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무너지면 배터리도 무너진다, 성장 동력 잃은 LG에너지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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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2등 경쟁' 마무리되나, LG에너지솔루션의 추락
시가총액 급감하며 위기 가시화, 북미 시장에서 반등 노린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도 '캐즘' 그림자 드리워, 탈출구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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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차전지 대표 주자 LG에너지솔루션이 증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업계가 본격적인 혹한기를 맞이한 가운데, 후방 산업인 배터리 시장이 나란히 성장 동력을 잃어버리면서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2위인 반도체 업체 SK하이닉스와 3위인 LG에너지솔루션의 시가총액 격차는 1개월 만에 약 3,000억원에서 30조원(약 226억 달러) 규모까지 벌어졌다.

LG에너지솔루션, 실적 악화부터 주가 하락까지

LG에너지솔루션의 하락세는 주요 경쟁 종목인 SK하이닉스와의 ‘대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1월 초, SK하이닉스와 LG에너지솔루션의 시가총액 차이는 3,000억원대에 수준이었다. 두 기업이 시가총액 2위 자리를 두고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잇는 위치에 있었다는 의미다. LG에너지솔루션의 입지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분기 잠정 실적이 공개된 1월 중순부터였다.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3,382억원 수준으로,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를 42%가량 밑도는 성적표를 받아들며 어닝 쇼크(기업의 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는 현상)를 기록한 것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4분기 3,46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흑자 전환에 성공, 증권사의 적자 전망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4분기 실적의 희비교차는 곧 주가에도 반영됐다. 올해 들어 SK하이닉스의 주가는 17.17% 상승했지만,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는 9.36% 미끄러졌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120조7,028억원(약 908억 달러)이다. 삼성전자(439조9,730억원)의 뒤를 잇는 ‘코스피 시가총액 2위’ 종목의 입지를 굳힌 것이다. 반면 3위 LG에너지솔루션의 시총은 90조6,750억원으로 급감했다. 2위 SK하이닉스와의 격차는 약 30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LG에너지솔루션 추락의 원인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 △각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삭감 △중국산 저가 전기차 공세 등을 지목한다.

북미 시장 공략으로 ‘캐즘’ 극복할 수 있을까

위기를 감지한 LG에너지솔루션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자구책을 제시했다. 지난 1월 LG에너지솔루션의 2023년 연간 및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 참석한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타 지역 대비 상대적으로 양호한 북미 전기차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발언했다. 고성장이 예상되는 북미 지역 수요에 초점을 맞춰 매출 회복에 힘쓰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 관계를 꾸준히 강화해 나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46시리즈(지름이 46㎜인 원통형 배터리)의 첫 고객사로 미국 테슬라를 낙점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오는 8월부터 대표적인 46시리즈 배터리 중 하나인 4680 원통형 배터리를 양산, 테슬라에 본격 공급할 예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 외에도 리비안 등 다수의 미국 완성차 업체가 해당 제품(4680 원통형 배터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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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돌파구를 모색하는 가운데, 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노력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얼리어답터 초기 수요 급감 △고금리·고물가 △경기 위축 등에 따른 ‘캐즘(Chasm)’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즘은 초기 시장과 주류 시장 사이에 나타나는 수요의 하락·정체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초기 시장 기반을 닦은 업계가 극복해야 할 일종의 과도기인 셈이다. 캐즘을 극복한 시장은 주류 시장 편입에 성공하며 대중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시장은 일부 얼리어답터들의 전유물로 남으며 쇠퇴하게 된다.

제동 걸린 미국 전기차 시장, 배터리도 함께 ‘주춤’

LG에너지솔루션이 반등의 무대로 낙점한 미국 시장 역시 캐즘의 여파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테슬라는 지난 1월 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올해 성장률이 작년보다 현저히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렴한 신차 개발·생산으로 인해 불가피한 성장 정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차후 신차 생산량을 늘려가는 과정 역시 ‘도전적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덧붙였다. 테슬라를 비롯한 전기차 업체들이 험난한 한 해를 겪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셈이다.

같은 달 미국 내 약 5,000개 자동차 매장을 대표하는 딜러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기차 전환 정책을 서두르지 말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전기차의 미래에 대한 대통령의 신념을 지지하지만, 도로가 준비되기도 전에 그 미래를 향해 가속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고 밝혔다. 수요 둔화로 전기차 재고가 쌓여가는 가운데, 무작정 전기차 전환 정책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전기차 시장의 침체 기조는 2차전지 업계의 성장 부진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최전선에 선 완성차 업체들이 무너질 경우, 전형적인 B2B(기업간거래) 사업체인 배터리 업체들 역시 ‘도미노’처럼 쓰러지게 된다는 의미다. 전기차 업황 악화 기조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은 과연 유의미한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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