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뽑] ①개발자만 안 뽑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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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ii research
개발자만 안 뽑았더라면
돈도 아끼고, 회사 서비스도 좋아졌을텐데
하고 싶었던 사업모델들도 지금보다 훨씬 더 키워놨을 수 있었을텐데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김슬아 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지금도 개발자만 없으면 적자 폭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회사 크기는 훨씬 더 작은 회사지만, 그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이 찡하더라. 나 역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결국 나는 개발자들을 다 내보내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명색 IT회사라더니 왜 개발자 다 내보냈다고 비웃는 경우도 보고, 주변에서는 “네가 아무리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지 않겠냐”며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실제로 회사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기도 하고, 개발자 없이 IT서비스를 만들고 돌리는게 이렇게 힘든 거라는 걸 절감하면서 가끔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런데, 그간 내가 한국에서 채용하고 겪은 개발자, 주변 친구들이 뽑아서 같이 있어봤던 개발자, 건너건너 듣는 개발자, 그리고 한국어권 개발자들 커뮤니티들에서 보는 개발자들의 상황을 봤을 때, 아주 극소수의 실력파 개발자 분들을 제외하면 그 어떤 분이 와도 업무 스타일이나 공학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랑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 전에 내가 그 분들에게 너무 크게 실망할 것이 이제 너무 예상이 된다. 이만큼 겪어보고도 모르면 그게 바보 아닌가 싶어서 지난 3월에 CTO를 내보내면서 이제 다시는 개발자를 뽑지 말자고 결심했었다.

개발자-안-뽑음_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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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만 안 뽑았더라면

단순히 SSL 인증서 교체한다고 a2ensite 명령어 한 줄을 치던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내가 서버를 처음 잡은 것은 올해 9월 말이다. 그간 사업을 하면서 이쪽은 개발의 업무라고 생각하고 아예 손을 안 댔는데, 심지어 서버 접속하는 SSH 비밀번호도 몰라서 지레 짐작으로 몇 개를 쳐 봐야 했을 정도였다. 근데 그 시스템이 해킹을 당한 상태인데, 그저 외주 회사에서 청소해 주는 서비스만 받고 끝난다는게 너무 답답하더라. 결국 힘들어도 내가 직접 하자고 결심하게 됐던 계기다.

당시에도 개발자를 뽑아야 하나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내보냈던 CTO가 워드프레스 웹페이지에 이미지가 안 뜨는 이유를 찾는데 3일을 썼던 기억, 내가 점심 시간을 미루고 30분 남짓 만에 DB 어느 부분에 그런 정보가 저장되는지 찾아냈던 기억, 그걸 고쳐달라고 하니까 값을 수정하는 것도 아니고, DB에 일괄 변환용 Query를 짜는 것도 아니고, 아예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걸 보고 기겁했던 생각이 함께 떠올랐다. 그래, 모든 것은 내가 해야지, 안 그러면 혈압만 오른다.

결국 내가 직접 해야겠는데, 개발자 출신도 아니고, 개발을 아는 것도 없고, 결국은 만만해보이는 워드프레스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미 시리즈 글 관련 공지에서도 밝혔듯이 글로벌 시장에서 웹사이트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인 ‘구글 페이지 스피드‘에서 대부분의 항목을 100점, 대충 만든 서버라 서버 성능이 문제시 되는 항목마저도 90점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한 상황이다. 고생한 것에 대한 보람도 느끼고, 지난 2달간 공부했던 내용들 중에 아직 적용 못 한 것도 많아서 답답한 심정이기는 한데, 어떻게든 내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해서 그 분들도 개발자 없이 구글 기준 100점을 받는 서비스들을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시리즈 글은 개발 경력 0년인 사업가가 혼자서 워드프레스로 웹페이지를 만들어도 개발자들이 만든 것 이상으로 고급 서비스를 뽑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글이 됐다.

GooglePageSpeed_PabiiResearch_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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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해결 못했던 웹사이트 문제를 해결하다

지난 2021년 5월 어느 시점으로 기억한다. 아니 2020년 어느 시점부터 국내에 대학을 설립하려다가 수천억의 자본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결국 좌절하고, 2021년 초에는 모 대학 인수하려는 팀에 들어갔다가 또 발을 빼는 일들을 겪다가, 결국에는 스위스의 한 대학에서 우리 프로그램을 운영해주는 조건으로 합의가 됐었다. 그 분들에게 한국어로 동일한 서비스를 만들되, 그 쪽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서버를 구성했는데, 결국 조건이 안 맞아서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스위스 교육 사업가와 새로 SIAI라는 대학을 만들었던 사건이 있다.

어차피 최초 몇 년동안 한국 학생들만 받을테니까 한국에 서버를 두겠다고 합의하고 1달 남짓된 서버를 옮겨왔는데, 그 때부터 이상하게 서비스 접속 속도가 엄청나게 늦더라. 왜 그렇게 서비스 접속 속도가 늦냐고 개발자들에게 찾아봐달라고 물어봤었는데, 아무도 속이 시원한 대답을 못 해 줬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는 한국에서 스위스까지 IP를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겪다보면 접속이 느려질 수는 있는데, 서버를 한국에 갖고 온 상태에서도 왜 계속 느린지는 모르겠다는 앵무새 같은 답변이었다.

나도, 우리 SIAI 학생들도, 서버를 한국으로 갖고 왔지만 AWS 구조가 뭔가 꼬여있나보다는 생각만하고 넘어갔을 뿐, 달리 더 방법을 못 찾았었다.

그러다 이번에 서버를 내가 직접 셋팅하던 10월 중순의 어느 날,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야 다른 서버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번쩍 들어서 그 웹사이트로 다시 돌아가봤다. 괜히 잘못 건드려서 문제가 생길까봐 일단 복제본을 뜨고, 원본을 직접 수정해봤는데,

여러 분들이 직접 접속해보면 복제본은 여전히 접속하는데 10초 남짓을 기다려야하는 반면, 원본은 불과 1초 남짓에 화면이 뜨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제해놔서 미안한데, 12월 말~1월 초에는 테스트 서버를 내릴 예정이니 저 작업했던 당사자는 조금만 민망함을 참자)

문제의 원인은 이미지들 상당수가 그 쪽 서버 주소를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근데 심지어 그 쪽 서버에서 이미지를 갖고 올 때 그 분들이 AWS의 Cloudfront를 썼다가 지금은 닫은 탓에

  • https://cloudfront_url.swiss_team_url.com/image_folder_url
    • 한국어 예시: https://이미지.학교이름.com/이미지_이름

형태로 되어 있고, SSL 인증서를 찾을 수가 없으니 웹사이트 접속하는 중에

  • SSL 인증서 찾으려다가 못 찾으니 에러가 뜨고 http로 접속되는 상황
  • 이미지를 찾으러 스위스까지 ping이 갔다가 결국 못 찾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상황
  • 다른 페이지로 이동할 때도 계속 스위스 이미지를 찾으러 ping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

이 반복되었던 탓에 엄청나게 느렸던 것이다.

웹 브라우저에서 개발자 도구(F12)를 한번만 열어봐도 알 수 있는 이런 정보를 개발 경력이 5년이 넘는 개발자가 못 찾았다?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가라 앉히고, 망가진 웹사이트 주소를 복원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 찾을 수 없는 이미지가 많길래, 회사 내에 있던 백업본으로 많은 이미지를 교체해 넣었다. FTP로 이미지 파일들을 업로드하고, DB에 주소가 잘못되어 있던 것들을 Replace 명령어로 수정하고 나니, 사라졌던 이미지가 잘 뜨는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없어진 스위스 서버를 찾질 않으니 로딩 속도가 비교 불가능하게 빨라졌더라.

내년 초에 리뉴얼이 예정된 웹사이트인데, 디자이너가 우연히 접속해보더니 깜짝 놀라며 뭐 했냐고 물었고, 학생들도 다 놀라서 뭐 했냐고 물었었다. 대답은 위에서 찾으시면 된다. (그 외에 달리 더 한건 둘 모두를 FastCGI 캐시가 돌아가는 Nginx 기반의 테스트 서버에 올려놨다는 것이다. 좀 더 빨라진 이유가 될까?)

그간 저 워드프레스 테마를 추천해준 그 학교, 그 테마 만든 회사를 욕하려다가 그 분들은 잘 되는걸 보고 갸우뚱했었고,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어 캐시 플러그인들만 깔았다 지웠다를 수십 차례 반복했던 기억, 특정 플러그인들이 잘 안 돌아갈 때마다 수정하는데 오랜 시간을 썼던 기억 밖에 없는데, 너무 허탈하더라.

나는 그 개발자에게 몇 년 동안 연봉을 얼마나 챙겨줬었나?

개발 팀원들 중에 저 원인을 찾아낸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는데, 그들 전체에게 나는 얼마나 많은 연봉을 챙겨줬었나?

그간 뭘 하나를 해 보려고 해도 매번 속이 터질만큼 개발자들 작업이 느리다는 생각에, 친구들끼리 만나면 불평을 여러차례 했었는데, 개발들은 다들 자기가 완성한 작품의 완성도가 중요하지, 우리처럼 사업하는 사람들 사정은 뒷전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었다.

지난 3월에 겪은 이미지 URL값 수정하는 자리 찾는데 3일, 프로그램 개발하는데 2일 쓴 개발자, 이미지 URL이 끊긴 줄도 몰랐던 개발자를 겪으며 속된 말로 사람에 대한 정이 뚝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예전에 트래픽이 많은 걸 분산한다고 서버 3대에 나눠서 서비스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로그인 한 서버에 계속 접속을 유지시키질 못하고 다른 서버로 보내버리는 바람에 로그인이 자꾸만 풀린 적이 있었다. 그걸 투자자 앞에서 보여주는데 “회사 개발자 실력이 좀 모자란 가보네요”라며 회사를 깔보는 표정을 짓던 그 날의 씁쓸한 기억이 아직도 뒷 맛이 나쁘게 남아있다.

이번에 내가 직접 분산 서버를 만들고 나니 속칭 ‘Round robin’이라는 기본 셋팅만 넣어놓고 그대로 운영했었던 탓에 그런 사건이 벌어졌고, 로그인한 사용자에 대한 쿠키 설정만 제대로 해 줬어도, 아니 로그인을 제쳐놓고 그냥 쿠키 설정만 제대로 해 줬어도 해결됐었을 매우 단순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보나마나 수학 못 한다는 소리겠지, 코테만 통과하면 된다

몇 달 전, 서울 북동쪽의 초명문대 중 하나인 K대 학생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우리 회사로 접속량이 크게 늘었길래, 당시 인턴으로 있던 K대 학생에게 점심 식사 중에 슬쩍 말을 해 줬던 적이 있다. 사무실에서 직접 그 글을 찾아 댓글들을 나한테 보여줬는데, 링크 걸었던 글 내용은 한국의 인재들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는 지적이었고, 내 지적에 공감하지 못하는 K대 학생 하나가 이게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해 놨더라. 7개의 댓글 중 하나가

보나마나 수학 못 한다는 소리겠지. 저 딴 소리 들을 필요 없고, 코테만 통과하면 된다

였는데, 문맥상 코테가 아마 코딩 테스트를 말할 것이다.

내가 그간 뽑았던 개발자들은 코테를 통과하는게 버거운 수준이 아니라, 그래도 나름대로 자기 자신의 역량에 대해서 자신감이 탄탄한 사람이었고, 최소한 내가 개발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인공지능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개발자들’만’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구분은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예외가 2명 있었다.) 백보 양보해서,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학문이 코테만 통과한 애들한테 시킬 일이 아니라, 내 주장대로 수학·통계학 공부를 탄탄하게 한 인력들이나 도전하는 주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도 채용 결정을 했었다.

위의 좀 충격적인 사례를 공유하면 그 분들에게 피해가 될 것 같아 상당히 망설였던 글인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저런 짓을 해놓고 간 다음에 욕을 먹지 않는 것도 합리적인 상황은 아니다 싶더라. (그래도 일부는 내가 못 챙겨준 게 미안해서 회사 더 커지면 늦었지만 뭐라도 좀 챙겨주고 싶은 분들도 있다.) 내 입장에서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사례를 주변 친구들에게 공유하고 나니 자기네 회사에도 심각한 개발자들 많은데 대표가 왜 안 짜르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들을 전해 듣는다는 것이다.

저 위의 K대, 그것도 CS전공 출신으로 우리 SIAI에 온 학생 하나가

  • 지원서에는 ‘K-AI’라며 한국의 AI 풍토가 그저 라이브러리 베껴넣고 무슨 말인지 몰라도 AI로 포장하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지적과, 그 답답함을 SIAI에서는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지원한다는 표현을 썼고,
  • SIAI에서 한 달 공부하고는 졸업 준비생들 논문 세미나 하던 날 애들끼리 모여 놀다가 “한국에서는 네이버/카카오 같은 회사들 말고는 대학 교육 받은 개발자 필요없어요. 그냥 베끼는 코더만 있으면 돼요”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학생의 표현을 빌어 오늘 글은 이렇게 끝내고 싶다.

한국에서 네이버/카카오 같은 회사들 말고는 아예 개발자 필요없어요. 그냥 워드프레스로 거의 다 만들 수 있어요

라고.

계속 하는 말이다. 라이브러리 베껴넣고 AI전문가라며 억대 연봉을 요구하는 개발자들 뽑지 말고, 내 글이 널리 퍼져서 알짜 개발자 이외에는 복붙형 가짜 개발자들이 완전히 퇴출되는 시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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