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뽑] ㊾코딩 테스트마저 학원을 다녀야 하는 개발자가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pabii research
코딩 테스트로 개발자 뽑는 것도 비효율적인데 코딩 테스트 학원을 다녀야 하는 인력들이 시장에 유입되는 중
코딩 테스트 학원의 주입식 교육을 받은 인력들이 회사에서 신규 시스템 개발을 따라갈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
한국 식의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한 인재 뽑아야

최근들어 코딩 학원도 모자라 코딩 테스트 전문 학원들도 생겼다. 코딩 테스트가 실제로 회사 업무를 잘 할 수 있는 역량과 꽤나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이미 여러 차례 한 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코딩 테스트로 개발자를 뽑고 있다보니 한국식 학원 문화가 이쪽에도 침투한 것으로 보인다.

SIAI 첫 신입생을 받고 2달 쯤이 지난 무렵, 내가 배웠던 방식으로 기말고사를 치르면 전원이 F학점을 받을 것 같다는 지적을 듣고, 기말고사 수준의 문제를 미리 풀어주는 시간을 수업 전체의 1/4만큼 배정해서 시험을 치뤘었다. 그러다 수학, 통계학 훈련 수업을 지나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문제 풀이를 최소화하고 시험을 치뤘는데, 몇몇 학생들이 ‘답을 가르쳐달라’고 생떼를 썼었다. 초반부터 좌절하지 말라고 쉬운 길을 열어줬다가 길을 잘못 들여놓은건가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도대체 한국에서 얼마나 ‘쪽집게’ 스타일의 교육을 받았길래 저렇게 의존형으로 공부하는 버릇을 못 버리고 있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 코딩 테스트 학원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당시에 그렇게 불평하는 학생들한테 SIAI가 학원도 아니고, 교수나 조교가 과외 선생님도 아닌데, 옆에 앉아서 하나하나 가르쳐줘야 된다는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학부 고학년 이상 수준의 교육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을 했었다. 국내에서는 기출 문제를 구하느냐 아니냐가 학점에 큰 영향을 주지만, SIAI 교육은 기출문제를 조금만 변형해서 출제해도 본인 내공에 따라 실력이 갈리는 것을 봤을테니, 진짜 역량을 쌓아서 극복할 능력이 없으면 고급 교육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도 했었다. 실제로 회사에서 일하는데 베껴 붙이기를 할 것이 아니라면 언제나 새로운 상황에 맞춰 자신의 내공을 활용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영·미권 방식의 SIAI 교육이 옳다는 확신도 갖고 있다.

개발자-안-뽑음_202312
개발자-안-뽑음_202312

코딩 학원도 아니고 코딩 테스트 학원?

지난 몇 년간 개발자 채용, 개발 프로젝트 운영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개발자 본인의 센스, 직관, 내공 같은 것들이 잘 조합되어야 회사에서 쓸 수 있는 인재인데, 그런 역량을 안 갖추고 있고, 못 길렀으면 그냥 인건비만 버리는 직원이 됐었다. 영어식 표현으로 ‘Cost center (돈 빠져나가는 구멍)’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무능한 직원들이 모여있는 팀이 생산성 없이 비용만 쓰는 경우에 멸칭으로 부르는 속어를 그런 개발팀에 붙여야 된다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었다.

센스, 직관, 내공이 있는 개발자를 뽑아도 개발 프로젝트를 잘 운영하기 쉽지 않은데 주입식 교육으로 시험만 통과한 개발자를 뽑으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 아마 학원에서 안 가르쳐줬기 때문에, 처음보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모르고 개발자 커뮤니티에 질문만 올리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 질문조차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상황이라 이상한 질문일 가능성이 높고, 개발자 커뮤니티 운영자도 어지간하면 대답을 해줘서 서비스용 콘텐츠를 만들어 내보고 싶어도 대화가 안 되니까 답답한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비단 개발자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단순한 엑셀, 파워포인트 기능 하나를 설명해주는 작업만 해도 문제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을 외부인이 도와주기는 굉장히 어렵다.

반면, 문제 파악을 효과적으로 해 내는 훈련을 잘 받았거나, 본인의 센스, 직관, 내공이 뛰어나서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에는, 개발자 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구글 검색으로 문제의 원인을 더 구체화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나선다. 이 때도 센스, 직관, 내공이 뛰어난 인력들은 10분, 1시간 만에 해결책을 내놓는 반면,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은 개발자들은 1주일이 걸려도 문제의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질 못한다.

세상 모든 업무가 특별히 다르지 않을텐데, 개발처럼 시간만 때우면 해결되는 업무가 아니라 코드, 라이브러리 간 의존도가 높은 시스템에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내야하는 복잡한 업무를 코딩 테스트 학원 출신에게 시킨다? 족집게 과외만 받던 애들한테?

S대라고 같은 S대가 아니다, 개발자라고 같은 개발자가 아니다

학원 한번 제대로 다닌 적 없이 혼자 독학으로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초·중·고교 시절을 보낸 후, 대학가서 은근히 많은 친구들이 ‘기출문제’와 ‘솔루션’만 찾아다니고, ‘쉬운 수업’, ‘학점 잘 주는 수업’만 찾아다니다가 ‘기출문제’와 ‘솔루션’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고시 시험으로 빠지는 경우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봤다. 아마 S대 학생 중에 나처럼 고시 책 한번 펴 보지 않은 경우는 희귀할 것이다.

그 친구들과 이야길 하다보면 “기출문제만 있지, 솔루션이 없어서 답을 못 쓰겠다”, “수업 시간에 저렇게 이론만 가르쳐주면 우리가 알아서 현실에 적용해라는게 말이 되냐” 같은, 추상화된 이론을 현실 사례에 맞춰 적용하는 응용력, 사고력이 매우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증하는 불평들을 들었었다. 그런 친구들은 저학년 때 배운 기초 이론이 고학년 수업에서 복잡화되고, 그걸 바탕으로 단순한 신문기사부터 주변 현상을 분석하는 도구로 쓰는 시점이 오면 모두 고시 학원으로 가 있거나, 아예 학교를 거의 나오질 않더라. 학부 1학년 때는 교수가 못 가르친다고 불평하며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같은 시험을 쳐서 입학한 학교에, 같은 교육을 받은 동기들이 교수님과 같은 눈높이를 갖추는 것들을 옆에서 보면서 자신의 무능을 깨달았을 것이다.

개발자 사회도 남이 쳐 놓은 코드 베끼기만 하는 애들과, 자기 생각을 코드 한 줄, 한 줄로 풀어내는 실력자들 사이의 사고력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학부 시절 동기들에게서 겪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 시절 그렇게 나가 떨어진 애들의 대부분은 서울 강남 일대의 ‘쪽집게 학원’ 덕분에 S대에 왔던 애들이 많았고, 그게 아니면 농어촌 특별전형을 비롯해서 성장 환경 중 교육 환경이 낙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S대가 열어준 뒷문을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은 됐던 친구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조금 못 된 말을 하면, S대 들어올 ‘머리’가 안 됐던 애들이었던 것이다.

위의 사례만으로 코딩 테스트 학원 같은 한국식 ‘쪽집게 학원’을 통해서 코딩 테스트를 통과한 개발자를 뽑으면 어떤 사건이 생길지 충분히 가늠이 될 것이다.

차라리 코딩 독학 한 애들이 더 낫다

컴퓨터 공학 전공자 분들께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국내에서 그간 봤던 컴퓨터 공학 전공자들의 압도적인 다수가 내 기준으로 학부 저학년 수준의 수학 문제들을 못 푸는 분들이었다. 그런 개념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사고력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때문에 공학 수학 같은 수업들은 기출문제 암기식으로 풀어서 학점만 받은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들이 모두 수학, 철학 등의 논리학을 기반으로 쌓아올린 고급 학문들인데, 그 교육을 흡수하지 못한 상태라면 대학 교육 자체가 무의미했다는 판단 밖에 서지 않는다.

개발자라는 업무가 회사가 원하는 IT시스템을 가상의 공간에 만드는 업무인 만큼, 대학 교육 수준의 사고력 훈련이 결여되어 있으면 굳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비전공 출신, 고졸 출신 개발자와 하등 다를 부분이 없다.

난 차라리 혼자 힘으로 독학해서 시스템을 다 만들어 본 개발자들이 훨씬 더 회사 일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가이드를 해 주지 않았던만큼 좌충우돌이 많았겠지만, 그만큼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디버깅하고, 더 많은 경험치가 쌓였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콘텐츠건 생산을 해 내는 사람들은 눈이 퀭하고 외견이 초췌해보이는 경우가 많다.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자신의 얼굴이지, 입고 있는 옷이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누군가가 만든 콘텐츠를 팔아야 하는 세일즈 담당자들은 내실이 없는 만큼 겉으로 화려한 포장을 한다. 내실을 볼 수 없는 비전문가들은 속겠지만, 전문가들은 콘텐츠를 보지 사람을 보지 않는다.

개발자 사회 진입을 위해서 혼자 열심히 독학하며 내공을 쌓고, 직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고력 훈련과 경험치가 쌓인 인재가 회사에 더 도움이 될까? 아니면 대학 4년간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지만 정작 기출문제 암기 후 시험 다음날 다 잊어버리기만 하다가 코딩 테스트 학원의 도움으로 테스트 점수만 높은 인력이 회사에 더 도움이 될까?

한국 SKP 컴퓨터 공학과 출신들이 만든 시스템이 왜 해외 6개월 부트캠프 출신 비전공자들이 만든 시스템보다 더 사용자 경험이 좋은지에 대한 답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인재는 신규 콘텐츠 생산 업무에 최악의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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