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 누락 없애 아동 권리 증진할 것, 취약 산모 위한 익명 출산 권리는? ‘침묵’

여야 만장일치로 출생통보제 국회 본회의 통과, 현재 세부시행령 제정중 원하지 않는 임신에도 출생신고는 의무? 무분별한 낙태만 확산될 수도 입법처 “산모와 출생아의 건강 위해 출생통보제 개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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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국회입법조사처는 의료기관 출생 아동의 출생신고 누락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출생통보제’와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산모의 권리를 위한 ‘보호출산제’와 관련해 숙고할 점을 담은 ‘이슈와 논점(제2112호)’ 보고서를 발간했다. 입법처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상황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간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상호보완’에 있다고 강조하며,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산모를 보호해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출생통보제의 허점? 영아 유기 막겠다면서 외려 늘어날 수도

지난달 30일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의원 재석 267명 가운데 찬성 266표, 반대 0표, 기권 1표의 압도적 표 차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출생통보제는 신고 의무자인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직권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당시 여야 관계자는 이견 없이 “신고에서 누락되는 아동을 최소화해 신체적·성적·정신적 학대에 노출되는 아이들을 보호할 것”이라며 “아동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출생통보제가 10대 청소년이나 미혼모, 외도로 인한 혼외자 출산 등 신원 노출을 꺼리는 임산부의 의료기관 출산 회피를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2011년 출생신고 된 아동만 입양 가능하도록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이후 2012년부터 베이비 박스 유기 건수가 증가 추세를 보였다. 온라인 미혼모 커뮤니티에서는 ‘호적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아기를 입양 보내는 법’과 관련된 게시글이 수두룩하게 게재되기도 했다. 이종환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는 “통계청에 따르면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정식 입양 규모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지만 베이비박스 유기 건수는 급증했다”며 “우리(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도 이용률이 연 100명 이하였는데, 2013년부터 200명이 훌쩍 넘었다”고 말했다.

이에 출생통보제의 보완책으로 임산부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6일 전국입양가족연대, 한국가온한부모복지협회 등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과 제도 문제로 희생당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며 7월 임시국회의 보호출산제 입법을 촉구했다. 황은숙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회장도 “우리나라에서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로 치부됐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며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 병행 도입은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하면서 상처받은 여성들의 숨겨질 권리에도 주목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 센터 모습/사진=주사랑공동체교회

산모의 권리 vs 출생아의 권리, 보호출산제의 쟁점

보호출산제는 출산 사실 공개를 꺼리는 임산부에게 익명을 보장해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보호하고 출생아 유기 및 영아 살해를 예방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등 해외 국가에서 시행 중이며 오스트리아는 제도 도입 이후 아동 유기가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 발표를 통해 실효성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임신 유지와 출산에 대한 산모의 심리적 부담을 경감시켜 산모의 의료공백을 메우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보호출산제는 제도의 특성상 익명을 원하는 산모의 권리가 중점이 되는 만큼 출생아의 ‘태생에 대한 알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또 익명 출산이 오히려 영아 유기를 부추길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최형숙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살 권리를 박탈당하는 건데, 엄마 혼자라도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우선 아니냐”고 역설했다. 민영창 국내입양인연대 대표도 “아이의 출생 등록을 꺼리는 것과 아이 안전이 위협받는 것은 별개”라며 “아동 생명을 보호하면서 태아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모와 출생아의 안전이 중요, 건강한 양육 환경 마련 시급

입법처는 출생통보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보호출산제의 찬반여부를 떠나 ‘산모의 안전하고 건강한 출생과 출생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위기 임신이나 성 착취로 인한 강제 임신, 외도로 인한 혼외 임신 등의 문제는 아직 출생하지 않은 태아의 권리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의료업계 종사자 역시 익명 출산을 원하는 산모 대다수에게 예외 없이 출생신고를 강요한다면 오히려 출산이 아닌 낙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낙태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낙태 가능 주 수를 넘어선 불법 낙태가 성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에 입법처는 출생신고의 원칙은 출생통보제로 가되 세부 시행령 차원에서 보호출산제의 내용을 추가하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출생통보제의 부정적 여파를 최소화하는 최선의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출산에 있어서 친부가 갖는 권리와 책임을 명확히 해 부와 모가 동시에 책임질 수 있도록 법제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또 출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임산부와 출생아를 위해 ▲위기 임신 상담 시스템 활성화 ▲양육 두려움 해소 프로그램 ▲보육원 확대 및 복지 증진 ▲한 부모 혹은 미혼모 등에 여러 지원제도 개설 ▲양육비 지원 시스템 강화 등의 사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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