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 ‘평균 4%’, 자산운용사 의결권 공시 비교 ‘한눈에’ 들어오도록 개정된다

자산운용사 의결권 공시 체계화, ‘금투협·거래소 서식 표준화 및 DB 구축’ ‘거수기’ 노릇해 온 운용사들, 2008년 가이드라인 마련됐지만 기존 관행 여전 가이드라인은 단지 기준일 뿐, 수탁자 책임에 대한 ‘법적 구속력’ 없어 유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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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금융감독원

금융당국이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내역을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공시서식 개선 등 공시 정보 체계화에 나선다. 장기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통해 투자자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일각에선 가이드라인만으론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주장과 함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법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개정 사항

금융감독원은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개정 태스크포스(TF)’의 중간 논의 결과로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공시서식을 표준화하고 공시정보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추진한다고 2일 밝혔다. 지난 4월 금감원을 중심으로 금융투자협회(금투협), 자본시장연구원, 자산운용사 등이 함께 구성된 TF에선 △의결권 행사정보 DB 등 인프라 부족 △국내 주총의 단기 집중 현상 △제한된 인적자원 등의 실무적 어려움이 개선사항으로 지적된 바 있다.

구체적으로 현행 공시관리 체계는 거래소와 금투협으로 이원화된 구조로 인해 문제점이 많았다. 특히 양사 간 공시 대상과 범위가 달라 의결권 행사 내역 분석이 어려웠다. 예컨대 협회는 운용사가 제출한 펀드별 영업보고서를 통해 매 분기 의결권 행사내역을 공시하는 반면, 거래소는 상장주식에 대한 1년간의 자산운용사별 의결권 행사 내역을 매년 1회 공시해 왔다. 또 의안유형 구분이나 주식수 기재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운용사별 비교가 쉽지 않는 점도 문제였다. 특히 특정 종목에 대한 의결권 행사내역 등 목적에 맞는 검색이 어려워 정보활용도가 떨어지는 측면이 많았다.

이에 금융당국은 앞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운용사가 공시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도록 하고, 투자자도 운용사별 행사 내역을 비교할 수 있도록 공시 정보를 체계화하기로 했다. 먼저 협회와 거래소의 공시서식을 표준화하고, 공시 채널 기능도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현행 운용사별 일괄 공시내역뿐 아니라 의안유형, 종목 등 다양한 조건으로 운용사의 의결권 행사정보의 검색이 가능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공시서식 개정은 금융투자업규정시행세칙 개정을 통해 오는 2024년 주총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이번 개정을 통해 앞으로 투자자들은 자산운용사의 과거 의안별 유사 사례, 타 자산운용사의 행사 이력 등을 쉽게 비교하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7년 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했지만 있으나 마나한 제도로 퇴색

금투협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자산운용사가 지분을 가진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평균 4%에 불과했다. 자산운용사들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통계다. 자산운용사와 같은 투자자 입장에선 회사에 불이익을 될 수 있는 안건은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반대표를 행사하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2016년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를 도입하며 제한적으로 이뤄져 왔던 국내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꾸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전 10%대 초반이었던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이 시행 이후 10%대 후반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후 국민연금의 반대가 끝까지 관철된 경우는 약 1%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추가로 발표되며 사실상 해당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불거진 바 있다.

국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투자기업의 주주가치 제고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지만 그간 주주제안이나 사외이사 후보 추천 등 주주권 행사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이에 더해 주주가치를 저해한 회사의 이사 및 총수를 대상으로 한 대표소송과 손해배상청구도 단 한 건도 진행한 적이 없다. 업계에선 현재 이 제도를 ‘있으나 마나’한 제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산운용사의 의안유형별 의결권 행사 현황, ‘21.4월~’22.3월 기간 중 의결권 행사내역 공시 대상 기준(펀드수탁고의 5% 또는 100억원 이상 보유주식)/출처=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 선진화 위해선 ‘대형사’부터 가이드라인 따르는 문화 안착돼야

이번 개정이 예고된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은 2003년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가 허용된 이후 일찍이 마련됐다. 그러다 지난 2016년에는 최신 이슈를 반영하지 못해 의결권 행사 과정에 참고하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한 차례 개정을 거쳤고, 올해는 공시정보 DB 구축 등 체계화까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이드라인만으론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이드라인에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기준이 분명하게 제시돼 있지만, 말 그대로 이는 가이드라인일 뿐 운용사가 마땅히 지켜야 할 법적 구속력을 가진 원칙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수탁자 책임에 대한 구속력뿐만 아니라 이해 상충 문제도 기존 관행을 뒤바꾸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운용사가 의결권 행사를 위해 투자 기업을 감시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미공개 정보와 그 활용에 따른 법적인 처벌 가능성과도 연관이 있다.

국내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법적인 제도가 마련될 경우 자본시장법상 미공개정보 이용행위 금지조항과 상충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가령, 기업과의 적극적인 대화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과정에서 미공개정보를 얻게 될 경우 이를 주식 운용에 활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권 내 금융지주 등 대형 그룹 위주로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문화가 안착될 필요가 있다”며 “지주 차원에서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계열사가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모회사가 모니터링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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