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기밀 유출에도 사실상 ‘면죄부’, HD현대중공업 향한 방사청의 ‘근거 없는 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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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회피한 HD현대중공업, 시장선 "말이 되나"
미약한 처벌에도 '근거 미비', 설득력 잃은 방사청 심사
'시장 균형' 의식했지만, 업계서도 "무리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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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이 기본 설계를 완료한 KDDX 조감도/사진=HD현대중공업

군사기밀 유출로 논란이 된 HD현대중공업이 방위사업청의 사업 입찰 참가 자격 제재를 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HD현대중공업은 8조원(약 599억 달러)에 달하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포함해 여타 사업에도 문제없이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시장에선 비판적 의견이 적지 않다.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에 사실상 면죄부를 쥐여준 데다 미약한 처벌의 근거조차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사청, HD현대중공업에 ‘행정지도’ 의결

방사청은 27일 계약심의위원회를 열고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부정당 업체 제재 심의를 ‘행정지도’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소속 직원 9명은 2012년 10월부터 약 3년 동안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작성한 KDDX 관련 자료 등 군사기밀 12건을 불법으로 취득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이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한 건 사실이지만 이것이 계약을 무효로 할 만한 부정행위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현행 국가계약법상 시공을 설계와 다르게 했거나 사업에 금전적 손해를 입혔을 경우 등을 부정한 행위로 정하고 있는데, HD현대중공업의 대표나 임원이 입찰 제한 제재의 근거가 되는 청렴 서약을 위반한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로써 HD현대중공업은 2030년까지 6,500t급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내용으로 예상 수주 금액만 58억4,050만 달러(약 7조8,000억원)에 달하는 KDDX 사업에 계속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결정으로 특수선 사업을 확장하려는 HD현대중공업의 계획에 청신호가 켜졌다. HD현대중공업은 앞서 올해 특수선 사업부 수주 목표를 9억8,800만 달러로 지난해 수주 실적(1억3,800만 달러) 대비 7배가량 올려 잡으며 공격적인 확장 의지를 나타냈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 결정에 대해 “국내 함정 산업의 발전과 해외 수출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방사청 결정에 “재심의 해야” 비판 의견 ‘속출’

다만 시장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사실상 방사청이 깜깜이 심사로 HD현대중공업에 면죄부를 쥐여준 모양새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이번 제재 심의의 핵심은 HD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 입찰에 참여하면서 군사기밀을 포함한 방위사업 관련 특정 정보를 외부에 제공하지 않겠다는 청렴서약서를 작성한 만큼 기밀 유출이 서약을 위반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서약 위반이 인정되면 HD현대중공업은 5년 이내로 입찰 참가 자격이 제한되거나 방산업체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 따라서 상당 기간 해군 함정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면 국내 특수선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였다. 당초 방산업계에선 HD현대중공업이 퇴출될 수 있단 의견까지 나왔으나, 업계의 예상을 깨고 방사청은 별다른 제재 조치를 내리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방사청은 “방위사업법 59조에 따른 제재는 청렴 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군사기밀 유출을 일반 직원의 개인적 일탈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이에 가장 강하게 반발한 건 단연 한화오션이다. HD현대중공업의 경쟁 업체로 꼽히던 한화오션은 이날 즉각 입장문을 내고 “현대중공업의 기밀 탈취는 방산 근간을 흔드는 중대 비위로 간주해야 한다”며 “이에 따라 재심의와 감사 및 경찰의 엄중한 수사를 다시 촉구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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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심사’에 방사청 신뢰도 ‘뚝뚝’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방사청의 깜깜이 심사가 이어지면서 시장에선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경쟁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재 수위를 낮춘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HD현대중공업은 이미 군사기밀 유출 사고로 방사청 입찰 때 보안 감점(-1.8점)을 받고 있었다. 만일 여기서 입찰 제한 제재까지 받으면 HD현대중공업은 일정 기간 해군 함정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돼 사업구조 붕괴가 불가피했다. 결국 방사청 입장에선 HD현대중공업에 제재를 가해 한화오션의 시장 독점을 지켜보는 것보단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양사 간 균형을 맞추는 게 더 이익이란 판단을 했을 거라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그러나 방사청이 지나친 무리수를 뒀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국가적으로 심각한 중죄에 해당하는 군사기밀 유출을 느슨하게 심사함으로써 오히려 ‘구멍’을 키웠다는 것이다. 시장 경쟁 유지도 물론 중요한 사회적 톱니바퀴 중 하나이지만, 균형을 맞추기 위해 기본적인 업계 내 신뢰를 무너뜨리는 건 앞뒤가 바뀌었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방사청의 심사 결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후론 시장 내 분위기도 얼어붙었다.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 건이 어째서 가벼운 처벌 선에서 마무리됐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의무조차 내버렸단 이유에서다. 처벌 건에 대한 근거 제시를 회피하는 방사청의 모습에 시장 균형 유지란 대의마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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