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규제 시 벤처업계도 죽는다” 플랫폼법 두고 이어지는 줄다리기

pabii research
벤처업계, 공정거래위원회 플랫폼법 추진에 반발
플랫폼법 두고 지속되는 의견 대립, 결론은 어디에
빈틈 사이에서 자라나는 의심, 플랫폼법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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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중 약 70%가 공정거래위원회의 ‘플랫폼 경쟁촉진법(이하 플랫폼법)’ 추진에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20일 벤처기업협회는 ‘플랫폼법 제정에 대한 벤처기업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 이같이 밝혔다. 플랫폼법 제정을 두고 각계·전문가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벤처업계를 비롯한 산업계 전반이 ‘추진 반대’ 의견에 힘을 보태는 양상이다.

벤처업계, 플랫폼법 반대 의견 표명

벤처기업협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기업(230개사) 중 플랫폼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기업은 68.7%에 달했다. 공정위가 제시한 플랫폼법의 기대 효과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 역시 20%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벤처기업협회는 “플랫폼법을 통해 중소 플랫폼 사업자들을 시장 지배적 플랫폼으로부터 보호, 플랫폼 산업의 혁신과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공정위의 주장과 실제 업계의 인식은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응답 기업의 90% 이상은 플랫폼법 도입 시 △정부가 플랫폼 산업의 보호·육성 역할을 외면하고 시장 경제에 과도하게 개입 △국내 플랫폼 기업 역차별로 인한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저해 및 글로벌 경쟁력 약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폐쇄적인 행정편의주의로 인한 디지털 기반 신산업 성장 저해 △중복 규제로 인한 관련 업계 경영 활동 위축 △플랫폼 기업에 대한 국내·외 벤처투자 위축 등 역시 80% 이상의 응답률을 기록, 벤처업계의 주된 우려사항으로 꼽혔다.

성상엽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플랫폼법이 제정되면 대한민국 플랫폼 산업·플랫폼 기업의 혁신이 위축돼 벤처·스타트업은 성장동력을 상실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해외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갈라파고스식 규제를 개선해 벤처·스타트업이 활발하게 혁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플랫폼법은 산업계 전반에 대한 ‘과잉 규제’라는 벤처업계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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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규제 vs 족쇄’ 양분된 의견

공정거래위원회의 플랫폼법은 시장을 좌우하는 소수의 거대 플랫폼 기업을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최혜 대우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 부당 행위를 사전 규제하는 법안이다. EU(유럽연합)의 DMA(디지털시장법)와 유사하게 플랫폼 기업에 사전적으로 족쇄를 채우는 법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플랫폼 사업자인 카카오와 네이버는 물론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도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에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플랫폼법 제정 필요성을 두고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개최한 ‘온라인 플랫폼 관련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이하 공청회)’에서는 플랫폼법과 관련한 상반된 의견들이 맞부딪히기도 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플랫폼 규제 분쟁 발생 시) 당사자들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등 피로도가 높다”고 짚었다. 플랫폼 규제와 관련한 법이 없어 관련 합의에 과도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고 있으며, 현행 자율규제 방식으로는 플랫폼 독과점을 규제하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플랫폼법은 명백한 ‘이중 규제’로, 차후 산업계 전반의 혁신을 저하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플랫폼 독과점 문제는 기존의 공정거래법으로도 얼마든지 규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영기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공청회 자리에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도 사업자 중 하나고, 공정거래법은 모든 사업자에 다 적용된다”며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의 조항과 우월적 지위 남용의 조항은 글로벌 대비 우리나라가 가장 강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공정거래법의 규제 족쇄에 묶여 있는 플랫폼 기업에 이중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무조건 규제’, 플랫폼법의 허점

업계는 이 같은 의견 대립이 플랫폼법의 ‘허점’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법률 제정 취지는 적합하나, 규제 방식이 현실적이지 못해 각 측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플랫폼법은 EU의 플랫폼 규제 법안인 DMA를 그대로 모방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개별 사업 특성 △비즈니스 모델(BM) △시장 내 실제 영향력 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규제’ 방식이 DMA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강력한 규제는 기업 성장과 혁신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리한 ‘포지티브 규제(법률과 정책을 통해 허용되는 것들을 나열하고, 이외의 것들은 모두 허용하지 않는 규제)’ 형식 역시 플랫폼법의 한계로 지목된다. 지금껏 한국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채택해 왔으며, 플랫폼법에도 동일한 방식을 적용했다. 문제는 이 같은 포지티브 규제가 과감한 도전·혁신을 중시하는 신산업 분야에서 기업 성장의 ‘장벽’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이다. 신산업에 중점을 두는 대형 플랫폼 기업들이 차후 혁신 기술 개발 과정에서 난항을 겪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피의사실 입증책임 역시 기업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는 플랫폼 기업을 빠르게 제재하기 위해서는 기업 측에 피의사실 입증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제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견될 경우 즉시 조사를 시작하고, 이를 기업이 사후 입증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효율적 제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계는 ‘무죄’를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족쇄가 될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플랫폼법이 ‘공정 경쟁’을 앞세워 산업계 측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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