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형 벤처캐피탈 ① CVC의 운용 방식 및 일반 VC와의 차이점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1년 반 동안 12개 일반지주사 CVC 설립 모기업과의 시너지 모색, 신사업 진출, M&A 등 ‘전략적 동기’에 중점 공동투자에 적극적인 CVC가 피투자기업 실패율 낮추고, 투자 실적도 높아

pabii research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의 여파로 인해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캐피탈(VC) 투자가 급감하는 가운데,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기업형 벤처캐피탈(Corporate Venture Capital, CVC)’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이에 스타트업과 CVC 부문의 파트너십이 크게 증가하면서, 올해 CVC 시장 규모가 한층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2년부터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한 CVC 시장이 2023년에도 스타트업에 불어닥친 광범위한 경기 침체 극복에 기여하면서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지주사들도 속속 CVC 설립에 뛰어드는 추세다. 원래 일반지주회사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회사인 CVC를 소유할 수 없었으나,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2021년 12월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지난해부터 일반지주회사도 일정한 요건을 갖춰 제한적으로 벤처캐피탈 투자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23년 일반지주회사 소속 CVC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제도가 도입된 이후 1년(지난 5월 말 기준) 여 만에 포스코기술투자, GS벤처스, 동원기술투자 등 총 12개사의 일반지주회사 CVC가 설립·운영되고 있다. 이 중 8개사는 법 개정 이후 새롭게 설립됐고, 1개사는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 내부로 편입됐으며 3개사는 모회사가 CVC를 보유한 상태에서 지주회사로 전환됐다.

재무적 이익 추구하는 VC, 전략적 이익 추구하는 CVC

CVC는 비금융권 일반기업이 출자해서 설립한 VC를 의미한다. CVC는 큰 틀에서 보면 VC와 유사한 속성을 지녔지만 추구하는 이익의 형태가 상이하다. 일반 VC의 주목적이 투자기업의 수익 추구, 즉 재무적 이익에 있다면 CVC는 사업 포트폴리오와 시너지 모색, 신사업 진출, 인력 탐색 및 확보 등 모기업의 전략적 이익도 함께 복합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VC와 차이가 있다. 단순히 재무적 이익을 넘어 자사 사업에 필요한 인력 및 기술을 취할 수 있는 데다, 인수합병(M&A)이라는 선택지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CVC를 재무적 투자자(FI)가 아닌 전략적 투자자(SI)로 구분하기도 한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CVC의 전략적 동기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학습 동기로, 이는 신기술 및 신사업 모델에 대한 이해 증진과 이를 통한 혁신 역량을 배양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은 대기업의 핵심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보완적 수요 창출 및 관련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하는 동기로, 이른바 레버리지 동기다. 마지막은 향후 M&A 및 전략적 제휴를 위한 중간 단계로서 CVC를 활용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M&A는 개방형 혁신의 한 수단으로서 독립적인 의미를 가질 수는 있으나 CVC의 본질적인 목적은 아니다.

CVC는 스타트업과 장기적인 파트너십 형성이 가능하며, 투자를 통해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 기술 혁신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 또한 대기업의 전략 방향 등 경영에 대한 조언 제공 및 회계·공시 체계 등 기업 경영에 대한 인프라를 제공하는 한편, 기업의 지배 구조 참여를 통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기존의 인적 네트워크 및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해 스타트업의 수익 창출은 물론 글로벌 시장 진출도 지원한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이 100% 지분을 소유한 CVC 구글벤처스가 대표적으로, 미국 전체 VC 투자 금액 중 절반이 구글벤처스나 인텔의 인텔캐피털 등에서 출자됐다.

자체 재원 투자 또는 외부 펀드 조성으로 자금 조달

정부 정책 자금을 중심으로 연기금, 증권 등 다양한 출자자(LP)를 통해 펀드를 조성하는 VC와 달리 CVC는 설립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모기업 내 사업부에서 CVC 투자를 전담하는 방식이다. 이는 연도별로 별도 예산을 배정받아 예산 범위 내에서 투자하는 자체 재원 투자 방식(balance sheet)과 개별 투자 건에 대해 별도의 예산과 승인을 받는 딜바이딜(deal by deal)로 나뉜다. 이러한 내부 조달 방식은 기업이 직접 사업부의 전략적 계획과 제품 포트폴리오 분석에 참여할 수 있으며 지분투자를 통해 R&D 격차를 파악하고 간극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둘째, 모기업이 100% 지분을 보유한 완전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CVC 자회사는 자체 자본을 활용해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거나, CVC 펀드 조성을 통해 대기업 계열사나 외부 LP의 출자를 받기도 한다. 이때 펀드는 계열사 일임방식(separately managed) 또는 다양한 출자자가 출자하는 일반 펀드결성 방식(commingled)으로 조성된다. 대기업이 CVC를 별도로 두는 이유는 M&A 후보군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VC 활동을 통해 우량 스타트업 현황을 주시하다가 모기업 사업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시 곧바로 M&A에 나서는 식이다. 혁신 기술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겠다는 복안이다.

일반 VC와의 상호 보완 작용

CVC의 활동 영역은 일반 VC와 동일한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다. CVC를 재무적 동기만을 가지고 투자하는 일반 VC와 비교했을 때, 투자 대상 발굴 측면에서는 유사하지만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CVC는 모기업 사업부의 관료주의적 의사결정으로 인해 투자 승인이 지연될 수 있으며 복잡한 내부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왜곡될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일반 VC와 달리 CVC는 모기업이 앵커 LP로 나서기 때문에 펀드레이징 부담은 적으나, 투자 과정에서 계열사의 입김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CVC는 모기업의 전략적 시너지에 방점을 두는 만큼, VC의 주요 투자방식으로 꼽히는 후속 투자나 마일스톤 투자와 같은 공동투자 방식과 상충될 수도 있다. 그러나 CVC가 지속력을 갖춘 주요 시장 참여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반 VC 등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 내 주요 플레이어와의 공동투자와 같은 협력 관계 구축 등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로의 동화가 필수적이다. CVC가 일반 VC 운용 방식과 모기업 내 조직 운영 원칙 간의 간극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반 VC와 CVC는 스타트업 투자에 있어서는 경쟁 구도에 있지만,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데 있어서는 보완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일반 VC가 스타트업의 핵심 직원 선발 및 조직 구조조정에 최적화돼 있다면, CVC는 해외 신규 고객 유치 및 신기술 정보 지원 부문에서 차별화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이같은 CVC와 VC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는 CVC의 공동투자 참여를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공동투자에 적극적인 CVC일수록 전략적 목적과 높은 투자 실적을 달성할 뿐만 아니라 피투자기업의 실패율을 낮춤으로써 공동투자 파트너인 일반 VC의 성장에도 일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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