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 경제 운신 폭 좁아진 한국은행, 中 부동산 위기 감안 “기준 금리 5회 연속 동결”

韓銀, “中 부동산발 위기는 실제적” 업계 일부선 “금리 인하했어야” 전문가들 “수출 경쟁력 확보 및 디플레이션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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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중국발 위기를 감안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로 하향 조정했다. 올해 성장률의 경우 종전 전망인 1.4%를 유지했으나 중국 부동산 부실 사태가 글로벌 금융 시장에 타격을 줄 경우 1.2%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대내외적 경제 불확실성에 거시경제 운신 폭이 좁아진 한은은 기준금리를 5회 연속 3.50%로 동결했다. 다만 한은의 이같은 결정을 두고 일부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의 입장이 갈리는 분위기다.

중국발 경기 침체 우려에 우리나라 경제 성장 전망 및 통화 정책에 직간접적 영향 미쳐

한은은 24일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4%로 내다보며 지난 5월 전망치를 유지했다. 이는 국내 소비 약화, 중국 경제의 장기 침체 가능성,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기준 금리 인상 우려 등의 악재에도 불구, 중국인 단체 관광 유입 전망 및 미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이 하반기 급격한 경제 침체를 막아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한은 내부에서도 중국의 부동산발(發) 디플레이션 우려가 한국의 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내년 경제성장률을 3개월 전 예측치보다 0.1%포인트 낮은 2.2%로 재조정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뚜렷한 경제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는 만큼 내년 성장률을 낮췄다”며 “올해는 4개월밖에 남지 않아 성장률을 크게 조정할 이유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은은 중국의 부동산 시장 위기가 심각해질 경우 올해 성장률이 다시 꺾일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부동산이 실물 경제로 전이돼 중국 성장률이 올해 4.5%, 내년 4.0%로 악화되면 올해 국내 성장률 또한 1.2~1.3%로 낮아질 것이며, 내년 성장률 역시 1.9~2.0%로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발 위기는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당초 중국의 리오프닝으로 개선이 전망됐던 우리나라의 올 하반기 경기가 중국의 부동산 위기로 인해 침체될 가능성을 우려한 한은은 기준금리는 5회 연속 3.50%로 동결했다. 즉 가계부채 규모가 비대해지고, 미 연준의 추가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등 금리 인상 압력이 존재하지만, 금리 추가 인상을 하게 되면 소비·투자가 위축돼 우리나라가 깊은 경기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한편 금융 당국은 향후 가계부채 누증을 막기 위한 추가 기준금리 인상 여지는 남겼다. 금통위원 6명 전원 모두 향후 3개월 내 금리가 3.75%로 상향 조정될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이 총재는 “9월 FOMC, 잭슨홀 미팅 등 미국의 통화정책에 따라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날 이 총재는 최근 ‘영끌’ 열풍이 부동산 시장에 다시금 퍼지면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주택 담보 대출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 상황은 국민들 사이에서 금리가 앞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과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효과가 맞물린 결과”라면서 “만약 금리가 낮아질 것이란 판단에 집을 샀다면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번 한은 발표 두고 중국 부동산 위기에 ‘과잉 반응’한 것 아니냐는 지적

지난달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완다그룹 계열사인 컨트리가든이 디폴트 위기에 놓이면서 촉발된 중국 부동산 위기가 한국 시장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업계 일부에선 한국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며, 한은의 이번 경제 성장 전망치 하향 조정과 금리 동결 소식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은이 중국의 부동산 위기에 과하게 ‘겁을 먹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당초 정부의 전망이었던 ‘상저하고’를 달성하기 위해 기준 금리 인하를 통한 올 하반기 우리나라의 경기 회복을 도모했어야 했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먼저 이들은 헝다 등 중국 부동산 업체들이 한국 내 투자나 거래관계에 기여하고 있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건설 계열을 포함한 대부분 한국 기업이 자기 자본을 바탕으로 중국에 진출해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 금융기관들을 통한 자금 조달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만큼 중국의 부동산 업체 줄도산에 크게 타격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한 중국 회사의 부실 채권에 한국 업체가 관여한 규모도 그렇게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만약 중국 부동산 기업이 자산 유동화 등을 통해 발행한 채권 규모가 크고 국내 업체가 이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채권 가치 하락으로 인한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현재로선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다. 실제 중국 부동산 기업들에 대한 국내 금융회사 익스포처(위험노출액)은 약 4,000억원 수준으로 총 대외 익스포저의 0.1%에 불과한 수준이다. 심지어 부동산 신탁 등 간접 익스포저까지 계산에 포함하더라도 1조원 미만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의 경기 침체가 우리나라 수출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현재 미국이 대중국 제재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친미 외교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 또한 중국과 이미 상당 부분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진척된 상태라는 것이다. 때문에 중국 경제 하방 위험이 당장 우리 수출 악화나 환율 급등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이 소비재보다는 중간재 위주인 만큼 중국 부동산 위기에 따라 수출 및 경상수지 실적이 급락하진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실제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중국의 경제는 서비스 소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가 중국으로 주로 수출하는 자본재, 원재료, 부품 등의 중간재는 중국 내수시장과 무관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사진=GettyImages

거시 경제 운신 폭 좁아진 한은, 금리 인상 동결은 차선의 결정이었다는 분석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한은의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가는 결정에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다. 중국 부동산발 위기는 자국 금융시장 불안을 넘어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고 있는 데다, 미국발 고금리 전망이 높게 점쳐지는 만큼 대외 환경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금리 인상은 힘들더라도, 최소한 기존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해 우리나라 경제의 연착륙을 도모하는 게 옳다는 얘기다.

현재 부동산발 디폴트 리스크가 실물 경제 전반으로 전이되고 있는 중국이 화재 진압을 위해 급격하게 유동성을 시장에 뿌리고 있는 가운데, 위안화 프록시인 원화 또한 가치 절하의 위험성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금리 인하를 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수출 상품에 대한 글로벌 가격 경쟁력이 중국에 밀려 경상 수지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한은이 이번에 금리 인상을 할 유인도 적지 않았으나, 이는 앞서 살펴봤듯 소비·투자 위축 등의 내수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해 거시 경제 운신 폭이 바짝 좁아진 한은 입장에서는 금리 인상 동결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중국이 장기 침체 국면으로 진입해 소비·투자 수요가 꺼지면 한국에서 수입하는 반도체·건설기계·화학·가전제품 물량도 일제히 쪼그라들게 된다. 아무리 중국과 디커플링이 진행됐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의존도는 지난 1분기 기준 약 20%에 달할 정도로 높다. 즉 아직까지도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며, 중국의 부동산 리스크로 인해 우리나라의 주 먹거리 산업인 반도체가 중국에서 팔리지 않으면 제조업 기반의 우리나라도 경기가 위축될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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