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덴프로이데] 미국 정치를 망치는 인간 심리 ①

트럼프 전 대통령 머그샷 공개에 조롱 잇달아 미국과 한국 정치에서 발견되는 ‘샤덴프로이데’ 샤덴프로이데 확대 시 정치 미래 암울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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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은 나의 기쁨’이라는 용어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가 미국 정치 영역 전반에서 발현하고 있다. 최근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대다수가 ‘상대 진영을 공격하겠다고 밝힌 정치인에게 투표할 것’이란 응답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당파적 샤덴프로이데가 이념적 견제와 발전을 기초로 한 정당 민주주의를 훼손할 것이라 지적한다.

출처=Donald J. Trump X(구 트위터) 계정

트럼프의 머그샷, 직접적인 조롱 봇물

지난 8월 미국 정치사에 오래 기억될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 미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지아주에서 체포된 것이다. 이번을 포함해 총 4번의 기소를 당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머그샷’을 찍힌 최초의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대중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머그샷에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특히 반트럼프 진영은 해당 머그샷에 대해 조롱을 넘어 환호하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달 24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풀턴 카운티 감옥에 구금된 당일 저녁, 반트럼프 정치행동위원회 ‘링컨 프로젝트’는 자신들의 SNS 채널에, 트럼프의 머그샷이 공개되자 술에 취한 군중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는 페이크 영상을 게재했다. 정치인 집단에서 경쟁자의 불행을 정치적 목적으로 직접 이용한 이번 사례는 단순히 정의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당파적 샤덴프로이데가 미국 정치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단편적으로 드러냈다.

미국 정치계의 당파적 샤덴프로이데

샤덴프로이데는 ‘타인의 불행을 목격했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라는 의미의 독일어다. 샤덴프로이데는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된 미국 정치계에서 빈번히 발견되며, 특정 정치 진영이 아닌 모든 정치 진영에서 나타났다. 트럼프 체포에 열광하는 민주당처럼 공화당도 민주당의 불행이나 분노를 자극하는 행위에 오랜 기간 기쁨을 표했다. 미국 보수 논평가 댄 봉기노(Dan Bongino)는 “내 삶의 목적은 진보 세력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봉기노의 말처럼 수많은 공화당 정치인은 민주당 정치인과 지지자를 조롱하고 분노를 유발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확장했다. 이와 같은 모습은 현대 우파 계열 정치인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당파적 샤덴프로이데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적 무기로 사용된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정당 지지자 혹은 일반 대중도 당파적 샤덴프로이데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경쟁자에게 더 큰 조롱과 고통을 주는 정치인과 이에 동조하는 언론 매체는 해당 대중으로부터 당파적 지지라는 성과를 얻는다. 재선이 목적인 정치인과 시청자의 관심만 끌면 되는 언론 매체에 샤덴프로이데는 훌륭한 수단이자 무기인 셈이다.

미국 정치에서 당파적 샤덴프로이데가 끼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샤덴프로이데를 통해 미국인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예측하기도 한다. 한 정치연구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선거에서 “상대 정당 지지자들에게 입법적으로 보복할 것”이라고 발언한 정치인에게 투표한다는 비율이 가장 높게 집계됐다. 동 기관의 후속 연구에 의하면 미국인 대부분은 상대 정당과 상대 지지자에게 입법적으로 보복하겠다는 후보자를 진심으로 지지하진 않는다고 나타났으나,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샤덴프로이데에 동조하는 미국인의 특성을 단편적으로 설명한다.

9월 20일 국민의힘에 입당한 유튜버 김영민씨의 모습/사진=김영민씨의 유튜버 ‘내시십분’ 캡처

한국 정치에서도 빈번, 최근 뉴미디어로 진화

당파적 샤덴프로이데는 한국 정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이른바 ‘스타 정치인’이 대거 탄생하는 주요 무대가 선거나 국회가 아니라 청문회라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진영을 떠나 가장 자극적인 언어로 상대 진영을 곤경에 몰아넣는 정치인은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최근엔 청문회장을 벗어나 SNS, 유튜브 채널로 영역을 확장했다. 비교적 규제에서 자유로운 뉴미디어 채널에서 드러내는 정치적 언어는 더 공격적이고 자극적으로 진화됐다. 뉴미디어 채널에선 샤덴프로이데에 대한 대중의 열광을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샤덴프로이데가 고조될수록 정비례로 증가하는 채널 구독과 댓글, 스크랩 수는 해당 인물의 행동에 정치적 당위성을 부여한다.

최근엔 샤덴프로이데를 정치계 입문 수단으로 사용한 사례도 등장했다. 지난 20일 약 4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보수 성향 유튜버 김영민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개그맨 출신인 김씨는 지난 12일 단식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야 그게 단식이냐. 디톡스지”라고 조롱한 바 있다. 김씨는 2020년부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콘텐츠로 구독자를 늘려왔다.

한국의 샤덴프로이데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특정 진영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진보 진영 역시 샤덴프로이데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진보 계열 스타 정치인 다수가 청문장에서 전국적인 지지 기반을 다진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오랜 기간 중앙 정권을 유지했던 보수 진영에 대한 당파적 샤덴프로이데는 ‘부패 권력을 척결하는 정의’로 포장하기 용이했고, 진보 진영에서 사용한 자극적인 언어는 더 투쟁적인 모습으로 연출됐다.

때론 개인의 비극도 샤덴프로이데의 소재로 이용됐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 수사 당시 보수 진영에서 전개된 조롱과 비난은 샤덴프로이데의 극한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2016년 국정 농단 사건 당시 박근혜 개인의 가족사를 두고 진보 진영에서 쏟아낸 공격성도 그에 못지않았다.

당파적 샤덴프로이데의 달콤한 유혹

역사적으로 정치는 상대를 비난하는 ‘지저분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미국 공화주의자 애런 버(Aaron Burr)와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총격전이 이미 유명하고, 남북전쟁 시기엔 정치인들이 공개석상에서 폭력을 시사하거나 때론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정치 시스템이 안정화되고 개인의 무력이 중앙에 집중됨에 따라 직접적인 폭력성 표출은 잦아들었지만, 정치의 지저분함은 샤덴프로이데라는 새로운 형태로 발전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발현되는 샤덴프로이데는 더 체계적이고 더 대중적이며 더 언어적이고 더 비열해졌다.

정치인과 언론의 발언은 여론 형성에서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차분한 수사 사용을 통해 미국인들이 갖는 당파적 증오심 표현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치인과 언론의 수사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치인과 언론 매체는 미국인이 혐오하는 정당과 후보에 따라 정치적 충성도가 좌우되는 ‘부정적 당파성’의 시대에서 당파적 혐오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전문가들은 인종, 성별, 이념, 학력, 문화 등 정치적으로 다분열된 미국 상황에서 당파적 샤덴프로이데의 발전은 암울한 정치 전망을 예고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당파적 샤덴프로이데가 주는 보상은 노력에 비해 너무나도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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