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계약’ 만연한 만화·웹툰 업계, ‘국력’이 약해지고 있다 ②

구름빵 사건, ‘저작권 불공정 양도’가 주요 쟁점 출판사 대상 소송 걸었지만, 작가 결국 패소 정부, 불공정 계약 현장 실태 제대로 파악할 필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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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사진=한솔수북

지난 2023년 3월 11일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故 이우영 작가가 캐릭터 업체와의 저작권 분쟁 도중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작가는 지난 2020년 7월경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형설출판사 대표를 상대로 6,000만원 상당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저작권 등에 대한 지분이 쪼개지며 서로 수익 배분이나 사업화에 대한 이해관계가 달라진 것이 주요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낸 캐릭터와 스토리임에도 마음대로 만화를 그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 작가의 사망으로 저작권과 관련한 불공정 계약이 다시금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출판 업계에 만연한 저작권 포괄적 양도 계약인 매절 계약과 관련해 여러 쟁점을 남긴 ‘구름빵 소송’도 재조명되는 모양새다. 두 사건은 모두 저작권 양도가 핵심 쟁점이 됐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구름빵 사건?

구름빵 사건 역시 창작자의 저작권이 불공정하게 양도된 것은 아닌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해당 사건은 구름빵 원작자인 백희나 작가의 작품이 4,400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냈음에도 불평등한 출판 계약으로 인해 저자의 수입은 2,000만원가량에 그쳤다는 내용이 골자로, 불공정한 저작권 계약의 대표 사례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03년 동화 구름빵을 그리고 한국인 최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문학상’을 받은 백 작가는 한솔수북과 출간 계약을 맺으며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른바 ‘매절 계약’이었다. 매절 계약이란 출판사가 저작자에게 일정 금액만 지급하고 향후 저작물 이용을 통해 얻는 수익을 모두 독점하는 계약을 뜻한다.

이후 백 작가는 출판사를 대상으로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2020년 6월 백 작가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을 확정했다. 매절 계약이 2003년 당시 백 작가가 신인 작가였던 점을 감안해 구름빵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에 대한 위험을 적절히 분담하려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왼쪽)와 ‘구름빵’ 백희나 작가(오른쪽)/사진=유튜브 ‘보다’ 캡쳐, 책읽는 곰

구름빵 사건이 남긴 것

구름빵 사건, 검정고무신 사건 등을 거치며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약한 창작자를 대상으로 저작재산권을 영구·일괄도 양도받는 계약 관행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작재산권은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에도 별도의 특약이 없는 이상 2차적저작물작성권은 유보하는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그간 출판 업계에서의 양도 계약은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포함한 저작재산권 전부 양도 계약이었다. 사실상 출판사가 저작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의미다.

표준계약서 효용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우선 콘텐츠 분야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담아낼 수 있는 표준계약서를 내놓을 수 있을지 여부가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표준계약서 사용이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라는 점에서 표준계약서의 효용이 있냐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구름빵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된 매절 계약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매절 계약은 일방적인 불공정 계약이란 일반적인 시선과 달리 출판 업계에선 매절 계약도 필요한 계약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대두되는 문제는 신인 작가 데뷔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매절 계약이 불가능해질 경우 출판사 입장에선 새로운 그림 작가를 발굴하는 것보다 외국 대형 이미지 제작 업체와 계약을 맺고 그곳에서 제공하는 이미지들을 쓰는 게 낫다는 설명이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작가의 경우 저작물의 이,용 대가를 추후 판매 부수에 따라 나눠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장 일괄로 받는 방식을 선호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불공정 계약 실태 타개하기 위해선

우리나라 K-콘텐츠의 위상은 세계적 수준에 다다랐다. 그러나 막상 콘텐츠를 뒷받침해 줄 제도적 장치에는 미비함이 엿보이는 게 현실이다. 콘텐츠의 위상을 사실상 국가 차원에서 깎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에 정부는 출판계약서 등 기존 표준계약서 6종을 전면 개정하고 신규 표준계약서를 신설하는 등 계약 당사자 간 공정한 계약 체결을 위해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으나, 불공정한 계약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이뤄지는 계약의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2022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한 웹툰 산업의 불공정 실태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여전히 불공정한 계약 관행은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다. 체결된 계약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는 이상 불공정 계약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정부는 앞으로 저작권산업 전반의 불공정 계약 관행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이뤄 나가야 할 것이다.

추가보상청구권 제도(일명 ‘구름빵 보호법’) 도입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당초 이전 구름빵 사건으로 인해 추가보상청구권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바 있으나, 제도 도입에 대해 출판사들이 대체적으로 반대하거나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논의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기만 했다. 추가보상청구권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이미 많은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국가 간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동 제도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타당히 진행돼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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