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對 미국 의회외교, 한미의원연맹 구성되나

국회입법조사처, ‘21대 국회 의회외교 현황과 한미 의회외교 활성화 방안’보고서 발간 한미관계 발전 위해 한미의원연맹 창설 필요성 대두돼 보여주기식 연맹 구성보다 외교적 역량 제고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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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회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6일 ‘21대 국회 의회외교 현황과 한미 의회외교 활성화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현재 국회 내에서는 한미 관계 발전을 위해 양국 간 의회외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3년 한미동맹은 70주년을 맞은 반면 국회 내 대미 의회외교 단체는 단 1개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양국 간 상시적인 의사소통 채널을 구축하고 이를 공식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유명무실 대미 의회외교, 전담 조직 구체화 논의 필요해

대한민국 국회의 의회외교 개요에 따르면 의회외교(parliamentary diplomacy)는 ‘국회의원, 의회외교 단체 등이 국내외 현안에 대한 협력 증진 및 교류 확대 등을 목적으로 외국 의회, 정부 등을 대상으로 펼치는 외교활동’으로 정의된다. 일반적으로 의회외교는 정부 외교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부의 공식 교섭을 통한 해결이 어려운 경우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의회외교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현재 국회 내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의회외교 단체는 ‘한미 의회외교포럼’ 뿐인데 이마저도 개별 의원단 차원에서 20차례 방문한 것이 단체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전담 조직을 제도화하지 않고 초청·방문·국제회의 참석 등 특정 현안에만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온 탓으로 보인다. 한편 21대 의회의 주요국에 대한 외교조직은 의회외교 단체와 의원연맹으로 나뉜다. 의회외교 단체에는 △의회외교포럼 △의원친선협회 △한중 의회 간 정기교류 체제가 있고 의원연맹에는 6개 의원연맹이 등록되어 있으나,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의원연맹은 한일의원연맹과 한중의원연맹뿐이다. 한미 의회외교포럼은 2019년 출범 당시만 해도 점차 전담 조직으로 발전된 만큼 대미 의회외교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만족할 만한 성과를 도출하지 못해 유명무실한 단체로 남아있는 형국이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대미 의회외교 활성화를 위해 대미 의회외교 전담 지원조직과 이에 상응하는 미 의회 내 조직 창설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미 의회 내에는 CSGK와 코리아 코커스 등과 같은 한국에 우호적이거나 관련성이 높은 의원들의 조직이 있으나, 이는 친한·지한파 의원들에 의해 구성된 자발적 조직일 뿐 의회의 지원을 받는 공식 조직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 조직은 국회 대미 의회외교 단체의 상대로 공식 지정된 상태도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 의회 내에는 양자 간 의회외교를 위한 공식 조직으로 캐나다, 멕시코,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6개 의회외교 단체가 있는데 미국 연방법전에는 이들 조직에 대한 보고 관련 사항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다. 이와 같은 논지에서 국회는 미 의회 내에 한국과의 양자 의회외교 조직이 공식적으로 설립된다면 양국 의원 및 의회의 협력 수준과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의 연속성이 제고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매번 반복되는 레퍼토리라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국회입법조사처의 다소 이른 보고서 발간 시기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한미의원연맹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불과 지난 달이다. 김진표 의장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월 임시회 개회식 당시 “당장 새롭게 한미의원연맹을 구성하는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라며 “조속한 시일 안에 대규모 방미의원단을 구성해 미국을 방문, 상하원 의원들을 두루 만나 의원연맹 창설을 매듭짓겠다”고 말한 바 있다. 아무리 국회 산하 기관이라지만, 그저 상부의 압박과 지시에 따라 조직이 제시하는 사안만을 보고서로 생산하기 바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라 들려온다.

게다가 한미의원연맹은 2017년까지는 잘 유지되어 온 바 있기에 기존에 외교조직을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하다가 매번 시간이 흐른 뒤 재시도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심지어 2021년에 이미 한국계 미국 하원의원들의 주도로 한미의원연맹 재출범 선언을 하기도 했다. 스티브 섀벗 당시 하원의원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늘어나는 긴장감과 북한이 제기하는 도전 속에 한미 양국 의원들 간의 강한 유대감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하며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미국은 사실 북한 비핵화를 중대한 정책 과제로 견지해 온 만큼 한국을 협상에서 배제하거나 소외시킨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해 외교전략을 적절히 설정했다면 최소한의 대가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그간 눈앞의 사소한 사익을 가지고 다투느라 눈이 멀어온 모습만 보여온 정치인들에게 이러한 기회를 포착할 시야를 기대할 순 없었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레버리지 행사할 외교적 역량 있나?

한편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독소조항으로 인해 한국의 숨 쉴 구멍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사이에 끼어있는 지금, 실효성 있는 한미의원연맹이 구성된다면 구체적인 의사소통과 협상을 통해 반도체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데 일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시점에 우리나라의 외교적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한국만의 외교적 입장을 정립하지 못하고 현실을 회피하고만 있는 형국에 미국으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역량이 과연 현 국회의원들에게 있는가에 대해선 역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미국은 한국의 문제에 우선순위를 낮출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한국을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미뤄두지 않게 하려면 반대급부 차원에서 레버리지(지렛대)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일정 부분 공조하려는 입장을 내비쳐야 동맹국 미국이 한국 쪽으로 한 발자국 움직이려는 동기가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보여주기식 연맹을 구성하는 데만 급급하기보다는 외교적 역량을 끌어올리고 정책적 공조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한미의원연맹을 구성한다 해도 한미 양국이 정책적 공조를 유지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결속력은 약해지고 유명무실뿐인 조직이 될 것이다. 한국은 중립 외교에 매몰돼 있고 미국은 중국 견제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의 요구를 귀담아듣게 하려면 대미 레버리지를 효과적으로 행사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모호한 전략으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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