 있는데, 시간 내 표결하지 않은 의원은 기권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두 카드 중 하나로만 의사를 표시할 수 있으므로 무효표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통상 일본 양원에서 무기명투표는 영국과 같이 의장・부의장 등의 선거나 탄핵재판소 재판관 및 소추위원 등을 선출할 때 실시된다. 일본의 무기명투표는 우리 국회와 마찬가지로 명패와 투표용지를 각각 명패함과 투표함에 넣는 방식으로, 명패 수와 투표용지 수를 비교하여 표결 결과를 집계한다. 다만 중의원은 기명투표로 내각총리대신을 지명해야 하므로 무기명투표 대상 안건의 범위가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국회 본회의 표결제도의 개선 필요성

입법처는 본회의 표결제도가 각국의 서로 다른 정치・사회적 환경에 따라 상이하므로 ‘유일한 정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무기명투표 대상 안건의 범위’와 ‘무효표 관리 방안’ 등 두 가지 사항은 국내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미국・영국・일본 의회의 사례를 참고해 우리나라 본회의 표결 제도의 정비 필요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미국 연방의회에는 무기명투표 제도 자체가 없는 데다 영국 하원과 일본 양원에서는 의장・부의장 등 선거 시에만 무기명으로 투표하는 점을 고려해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무기명투표 대상 안건의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주권자가 대리인의 의정 활동을 평가할 수 있도록 개별 의원의 찬성 또는 반대 의사표시를 회의록에 기록・보존・공개해야 한다는 취지와 궤를 같이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무기명투표의 익명성은 입법자가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할 정치적 책무를 뒷받침하는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개별 의원의 의사표시가 자유롭지 못할 경우 입법부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훼손돼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만큼, 무기명투표를 통해 당론에 기속되거나 외부 이해관계자의 압력에 구애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입법처는 ‘기명’과 ‘무기명’은 모두 의원의 정치적 책임을 구현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우리나라 국회의 무기명투표 안건의 범위 조정 여부와 그 정도에 대해서는 입법 정책적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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