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외교·기술·경제·안보 협력 강화’ 세력 구분 확실히 한 尹

11년 만에 이뤄진 한-EU 정상회담, 다양한 분야의 파트너십 및 협력 강화 尹, 한미일 공조에 이어 EU와도 협력 강화, “중·러와의 외교적 대화 곧 시작할 것” 양측 간 경제 협력에 제약 없도록 할 것, EU 공급망 실사법 대응책 마련 요구도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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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EU 정상회담에서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왼쪽),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지난 19일부터 2박 3일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렸던 G7 확대 정상회담 이후인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및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이사회) 상임의장과 정상회담 후 A4용지 12장 분량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공동성명에는 그린·보건·디지털 등 3대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한·EU 외교장관 전략대화를 신설해 포괄적 안보협력을 증진하며, 북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위한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제 북중러와 사실상 척을 지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또한 기업 관계자들은 EU와 수출에 관련된 경제적 협력에 대해 긍정했지만 공급망 실사법과 관련해 우리 기업이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EU, 3대 파트너십 강화하고 안보 협력 증진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이사회 상임의장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EU의 두 수장이 동시에 한국을 찾은 것은 11년 만으로 양측 정상들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경제 안보 증진과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위한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U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제3위 교역상대국이자 제1위 대(對)한국 투자 파트너”라며 “이번에 체결된 양자 간 상호호혜적인 경제협력이 반도체, 공급망, 디지털, 우주 등 미래산업 분야로 확대되는 것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는 ‘한·EU 그린 파트너십’을 체결해 기후 행동, 환경보호, 에너지 전환 등 포괄적인 기후·환경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한·EU 보건 비상 대비 대응에 대한 행정 약정’을 체결해 의료 대응 수단의 연구, 혁신, 제조와 심각한 초국경적 보건 위기 대비, 백신 접종 및 생산 역량에 대한 제3국 지원 등 보건 분야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체결된 ‘한·EU 디지털 파트너십’은 후속 조치를 통해 디지털 파트너십 협의회로 이어가기로 했다.

EU는 현재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첨단산업 공급망을 강화하는 일을 목표로 관련 입법을 추진 중이다. 이에 우리 측에 “핵심 광물 공급과 배터리 개발에 관한 최근 입법에 대해 긴밀한 정책 협의를 지속하고, 탄소 국경 조치에 관한 상호 조율을 강화하자”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EU 이사회는 지난 2월 핵심원자재법과 탄소중립산업법 초안을 공개했고, 3월에는 2035년 이후 내연기관 신규 차량의 판매를 금지하는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 개정안’을 발효했다. 지난달에는 보조금 및 투자를 통해 역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내용의 반도체법을 발의했으며, 오는 10월에는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입법 절차가 마무리돼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가 생긴다.

한편 윤 대통령은 무역 파트너로서 EU와 우리 정부는 공통의 이익을 재확인했다며 “글로벌 공급망 내 상호 의존성을 고려해 공급망 회복력을 포함한 경제 안보 관련 대화를 강화하고, 수출 통제 및 경제적 강압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데 합의한다”고 전했다. 3대 분야 파트너십 강화를 넘어 경제적 협력 역시 증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교부 장관과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간 전략대화를 신설해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기존 산업정책대화(IPD)를 공급망·산업정책대화(SCIPD)로 확장해 공급망 안정화 분야에서 긴밀하게 공조하기로 했다. EU의 입법안들이 양자 간 경제 협력에 제약을 가져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외에도 한국과 EU의 첨단 기술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한국의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가입 협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호라이즌 유럽은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약 955억 유로를 투입하는 EU 최대 연구혁신 프로그램이다.

EU, 尹의 담대한 구상 지지 → 악화한 북·중·러와의 관례

군사적 안보에 대한 이슈 역시 부각됐다. 양측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만큼 북한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위해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또 인도태평양 전략 안에서 양측은 서로를 주요 협력 파트너로 명시했으며, 비전과 중점 추진 분야에서 접점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인태지역의 자유·평화·번영을 위한 파트너십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헤 윤 대통령은 “상임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담대한 구상’이 추구하는 목표와 비전을 지지했으며, 우리와 함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아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한미일 공조에 이어 G7을 통한 글로벌 협력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대한 견제와 국제적 규탄으로 이어져 우리나라가 외교·안보 및 경제적으로 치명타를 입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G7 초청국 확대 세션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 핵미사일 위협 등 사례는 국제법을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비판하며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공고히 하는 데 G7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한미일 철벽 공조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중러 관계의 불확실성을 키운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간 북중러는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물리적 제재를 자제해 왔다. 하지만 최근 G7과 관련해 “중국과 관련된 의제를 제멋대로 다뤘을뿐더러 먹칠하고 공격했다”며 “중국의 내정을 난폭하게 간섭했다”는 논평을 냈고, 이어 G7 폐막일인 21일에는 미국 최대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금지 제재와 더불어 일본 대사를 통해 G7 의장국인 일본에는 공식적인 항의를 전달했다. 우리나라에는 한-EU 공동성명 발표 이후 제재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 교민들은 지난 23일부터 중국 정부가 네이버의 검색 기능과 메일 접속 등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중국 내에서는 이미 구글,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을 비롯한 타 메신저를 사용할 수 없고, 다음 접속도 2019년부터 차단됐지만, 네이버의 경우 블로그나 카페 등을 제외하고는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것마저 차단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중국, 러시아와 고위급 레벨에서도 필요한 현안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며 “양자 간에 전략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그 계획이 오고 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 김 차장은 중국 역시 현안에 대해 한국, 일본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관계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인도적 구난이나 재건에 대한 부분이라 정치적으로 러시아가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은 이번 G7 및 한미일 공조 강화, EU와의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외교적 행보에 대해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외교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연대 안에서 국제적 현안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 위상이 한층 강화됐다”고 자평했다.

EU發 공급망 실사, 기업들 “회담 통한 양측 협력 좋지만, 피해 없도록 정책적 도움 필요”

이같은 EU와의 정상회담 외교적 성과에 대해서 일부 기업 관계자들은 EU의 ‘공급망 ESG 실사’에 대해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는 기업의 불안을 충분히 안정시켜 주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기업 300여 개사를 대상으로 ‘2023년 ESG 주요 현안과 정책과제’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 전체의 40.3%가 올해 가장 큰 ESG 현안에 대해 ‘공급망 ESG 실사 대응’이라고 답했다. 이어 ‘ESG 의무 공시’(30.3%), ‘순환 경제 구축’(15.7%), ‘탄소국경조정제도’(12.0%)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현재 공급망 ESG 실사법은 독일에서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2024년에는 EU 전체로 확대된다. 이에 이미 국내외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협력 업체에 ESG 실사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공급망 실사법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게 조사됐다. ‘단기적인 대응 수준’을 묻는 질문에 원청기업은 48.2%, 협력업체는 47.0%가 ‘별다른 대응 조치 없다’고 답했으며, 장기적인 대응계획으로는 ‘ESG경영 진단 평가 컨설팅’(22.0%), ‘ESG 임직원 교육’(22.0%), ‘ESG 위한 체계 구축’(20.7%), ‘국내외 ESG 관련 인증취득’(4.3%), ‘ESG 외부 전문가 영입’(3.7%)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망 ESG 실사 대응에 이어 두 번째 현안으로 꼽힌 ‘ESG 의무 공시’와 관련해서도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시작되는 공시 의무화에 ‘별다른 대응계획이 없다’는 기업이 36.7%에 달했다. 다만 앞으로도 ESG 경영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기업은 61.6%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ESG 경영이나 공급망 실사법에 대해 대응하기 어려운 이유로 ▲비용 부담(58.3%) ▲내부 전문인력 부족(53.0%) 등을 들며 정부의 정책 과제로 ▲업종별 ESG 가이드라인 제공 ▲ESG 진단 실사 컨설팅 지원 ▲감세 공제 등 세제지원 확대 ▲ESG 전문인력 양성 ▲ESG 금융지원 ▲ESG 인증 서비스 제공 등을 요구했다. 대한상의 우태희 상근부회장 역시 “정부는 자금 및 인력 부족으로 ESG 실천이 쉽지 않은 기업들을 위해 금융 세제지원, 업종별 ESG 가이드라인 제공 등 적극적인 지원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업 ESG를 위한 공급망 실사법 제정 토론회’를 주최하고 “기존 법 제도는 기업의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에 대해 제어가 부족했기 때문에 기업 책임경영을 정책과 관리 시스템에 내재화하는 공급망 인권 환경 실사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국회에 입법 예고된 정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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