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뽑] ㊻개발자 역량 평가 시스템의 부재가 시장 비효율을 낳았다

pabii research
단순 코딩 테스트는 적절한 평가법 아닌데도 대안 없이 시간만 흐르는 상태
결국 프로젝트 역량 없지만 코딩 테스트만 '넘기는' 인력 위주로 개발팀 구성한 기업들 많아
프로젝트 결과물 수준은 수십년 동안 제자리 걸음 수준

기업 법무를 주로 담당하는 법무 법인을 가면, 대형 프로젝트를 맡고 싶어하는 신입 변호사들이 그런 케이스를 갖고오는 시니어 변호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여러 전략들을 짠다. 아무리 밤을 새도 끄떡 없는 체력의 소유자라는 걸 보여주기도 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다른 변호사들이 보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그 소문이 널리 퍼지도록 작전을 짜는 경우도 있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면 그 법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변호사들이 자기 밑에 데려가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남들 눈에는 유명한 법무 법인에 다니고 있으니까 대단해 보이겠지만, 그 중 누군가는 기업 법무 중에서도 노른자 케이스들에만 투입되는 알짜 인력이고, 또 누군가는 이혼, 상해 치상 같은 ‘보잘 것 없는’ 케이스만 맡아야 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차라리 법무 법인의 명성을 좀 낮추더라도 기업 법무를 주로 담당하고, 그것도 국내·외 기업 M&A, 해외 자원 인수, 매각 같은 케이스를 하고 싶어서 이직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단, 한국에는 그런 기업 활동이 별로 없어서 얼마나 그런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15년 전 iBanker로 첫 직장을 들어가서 변호사, 컨설턴트, 회계사들과 엮이던 시절, 그들이나 나나, 모두 이름이 오래 남을 대형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싶은 욕심 가득한 인력들이라는 공통점을 느낀 적이 있었다.

개발자-안-뽑음_202312
개발자-안-뽑음_202312

대형 프로젝트의 잉여 사원 vs. 소형 프로젝트의 핵심 인력

위와 같은 사례는 초특급 상위권 인재들끼리 경쟁하는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형 언론사를 보면 정치부, 경제부 같은 주력 팀에 배정되는 인력이 있는 반면, 인터넷 뉴스 부서에 배정되고, 보도자료를 적당히 고쳐서 기사로 뿌리는 작업을 담당하는 ‘인터넷 편집 기자’도 존재한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각 인력 별로 회사 내에서의 기대치도 다르고, 할 수 있는 일도 다르다. 아예 정치부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회사에 큰 손실을 주면 사직서를 내거나, 인터넷 편집 팀으로 ‘좌천’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같은 시스템이 개발자 사회에서는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지난 몇 년간 한국 개발자 사회를 어깨너머로 봤을 때는 그런 식으로 업무 수준에 따른 상하 관계가 정착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개발자를 뽑으려던 회사가 많았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일을 시키면 그 다음날 책상을 정리해버리는 태도들이 많았던 것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고, 한국 사회가 IT프로젝트를 그렇게 세분화 할 수 있을만큼 다양한 프로젝트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회사 내에서 핵심 업무를 맡을 수 있는 학벌, 경력, 그리고 그에 따른 실제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인력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어지는 혜택일텐데, 이런 시스템이 안착되어야 개발자 노동 시장이 안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느 회사를 다녔으니, 무슨 프로젝트를 해 봤다고 하니, 누구한테 소개를 받았으니 잘 할 것이라는 믿음만 갖고 인원을 채용해야 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판단하기 위한 적절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개발자 역량 평가 시스템의 부재가 시장 비효율을 낳았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자난 10년 동안 해외 인사 관리 시스템을 겉으로는 열심히 베껴왔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주먹구구식 평가로 매년 A, B, C 등의 등급을 산정한다. 등급이 낮은 직원들을 권고사직, 해고하기 위한 명분으로 많이 쓰이는데, 정작 A 등급을 꾸준히 받는 직원이 정말로 역량이 뛰어난 경우는 얼마나 될까? 윗 사람의 눈치를 잘 보고, 겉으로만 포장을 잘 하는 인력들이 A 등급을 받는 동안,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인력이 C 등급을 몇 차례 받아가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해 보자. 실제로 자주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만나서 몇 마디 해 보면 왜 그런 불만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개발자 사회의 역량 평가도 내 눈에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매우 뛰어난 개발자를 뽑는 기준이, 기획, 디자인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넘겨 짚어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코드 작업을 미리미리 해 놓고, 최신 코드, 검증된 코드 갖다 붙였다고 자랑하지는 않지만 회사 사정과 프로젝트 사정에 맞는 코딩을 해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개발자 A가 있다고 해 보자. 그 옆에 있는 다른 개발자 B는 AI로 유명한 어느 기업에서 AI 프로젝트를 해 봤다고 주장하면서 이직을 했는데, 정작 그 코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하나도 모르고, “M기업에서 돌아가는 코드와 G기업에서 돌아가는 코드를 결합해 완성했습니다”라고 주장은 하는데, 회사 사정이랑 안 맞아서 뜯어고치는 작업을 길게 해야하고, 그 마저도 큰 도움이 안 됐다고 해 보자.

윗 사람이 개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AI라고 불리는 자동화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A개발자가 월등히 뛰어난 인재고, B개발자는 사실상 채용 실패로 판단해야 된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것이다. 그런데, 국내 모 대기업처럼 매년 ‘코딩 테스트’로 개발자 등급을 산정하고 있고, B가 코딩 테스트만큼은 엄청나게 잘 보고 있으면 평가가 어떻게 될까? 아마 개발자B는 회사가 매우 잘 뽑은 인재, 고속 승진을 시켜야하는 인재로 분류되고, 개발자A는 40대가 되기 전에 이미 짐을 싸야 할 지도 모른다.

적절한 개발자 역량 평가 시스템은 어떻게 갖춰야 하나?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를 가도 개발자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은 위의 개발자B 같은 사례들을 회사에서 솎아내지 못할 것이다. 아마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는 중에 그 기업만 위의 평가 시스템을 갖고 있다면 개발자A는 자기 마음에 드는 직장으로 바로 이직을 해버리겠지만, 시장 전체가 ‘책상 물림’들이 현장 모르고 엉뚱한 평가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에서 그렇게 엉망으로 돌아가는 대표적인 시스템이 교육부의 대학 역량 평가 시스템인데, 글로벌 시장에서 A급 저널에 논문을 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교수의 논문 1개와, 국내에 500만원만 내면 아무 논문이나 실어주는 한국형 SCI 저널에 올라간 논문 1개를 사실상 같은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주요 사례다. 이렇게 엉뚱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반 값 등록금을 강제해버리니 학생들 수업료로 생존이 불가능한 대학들이 정부 지원금에 끌려다니면서 황당한 시스템에 적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상한 시스템에서 탈출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그 이상한 시스템에 맞춰서 살아남아야하니 국내 대학들에서 글로벌 A급 저널에 논문을 올릴 수 있는 교수들조차도 한국형 SCI 저널에 논문을 내기 위해 그런 저널의 주요 관계자들에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저널 주요 관계자들의 압도적인 대다수는 글로벌 A급 저널에 논문을 내기는 커녕, 투고할 수 있는 영어 실력조차 안 갖추고 있더라도, 이미 교육부가 만들어놓은 공고한 시스템에서 핵심 부품으로 자리잡고 있어 내치기도 쉽지 않다.

개발자 평가 시스템이 절실한 상황이기는 한데, 위와 같이 엉망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대표적인 사례가 ‘코딩 테스트’다. 그 취지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회사에서 필요한 개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되는지 여부로 관점을 옮기면, 적절한 테스트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잘못된 시스템이 아니면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시절이 몇 년간 더 이어지다가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어떤 시스템을 쓴다는 소문이 나면 그제서야 따라가는 방식으로 돌아갈텐데, 고급 평가 시스템이 안착되기 전까지는 결국 무능한 개발자를 뽑았을 때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급여를 줘야하는 기업만 그 손실을 오롯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력들도 동료의 무능 탓에 업무량이 2배로 늘어나고, 서로 협력도 힘들어지는 복합적인 인사, 조직 문제가 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런 무능한 인력들에게 물적, 인적 자원이 분배된 탓에 멀쩡한 고급 인력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문제, 그래서 그 조직, 그 나라 개발자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장할 기회를 잃는 것이다. 덧붙여 고객들도 낮은 수준의 서비스에 만족해야만 한다.

우리 회사에서 마지막 개발자를 내보내던 날, 만약 앞으로 다시 개발자를 뽑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논리학 시험으로 1차 선발, 간단한 디버깅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찾아내서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보는 센스 테스트로 2차 선발, 프로젝트 구성을 어떻게 해서 이끌어 나갈지를 설명하는 능력으로 3차 선발을 진행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이런 단계를 통과할 수 없는 인력은 뽑아봐야 시간만 낭비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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